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도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셸런버거 저/노정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원제 'Apocalypse Never'를 검색하면 동명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종말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본서의 제목이라면 다른 책은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반대로 종말이란 얼마든지 가능하며,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에 대한 동시대의 관점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그처럼 1 '종말 따윈 오지 않아'와 2 '종말은 정말 일어날지 모른다'가 될 것 같다. 부제의 '종말론적 환경주의'라는 뜻으로 저자는 'Environmental Alarmism' 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alarmism은 불필요한 선동과 겁주기라 할 수 있겠다. 불필요한 겁주기의 예는 어떤 것일까.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대표하는 단체로 저자는 자못 무서운 어감의 '멸종저항'이란, 런던의 교통수단을 점거했던 6,000명 회원의 환경단체를 들고 있다. 대중들이 에코액티비즘이나 환경주의를 떠올리면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육류를 먹지 말라고 데모하는 단체나 멸종저항의 Usual=Death이란 말처럼, 지금대로라면 곧 죽음에 이른다는 급박한 이미지가 다수를 차지할 듯하다. 그린 뉴 딜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 민주당의 의원이나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주의의 아이콘이 된 인물들도 함께 활동하는 단체나 세부적인 주장은 물론 제각기 다르다. 환경주의는 균질화, 일반화된 주장을 도출하기에는 굉장히 몸집이 커진 이즘이다. 누구도 단 하나의 답에 동의하기 어렵게 되었다. 환경을 두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가 갈등하며,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예를 드는 단체들과는 다른, 개발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교차성 환경주의intersectional environmentalism', 온건중도적인 환경주의 노선 또한 존재한다. 이런 사상적 스펙트럼 곁에서, 저자는 현재 이상에 경도된 환경주의가 넘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자본에 좌우되는 세계의 현상을 냉정하게 다루고자 한다. 

 

예를 들어 3장에서, 플라스틱 중에서도 빨대 배출 같은 문제에 천착하기 쉽지만 플라스틱 배출량 중에는 다른 일회용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비닐봉지의 비율이 훨씬 크다는 실상은 대중도 익히 미디어에서 한 번쯤은 들었을 문제로서 흥미롭다. 한 번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나 화제를 통해 플라스틱 빨대만 규제하고 줄이면 대단한 성취를 이룬 듯 침소봉대하며 만족하는 식으로 자칭 환경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 중 가장 설득력 있는 환경 식민주의에 대한 지적은 어떤가. 자국에 나무를 심지 않는 국가들은 아마존을 지키라고 브라질을 압박했다. 실사용하지 않는 토지가 남아있는 타국의 삼림파괴(deforestation)는 걱정하지만 이미 토지개발로 파괴한 자국의 삼림복구(reforestation)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국가도 경제적인 손해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이미 개발을 이루어낸 입장의 반대편일, 아직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오수처리를 하지 못하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경제 발전이 먼저이듯, 개발도상국의 불이익에 이르는 환경주의인 '환경 식민주의'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환경주의가 신흥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지적이 적합한 이유는 뉴스 미디어의 '지구의 허파(아마존 삼림)가 불타고 있다'는 은유적 문장들이나 울고 있는 듯한 북극곰과 바다표범의 이미지 이상으로 팩트를 이해하려면 모두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진 않고 감정과 이미지에 호소되기 쉽기 때문이다. 아마존 삼림부터 논쟁적인 원자력 개발 문제까지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단편적인 이미지에 이끌리는 대신, 기본적인 경제논리에 반하는 나이브함에서 성장하자나, 타인 혹은 타국에 환경보호의 책임과 비용을 요구하는 위선을 자제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일반적으로도 설득력 있다.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환경주의로 보다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시점에서, 어떤 선택이 타당하고 실효성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을 해 보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상식인으로서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가령 지금 탄소 배출 줄이기가 정말 만인이 육식을 줄여야지만 유의미하게 효과적인가?에 대해 그렇다는 답을 도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채식을 하면 광의적으로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독자인 나에게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사고 실험을 제안해 주었다. 무엇이 어느 단체나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반하며, 어떤 환경보호 아이디어가 프로파간다에서 출발했고, 국가들은 어떤 산업을 통해 발전하고 새로운 산업들로 전환헀는지, 그 과정에서 환경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다른 관점에서 지식을 판단하게 해 주었다.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도시의 열섬 현상을 타개하는 방식으로 생물기후적인 (bioclimatic) 건축을 세운다는 기사를 보고 이 책을 떠올렸다. 종말은 몇 년 후 어떤 시점에 예정되어 찾아올 것이라고 강의하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보다야 물론 훨씬 건강하고 현재에 공명하는 방법들이 그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나 또한 무엇이 환경을 위해 실효성 있고 타당하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개인으로서 실천 가능한 일들을 보다 실천하고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