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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던 자리에

[도서] 우리가 있던 자리에

니나 라쿠르 저/임슬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그토록 쉽게 잉그리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그냥 사라져 버렸고, 이제 자기가 얼마나 나를 망쳐놨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잉그리드는 기어이 떠나버렸고 나는 폭발할 것 같다. p.183



가장 친한 친구 잉그리드가 자살을 했다. 케이틀린은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방학을 보냈다. 엄마와 아빠가 케이틀린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는데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개학해 학교에 갔을 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케이틀린의 눈치를 봤고, 어떤 아이들은 말을 걸며 어쭙잖은 위로를 했다. 케이틀린은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서 스테레오 리모컨을 찾다가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잉그리드가 늘 가지고 다니며 썼던 일기장이었다. 케이틀린은 자기 몰래 잉그리드가 넣어놨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하지만 차마 일기장을 펼쳐 읽어볼 수가 없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난 후, 케이틀린은 매일 하루에 한 장씩 잉그리드의 일기를 읽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시에 케이틀린의 마음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잉그리드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사실 몰라서는 안 됐다. 친구란 그런 존재니까. 눈치채고 알아주는 존재. 서로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존재. 가족이 모르는 것도 알아채 주는 존재.
(……중략)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죽었고, 나는 그 애를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잘못된 일이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잘못된 일이다, 내가 오늘 밤 대문으로 들어오며 웃고 있었다는 것은. p.145~146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아니면 친구든 말이다. 얼굴만 알던 사람,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마저도 우리는 안타까움에 괜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특히나 10대 소녀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 베프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면 그 상실감과 슬픔은 더욱 클 터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잉그리드는 케이틀린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따라가겠다고 말했으니 케이틀린 입장에서는 배신감마저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 잉그리드가 몰래 숨겨놨을 거라고 추측되는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케이틀린은 이제는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잉그리드만 차지했던 케이틀린의 옆자리를 전학 온 딜런과 호감을 갖게 된 테일러가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케이틀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담고 있었다.

사춘기 고등학생이라 원래 심경 변화가 심할 시기인데 갑작스럽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케이틀린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위로를 하기 위해 다가온 아이들이 못마땅했고 그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추측하며 질색했다. 그만큼 케이틀린은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홀로 슬픔의 우물을 더 깊이 파고 있었다.
그런 케이틀린을 보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과거가 내게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어떤 조짐도 없이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의 상실감과 죄책감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케이틀린에겐 잉그리드의 일기장이 있었으니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남은 사람들에게 잉그리드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케이틀린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잉그리드가 남긴 일기장을 읽으며 울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를 떠올리며 그래도 행복했던 시간들이 파도가 치듯 감정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래서 케이틀린이 잉그리드의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괴로워하는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잉그리드와 내가 꿈꾸던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인생의 일부다. 삶은 변화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다시 나타나 우리를 꼭 안아준다. p.357



그러면서 케이틀린에게 딜런과 테일러라는 존재가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 또한 공감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놓고 웃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는 케이틀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로 인해 새로 사귄 친구들과 멀어지려고 하는 노력들을 보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딜런과 테일러는 케이틀린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해 후에 금세 가까워지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케이틀린은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았다. 케이틀린보다 딜런이 먼저 경험했을 상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도 해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고선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여긴 제이슨, 잉그리드의 부모와 오빠를 보면서 케이틀린은 슬픔을 감내하며 잉그리드를 마음에 담고 사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상실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성장 소설 같기도 했다.

주인공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라 오래 마음에 남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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