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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도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저/전은경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28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수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학교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넌다. 비가 오던 날 아침 8시 15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한가운데에 어떤 여자가 편지로 보이는 종이를 읽다가 구겨서 허공으로 던지는 걸 보게 된다. 그 여자가 왠지 뛰어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달려가던 그레고리우스는 우산을 놓쳐버렸고 들고 있던 책 또한 바닥에 쏟아진다. 난간에서 내려온 여자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레고리우스의 이마에 전화번호인듯한 숫자를 적었다.

이후 여자와 학교로 간 그레고리우스는 도무지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수업에 함께 들어왔던 여자가 조용히 떠나자, 그레고리우스는 외국어 억양으로 말하던 그녀의 모국이 포르투갈이라는 걸 떠올렸고 수업 도중에 학교를 나와 배회한다. 그러다 에스파냐 책방에서 어떤 여학생이 읽다가 놔둔 '언어의 연금술사'를 발견한다. 책방 주인에게서 책의 일부분이 무슨 내용인지 듣게 된 그레고리우스는 무작정 리스본으로 향한다.



아내와 이혼 후 15년 동안 한결같은 삶을 살아온 교수가 낯선 여자를 만난 뒤 그녀의 모국어 쓰인 책을 접하곤 리스본으로 훌쩍 떠나게 된다. 갑자기, 문득, 어떠한 이유도 없이 말이다. 평범했던 그레고리우스의 일상에 변화를 준 건 그 여자였지만, 떠날 마음을 먹게 만든 건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아마데우 드 프라두였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책에 대해 알아보다가 점차 프라두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전에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_그들도 다른 사람이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과 그들 스스로 경험하는 방식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느낄까? 그들에게도 내면의 익숙함과 외부의 익숙함이 서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동일한 사람의 익숙함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일까?
이런 의식이 불러오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는, 스스로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바깥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커진다. p.105~106

_"현재 완성되지 못한 자기 인생에 대한 의식 자체가 불행이라면 누구나 평생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지. 반대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인생을 위한 조건이야. 그러니 불행을 만드는 요소는 분명히 이와는 다른 그 무엇이지. 그건 바로, 완성되고 완전한 경험을 하는 건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야." p.264




귀족 집안의 자제였던 프라두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어야만 했다. 10대 시절부터 그런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애를 쓰긴 했지만, 스스로가 원하는 인생과 아버지가 정해준 인생 사이의 괴리가 너무나 커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잃게 된 것 같았다. 부모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프라두는 너무나 괴로웠을 것이다. 귀족 집안, 판사 아버지, 장남이라는 그의 처지로 인해 늘 모든 이에게서 기대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기에 정체성을 잃어갔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스스로에 대한 인식,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담긴 책이 바로 그레고리우스가 발견한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아마 그레고리우스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태껏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혼한 아내에게서 이따금 들었던 말들이나 학교에서 그를 완벽한 선생이라는 뜻으로 부른 별명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맞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칭찬이나 기대가 좋은 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어떤 이를 틀에 가둬놓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책을 발견한 후에 틀에서 벗어난 여행을 하며 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깨달음을 얻어 갔다. 그리고 프라두는 무언가를 계속 쓰는 행위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라두가 성인이 되어 의사로 살아가던 시대는 살라자르가 독재를 하던 시기였다.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던 의사 프라두는 독재 체제 하의 비밀경찰의 목숨을 구해준 사건 이후로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기대와 사랑을 받던 그는 그런 것들이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완전히 외면을 당하자 그것 역시 견딜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때부터 저항군에 들어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을 뒤흔들어버린 여자 에스테파니아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가 오랜 친구인 조르지의 연인이라는 걸 알고 괴로워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남자는 사랑 또한 마음 가는 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에스테파니아의 마음이 프라두와 같았을지라도 인생에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구와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그는 타오르는 마음을 내려둘 수밖에 없었다.
평생 그렇게 괴리를 안고 살아야 했던 프라두의 삶이 안타까웠다. 적어도 그가 살았던 시대가 독재 체제는 아니었더라면 어그러진 삶이 그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어서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_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p.316~317



그러나 프라두의 삶을 되짚어보던 몇 주 간의 뜻밖의 여정으로 인해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안에 숨어있던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여행은 여운을 남겼다.

몇 해 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그래서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영화 내용도 가물가물해진 지금에서야 갑자기 책이 떠올라서 읽게 됐는데, 다행히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좋은 문장이 많아서 몇 번이고 읽기를 멈추고 메모를 해야만 했다. 다 읽고 나니 꼭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너무 좋은 책이었다.
영화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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