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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

[도서] 한나 아렌트의 말

한나 아렌트 저/윤철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yes24의 메인에 "한나 아렌트" 특별집 모음이였나? 광고가 뜨는걸 보고, 뭐지?하고 눌러 소개글을 보고는 누군지 일면식도 없던 한 철학자의 책을 샀다. (지금도 무슨생각으로 샀는지..) 철학에 그닥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철학책이라하면 어렵고 또 어려운 책으로만 알아 읽지도 않았는데, 그냥 무심코 흘린듯이 샀던 책 묶음에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이 개중 얇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을 TV에서도 그토록 유명한 책인지도 모른채 읽었던 그 책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놀라워 빠져들었던 책이였다. <악의 평범성> 이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며, <사유> 즉 비판적 사고에 대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였는데, 이 책 <한나 아렌트의 말>에서 내가 이해했던 "악의 평범성"에 대해 그녀가 말하고자했던 의미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대담은 총 4편으로 구성되었고, 서문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했던 김선욱 교수님의 글을 보고 그녀가 다시금 놀라운 생각을 했던 정치이론가임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다 읽고 서문을 다시 읽게되었는데, 교수님이  짚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읽게 만들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의 사상 전체를 훑고 있는 책이기에 얇은 책의 두께가 놀랄만큼 내게는 꽤나 방대한 내용이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대담은 그녀의 정체성이 아닐까한다.

그녀는 유대인이고,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그곳의 국적을 갖고 오랫동안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국어는 여전히 독일어이고, 그러면서 그녀는 여전히 유대인이였다. 하지만 미국인으로 오랜기간 미국에서 지냈음에도 중요한 말이나 정확한 표현을 위한 언어로는 모국어인 독일어로 말함으로써 그녀의 본질적인 정신은 모어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아마도 유대인이면서 독일인이 그녀가 독일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있는지, 그렇다면 가장 오랜시간 미국에서 살아온 그녀의 정체성에 혼란은 있지 않았는지를 묻고 싶었던 챕터가 아닌가 한다.

"항상 그랬죠.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내가 할 일이 뭘까? 미치광이가 돼버린것은 독일이지 독일어가 아니었죠. 둘째, 모어를 대신할 언어는 없어요." p.49

 

두번째 대담은 그녀의 저술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나는 우리모두에게 아이히만의 모습이 있다. 그렇기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쓴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렌트는 그렇지 않다고 정확히 말한다.

누군가 잘못한 일에 대해 그녀가 꾸짖으면, 그들의 대답이 "너무 평범하다"거나 "너무 진부하다"는 의미, 그것이 그녀가 말하고자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이히만은 자신의 일에 대해 변명을 했고, 그 변명이 그녀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고 있다고. 사실 아직도 그녀의 말이 100%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뉘앙스의 단어(the banality of evil) 인지 아주 조금 느껴졌달까..? 그녀는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으로인해 타인이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꺼리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스템으로 이뤄진 범죄에 대하여, 그녀는 방조 또한 죄가 됨을 말한다. 칸트의 말을 빌어서. 정언명령. 나의 행위의 규범이 보편법칙이 되게하라"는 누구도 인간은 순종할 권리를 갖지 않기에 비판적 사고를 통해 아닌것에 대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칸트의 말을 통해 아렌트는 말한다. 아이히만과 같이 시스템 속에서 즉 공무원으로 그들이 한 행동이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나는 몰랐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상황이 무력함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관료제는 익명성을 가짐으로써 책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방치하는 것들의 결과는 어짜피 뻔한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인간이기에 생각하고 숙고해야 그 다음이 있음을 아렌트는 말한다.  아이히만을 읽으면서도 "나는 어땠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인간으로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나쁘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책임 범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의 정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p.102

 

세번째 대담은 정치에 관해서다.

아렌트가 살았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국가의 정치 형태. 냉전이 치열했던 그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나타나는 챕터다. 개인적으로 이 챕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였다.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동의 소유라는 부분을 그녀는 가장 날카롭게 깬다. 그녀가 비판하는 사회주의는 정말 순수한 사회주의의 사상 그 자체이다. "공동소유"라는 그 개념 자체. 그녀는 공동소유는 없다고 말한다. 재산은 나와 같은 특정인에게 속하는 것이지, 공동의 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는 모순인 것이다. 결국 그 개념은 가장 최상단 정부의 소유라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수탈의 개념으로 변질 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국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고민해야 될 부분이며, 산업화 등을 통해 재산을 수탈당하고 착취 당한 이들에게 어떻게 다시 돌려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필요하다 말한다. 여전히 이념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민이지 않을까? 누구에게 걷어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것인가.

 

네번째 대담은 미국의 정치상황 및 그녀 사상의 전반을 다시 돌아본다.

개인적으로 이 대담에서 아렌트는 1970년대의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만, 현재의 이스라엘을 본다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그토록 가혹하게 폭격을 퍼붓는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가 무척 궁금해지는 챕터였다.  그녀가 말하는 역사 결정론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의 시점은 언제 여야 했을지.. 뭐 이런 막연한 생각을 하게하는 대담이였다. 

 

마지막은 그녀의 글들에서 묻어나오는 가장 중요한 <사유> 그녀는 사유는 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에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유하지 않는것>이라고도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유를 통한 비판적 태도는 결국 어떤 현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는 것이고, 그 전환점을 돌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다시 곱씹게 만들기에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것보다 더 안전하지 않을까.

 

아렌트의 4편의 대담을 보면서, 다른 책이 많이 어렵겠지만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그녀의 책들을 읽으며, 반드시 다시 이 책을 재독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ㅋ)

얇지만 방대했고, 글보다 그녀의 말을 통해 좀더 직관적으로 그녀의 사상을 느낄수 있는 책이였다.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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