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를 여러 번 읽다가 작가가 쓴 다른 책이 궁금해 읽게 되었다. 앞의 책이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의 검서관 이덕무의 생애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이 책의 내용은 정약용의 유배시기를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세세한 부분에만 작가의 상상을 덧붙여 조선 후기 선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 때의 걸출한 인물이다. 성균관을 거쳐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게 되자 왕의 신임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한강을 건널 때 사용했던 배다리를 설계했고, 기중기를 만들어 수원화성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일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부분을 훌쩍 뛰어넘어 정조 승하 후 일어났던 신유박해로 유배를 떠난 이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당시 서학은 젊은 학자들에겐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숙청의 수단으로 삼았던 정치 세력은 배교하지 않은 천주교인의 형제인 정약전과 정약용을 전라도 땅으로 유배 보냈다. 1801년의 신유박해로 정약용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이다.
이 책은 그 험한 세월을 사는 동안 남은 가족들의 생활과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시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화자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다. 그는 16세 때 아버지의 참담한 모습을 보았다. 죄인의 아들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세가 기우는 것은 물론 집안과 왕래하는 이들도 드물다보니 나이 찬 누이의 혼담도 나오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안사람들은 가진 것을 내다 팔고 아들들은 책잡히지 않으면서 집안을 끌고 갈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런 세월이 수십 년 간 계속 되었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기간동안 강진의 초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이끌기 위한 개혁사상을 책에 담았다. 그가 쓴 책들이 500권에 이르렀지만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백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자식의 입장에서 쓴 이 책을 통해 정약용의 유배생활과 남은 가족들의 어려움을 들여다보았다. 생계를 위해 의원노릇을 하던 맏아들을 크게 책망하던 정약용의 편지를 보면서 생활보다 이상을 중요시했던 당시 조선의 선비정신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핍박하거나 모해하는 일은 여전하고, 새로운 사상을 남 먼저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에 속한다. 다산의 후반기 생애와 그 자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만이 삶이 묻는 질문에 좋은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