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주 여러 번 읽게 된다. 초,중,고 학생들과 성인들까지 함께 읽고 나눌 이야기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떠오른 키워드는 '용기'다. 용기를 가져야할 때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거나 없는 사람인 듯 침묵한 내 자신이 요즘 잘 보이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북태평양 알레스카 베링해까지 흘러가서 4~5년을 산 뒤 다시 모천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이 책은 연어의 회귀과정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천적인 물수리와 곰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북태평양을 출발해서 초록강까지 오는 과정과 초록강에 도착해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과정, 마지막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 연어들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만나 희망 속에 알을 낳는 부분이다.
집순이를 자처하는 내게 연어들이 그만그만하게 살던 곳을 떠나려고 대열을 정비하는 모습은 용기로 보였다.. 잘 살고 있는 근거지를 떠나야할 때, 설렘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그래서 살면서 하게 된 몇 번의 이사는 모두 남편의 결정이었고, 결과적으론 늘 잘한 거였다. 나 혼자라면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용기를 내야할 때 회피하는 것은 머묾이 아니라 퇴보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 한 번 용기가 떠오른 대목은 연어들이 오랜 논의 끝에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다. 이 일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저항을 받아야하고 그 과정에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도 연어들은 힘든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옳았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몸이 약한 연어나 알을 너무 많이 품어 몸이 무거운 연어들에게 주어진 인간이 만든 길 쪽으로 슬쩍 끼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힘든 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설득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은빛연어가 무리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아정체성을 잃지 말자는 주장이었다. 연어의 특징는 회귀와 역행의 모습이다. 무사히 회귀한 뒤에 역행을 잃어버린다면 연어 고유성의 절반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절반의 모습으로 살다보면 어느 새 회귀라는 절반도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선 이런 내용까진 없고 다만 역행이 연어의 정체성이고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연어라고 할수 없다는 말로 무리는 설득된다.
늘 어려운 결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선 그 결정이 옳았다. 떠나야할 때를 알아서 실행에 옮겼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역행했다. 그리고 그 뒤에 '잘 먹고 잘 살았다'가 아니라 자신들의 중요한 일을 마치고 기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왜 사느냐고 끊임없이 의미를 물었던 주인공 은빛연어조차 특별한 보상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늘 질문을 갖고 살아온 과정 자체가 이미 특별한 삶이며 보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질문하고 회의해보는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억한다. 책이든 그림이든 무엇이든 보고 느끼며 질문을 가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행위 안에서 어느 날 문득 떠나야 할 때를 만나거나 역행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정말 그때는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의문에 대해 온몸으로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