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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정조처럼

[도서]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조선시대 후기의 명군주를 꼽으면 대게 정조를 꼽곤 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허무하게 떠났고 그 이후에도 자신에 대한 숱한 음모와 폐출 위기를 겪었고, 부임 이후에도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당대에 개혁을 이끈 군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다른 군주와 달랐을까요. <리더라면 정조 처럼>은 국가를 이끈 군주라면 어떤 자질과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7개의 큰 주제와 49가지 소주제로 정조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입니다.

 


 

 

1장은 정조의 공부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정조는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반드시 책을 두 번씩 보았다고 합니다. 또 글을 읽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하루에 어떤 글을 몇 번 읽을지를 정했다고 합니다. 특히 여러 책을 읽기보다는 한 책을 깊게 읽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또 신하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쌓았고, 늘 활쏘기 등 무예를 수련하며 신체를 꾸준히 단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조는 검소함을 유지하면서 궁중 재산을 아껴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합니다. 책을 읽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리더가 아니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2장은 조선 후기 시대 흐름을 읽는 정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조는 당시 4대 개혁을 선언하였는데 이는 민산, 인재, 융정, 재용이 그것입니다. 민산은 백성들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는 것, 인재는 인재 육성, 융정은 국방개혁, 재용은 국가 재정 안정입니다. 특히 인재를 모으고 내란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탕평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자신의 방 이름까지 '탕탕평평실'이라고 바꿀 정도로 이에 적극적인 것이 눈에 띕니다. 어린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휼전칙>을 제정하여 4세~10세 걸식 아동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 상업 발달을 위한 금난전권 혁파 등 제도 개선을 보인 것도 정조의 리더십을 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로 보입니다. 또 미래를 보고 식목 정책을 추진하여 수원에만 1200만 그루를 심는 것은 것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백 년 이후를 내다보는 정책을 세우고 나아가는 리더십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너무나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3장은 인재 등용에 대한 정조의 대처를 봅니다. 정조는 '서얼허통'이라 하는, 서자에 대한 차별을 공식적으로 철폐하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얼로 차별받던 인재들이 대거 기용되었고, 평민들에게도 인재 기용의 문을 열었습니다. 또 정치적 조율을 위해 정파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한 인재들을 기용하고 개혁을 책임질 수 있는 인재들을 중용했으며, 정약용 등 젊은 인재들의 발굴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정조의 대표적언 업적 중 하나인 규장각도 이때 설치되었는데, 왕립 도서관이자 학술기관으로서의 규장각을 통해 학문 연구의 활성화 및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를 보면 리더는 한 가지의 목적만으로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4장은 강건한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조의 9가지 좌우명이 인상 깊습니다. 정조는 아래와 같은 9가지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 입지 : 뜻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목표를 정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기를 통솔하는 것으로 모든 근간이 되는 것

2. 이치를 밝히는 것. 세상의 모든 만물에 대해 이치를 밝히는 것이 군주가 해야 할 일

3. 거경 : 학문과 역사, 즉 세상에 대한 공경을 높이 해야 함

4. 하늘을 본받는 것 : 중정하고 순수한 것이 하늘의 도

5.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 : 간언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스리고 천하의 선한 말을 나오게 하는 방법

6. 학교를 일으키는 것

7. 인재를 기용하는 것

8. 백성을 사랑하는 것

9. 검소를 숭상하는 것

5장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정조의 후궁 의빈 성 씨에 대한 이야기인데 궁녀에게 3번이나 청혼한 것도 특이하고 이를 두 번이나 거절한 궁녀의 모습도 신기합니다. 의빈의 몸이 약해졌을 때 매일 아침마다 그녀를 찾아갔고, 의빈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한탄하며 눈물 흘리면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고, 직접 묘비에 묘지명을 쓰는 등 지극한 애정을 표현한 부분에서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6장에서는 포용의 정치를 한 내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원시를 개발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정조의 화성 건설은 농업, 상업, 국방 제도의 개혁을 통한 혁신 도시의 완성을 위한 모습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규모 둔전이 대풍작을 이루고, 저수지를 개발하면서 선진 농법을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며, 금난전권의 혁파로 도시빈민층과 영세 상인 및 소생산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나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화성을 설립하기 위해 전문 기술자들을 존중하여 성곽을 빠르고 견고하게 축성할 수 있었던 것도, 정조의 혜안을 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 7장은 조선의 진경 문화시대를 열게 만든 정조의 노력입니다. 정조는 책을 독점하려고 하는 당시 풍속을 거부하고 활자 문화를 적극적을 도입, 책을 널리 퍼트려 조선의 문화를 발전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또 실학자인 정약용을 통해 화성 축성을 지시하여 기중기를 연구하였고, 1만 근의 무게를 옮길 수 있는 수레를 개발, 이 수레 제작법을 전국에 반포하는 등 기술발전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문화에도 신경 쓴 정조는 혜경궁의 잔치를 주최할 때 조선의 악기로 조선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당시 중국의 음악을 연주하던 사대문화를 타파하고자 하였습니다. 국가의 법률과 정책,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서적의 상당수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여 한글을 퍼트리는 데에도 주력하였고, 무예를 퍼트리는 데에도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중화주의에 청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진경시대를 열었습니다. 김홍도를 대표로 하는 다양한 화가가 등장하는 것도 이때이고, 주체적인 문화가 수립되어 번성하였습니다.

정조는 25년이라는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해낸 리더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조가 보여준 리더십, 그리고 각 분야에 걸쳐 보여준 자신감 등은 곧 다가올 3월 선거에 새로운 리더를 뽑아야 하는 우리 시대에도 많은 귀감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서도 정조가 평소에 행한 행동들을 볼 수 있는 1장의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중시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를 적용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게 느껴집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정조에 대한 깊은 연구가 느껴지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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