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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도서] 에든버러

알렉산더 지 저/서민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한국계 미국인 피(아피아스)는 열두 살 때 성가대에 들어간다. 맑은 목소리를 가진 소년들을 통솔하는 사람은 큰 에릭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곳에서 피는 또래의 피터, 잭을 만나 가까워진다.

 

성가대 여름 캠핑 첫날, 파트별 반장들과 큰 에릭이 먼저 캠핑을 시작하면서 텐트를 치고 벌거벗은 채로 연못에서 수영을 한다. 남자들끼리라 어색하진 않았지만, 큰 에릭이 알몸으로 수영하는 그들을 카메라로 찍고 밤에 텐트에서도 다 같이 알몸으로 자는 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후 성가대 소년들 모두가 모여 캠핑을 하게 되면서 피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건물 두 군데에 소년들을 나눠 묵게 한 큰 에릭은 밤마다 1호 숙소 아이들과 벌거벗은 채로 뭔가를 하는 것 같다. 2호 숙소의 반장이 된 피는 1호 숙소에 피터가 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 캠핑 이후 피터는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고, 피와 비밀스러운 관계였던 잭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피터를 사랑했던 피 또한 언제부턴가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피터에게는 카네이션 향기가 나고, 아주 희미하게 담배연기 냄새도 난다. 누군가 바에 두고 간 코르사주처럼. 널 사랑하고 있어. 그때 나는 생각한다. 그래 맞아, 널 사랑하고 있어. p.24

 

 

 

어쩌면 피는 피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 때문에 캠핑을 갔을 때 신경이 온통 그쪽에만 쏠려 있었다. 무슨 일을 당했을지 알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는 피였기에 상처 입은 피터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저 친구 사이인 잭과 남몰래 관계를 이어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피터에게 있다는 건 굉장히 잔인한 행동이었다. 피에게는 가벼운 관계였을지 몰라도 잭에게는 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큰 에릭의 범죄는 의외로 빨리 밝혀져 바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상처받은 소년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피터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는지 자살 시도를 몇 번이나 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사랑하는 피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가슴에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 더불어 피의 말에 충격을 받은 잭 역시 둘만의 비밀 장소에서 자살을 하게 된 게 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피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었다.

 

 

 

누군가 내 인생에 들어와 그날 밤 내 피부에 들러붙은 모든 신경을 끊어내 주었더라면 내 인생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감각이 없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p.179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고, 그들 하나하나를 찾고 싶다. 한 명 한 명에게 그의 몸을 떼어주고 싶다. p.281

 

 

 

피의 성장을 보면서 다른 소설이 떠오르곤 했다. 몇 달 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어릴 때의 경험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죽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점이 피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서 소설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어떤 소년이 학교에 수영 코치로 새로 온 피에게 반하게 되면서 소설이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소년의 정체가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기다 소년과 관련된 어떤 인물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피는 그 소년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피터와 닮은 존재였기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에게 빠져들어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닌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는 부정해야만 하는 애정으로 엮인 게 아니라는 것은 어떤 인물의 비밀을 소년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소년의 손에 당한 이의 입장에서는 잔인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에 대한 처벌로는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다. 진작에 그랬어야 마땅한데 너무 늦었고 당한 사람들에 비해 큰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죽음이 남달랐던 건 피터를 닮은 소년이 피터가 현혹됐었던 불로 끝낸 것이라는 점이다. 소년은 몰랐겠지만 그 사실을 아는 피에게는 그 사건이 마침내 과거를 떨쳐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의 특징은 한국계 미국인이 쓴 성장형 퀴어 소설이라는 점이다. 시작부터 위안부로 끌려간 할아버지의 누이들에 대한 언급과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사람으로 변신한 붉은 여우에 관한 부분이 등장했다. "레이디 타마모"라는 붉은 여우가 제 몸을 불태운 것이 후손인 피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피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 섬에 갔을 때 무당에게 굿을 받는 장면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지울 수 없는 끔찍한 기억에 대해 말하지만 불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절제된 문장으로 내면의 상처를 표현한 부분이 여운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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