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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전원일기>와 비슷하다. 작품에 나오는 600여명의 등장인물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마을사람들처럼 정답다. 장장 25년이란 시간에 걸쳐 5부작 21권으로 출간된 토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서희의 동선에 따라 내 마음이 움직였다. 어린 서희가 길상의 등에 얼굴을 기대고 별당아씨였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삼킬 때는 어미 잃은 병아리를 보듯 안타까웠다. 조준구 부부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그 마을의 지주임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선 어떤 자리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던 윤씨 부인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용정에서 길상의 애정을 구하려고 목도리를 사러 상점에 들어갔을 때 보여준 도도함에 내 턱이 덩달아 당겨지는 느낌들. 마지막에 온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벗겨지는 기분으로 느낀 독립의 감격까지 그렇게 서희의 세월을 따라 울고 웃었다. 그러다가 한 번 두 번 거듭 읽게 되자 서희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의 삶에 마음이 갔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해 돈과 음식을 그악스럽게 취하던 임이네조차 친근한 이웃으로 느껴졌다.

 

박경리 선생의 모질지 못한 성품 탓인지 21권이나 되는 긴 서사에 특별히 악한 인물은 없었던 듯하다. 물론 조준구 내외나 임이네, 나중에 김환을 일본경찰에 잡혀가게 한 지삼만 등이 질나쁜 인물로 나오긴 하지만 그 인물들조차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여지를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선하게 살면 복을 받았고, 자신만 알면서 살아간 사람들은 끝이 좋지 않아서 은연 중에 독자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잃지 말것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에게 특별히 뭔가를 해주지도 않았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백정의 사위로 들어가서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치는 관수.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살아갈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어이없이 열병에 걸려 한줌 재가 되어 돌아온 관수를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관수의 선행의 보답을 하고 있다.

반대로 악인의 모습으로 나오는 조준구 부부와 임이네의 최후는 평온하지 못해서  독자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집중할 수 있는 인물이 매번 달라지는 것도 이 대하소설을 읽는 묘미다. 이용과 월선의 사랑에  흠뻑 빠졌던 적도 있고, 한복과 거복의 대비되는 일생을 집중해서 읽은 적도 있다. 주인공들뿐만이 아니라 하인들과 마을 사람들, 일꾼들의 삶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연결시켜주고 있어 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지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재미다.

 

토지는 내 책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꽂혀 있다. 이제는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서 읽게 된다. 어디를 뒤적여봐도 익숙한 배경과 등장인물이 나온다. 긴 시간동안 심혈을 기울인 박경리 선생의 노고가 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처음 읽게 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내용에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겠다. 나는 한꺼번에 21권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다섯권씩 구입해서 읽으면서 또 구입했다. 도시에서 태어난 내가 시골의 정서를 느끼며 살수 있었던 것은 <<토지>>를 여러 번 읽은 덕 같다. 끊임없이 출간되는 많은 책들 속에서 <<토지>>를 만나서 재미있게 여러 번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토지 1-20권 세트

박경리 저
마로니에북스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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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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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그러셨군요.
    4~5년전에 광양이랑 순천 토지 세트장도 들러보고...드라마 좀 보다가 말고...
    저는 선물받은 태백산맥을 1권 읽고는 2권을 못나가 중단. 그러다 다시 1권을 읽고 2권을 조금 읽다가 중단한 상태.

    2013.06.11 22:2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저는 이 토지를 너무 사랑한답니다...마치 저의 먼 친척 같아요...토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근데 아들에게 아무리 읽으라고 해도 못읽더라고요...다 다른 거 같아요. 좋아하는 책들이...그래서 좋은 거지요...^^평사리 가보고 싶은데 아직 못가봤어요...언젠가는 가게 되겠지요...^^

      2013.06.12 08:27
  • 스타블로거 책방꽃방

    저는 시도도 못해본 책이에요,
    아직 박경리 작가의작품을 하나도 만나보지 못했으니 참,,,

    2013.06.11 23:43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다른 작품들 많이 읽으시잖아요...저는 토지를 읽는 바람에 다른 소설들을 많이 읽지 못했다는 변명을 해봅니다...ㅎㅎㅎㅎ

      2013.06.12 08:28
  • 헤시오도스

    그러셨군요. 저는 읽다가 포기했는데, 다시 시간나면 읽으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도전이긴 한데, 모든 분들이 박경리 선생을 높이 사셔서 그 분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거 같거든요.

    2013.06.12 15:1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저도 이 작가의 다른 책 두 권은 아직 못읽고 쟁겨두고만 있어요. 토지는 술술 읽히는데 다른 작품은 잘 넘어가지 않아서 나중에 읽으려고요...어째든 한국문학에 커다란 힘을 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거에는 별 이론이 없을 듯합니다. 기회 되시면 조금씩 읽어보세요^^

      2013.06.14 10:35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