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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여름밤 각본집

[도서] 남매의 여름밤 각본집

윤단비,김기현,김혜리,이슬아,최원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시국과 삶의 태가 영화관을 가기에는 요원한 입장이지만, 영화라는 미디어가 무척이나 그립고 (24인치 모니터, 스마트폰의 손바닥만한 디스플레이는 싫고)그리하여 yes24 메인페이지에 걸려있는 남매의 여름밤 '각본집'을 주문하게 된다.

 

좋아하는 영화평론가들의 추천사, 감독 코멘터리도 들어있는, 지난 가을에 읽었던김보라 감독의 '벌새'각본집 (대본과 감독인터뷰만 들어있었음) 에서 좀 더 나아간 편집본의 시나리오.

 

나는 꿈을 많이 꾸는데, 그와 더불어 어떤 글을 보면 머릿속에 관련 매체영상, 이미지 하나 없어도 잘도 글을 영상화 시킨다.

대본집만으로도(혹은 원작의 동명소설도 상관없다) 영화를 보면서 충족되는 모든 시각, 청각의 것들이 글로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매의 여름밤은 포스터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얼굴로 첫인상에 대한 느낌을 가지는 것처럼 영화는 포스터로 첫인상이 정해진다.

 

남매의 여름밤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글(눈앞에서 유년기의 어느 계절이 절실하게 흘러간다. (이동진 '언제나 영화처럼' 2020.8.21 포스팅 참조)) 을 보았기에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다. (포스터에서 풍기는 서정적인 여름밤 풍경 같은 이야기들)

 

그런데 생각보다 감정선이 촘촘한 가족생활에서 생기는 미묘한 것들이 담겨 있었고, 그 중심에 사건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나는 그저 내가 여름방학이면 놀러가서 몇 일이고 눌러 앉아 아무 고민도 없이 지내던 외갓집의 풍경을 떠올렸다. 도심이지만 33번 버스 종점이었던 외갓집은 산으로 둘러 싸여 시골정취를 한껏 풍겨대던. 손자,손녀 둘을 혼자 돌보시던 외할머니에게는 늘어난 우리 두 식구(오빠와 나) 역시 부담스런 일상의 짐이었을텐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침 일찍 장사를 나가시던 외삼촌, 외숙모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화 리뷰는 아니지만 스포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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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쉽게 낭만적일까. 이야기는 그렇지 않은데, 나는 그냥 실생활도 그렇고 책이나 영화에서도 쉬운 가치판단과 쉬운 판단선을 가지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한 번 쓰러지신 후에는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시고(더위를 먹고 쓰러지셨다 하는데, 아마도 뇌출혈 등의 초기 증상이었던 듯), 혼자된 아빠는 살고자 아등바등(물건 떼다 팔기, 기술직 배워보기, 수시로 사람을 뽑는 일자리에 기웃거리는 등), 결혼한 고모 역시 뭔가 평탄치 않는 삶의 분위기를 풍기고(캐리어를 끌고 (우리 식구가 들어오고 난 후) 합류하게 된다), 나는 사춘기에 시덥잖은 고민들 속에 있고(쌍꺼풀을 할까말까 돈은 어떻게 구하지), 동생은 그냥 철없다. (아빠와 헤어진 엄마와 만나고 들어오며 양 손 가득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며 자랑하는.)

 

그런데 그게 참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라, 사는게 그저그래 부모님집에 들어와 얹혀 살게 되는, 그런데 아버지가 아프시니 요양원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어릴적 누이와 살던 집을 이제는 어찌 팔아서 어떻게 삶에 보탬이 되게 해야하냐는 등의 현실적 고민들. 그 속에서 자라나는 남매.

 

할아버지는 의외로 요양원을(보내야 하나 말아야하나 아빠와 고모가 고민을 많이 한다) 가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시는데(가족구성원의 마음을 읽은걸까_ 아니면 우리 자식들의 부채감에서 드는 죄책감의 감정일까)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와 남매는 밥을 먹다가 할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고(동생이 야무지게 조기살을 발라내는 장면에서 누이가 울음이 터진다_이런 묘사는 읽는이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한다. 먹먹한 감정)

집 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없는, 집은 변함없이 그자리 그대로 남아 삶 속에서 역할을 다하는 듯 느껴졌다.(촬영감독의 코멘터리에도 병기(남매의 아빠), 미정(남매의 고모)이 집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촬영감독은 병기와 미정의 두 사람이 아닌 병기와 미정이 하나로 묶이고 집이라는 하나의 캐릭터(역할)의 샷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존재와 부재가 함께 그려지는 풍경. 오래된 이층 주택의 1층에서 저녁을 먹는 3명의 가족의 모습에서 없는 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여름 밤.

 

윤단비 감독의 코멘터리에서 나오는 부분인데, (영화 연출이 이래서 중요하다는 깨달음...) 할아버지와 손녀인 옥주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장면(대본에는 없는 부분)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장면이 있다.

 

할아버지의 생일파티를 한 저녁, 모든 가족이 잠에 들고 손녀인 옥주는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오는데, 거실에 울려 퍼지고 있는 잔잔한 음악과 거실 소파에 앉아서 맥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눈을 감고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내려가서 아는 체를 할까, 다시 올라갈까 고민하던 중 손녀 옥주는 그냥 2층 계단에 앉아서 함께 음악을 듣는다. (이 장면 덕분에 마지막 장면이었던 할아버지가 없는 밥상에서 옥주가 우는 장면의 슬픔이 더욱 배가 되었지... 근데 난 대본집으로 읽었으니(이 이야기는 각본집이 끝나고 나오는 부분이기에) 그거랑은 또 상관이 없네...)

 

내가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감정과 시간들을 가지고 자라나서 그런걸까. 누구든 이 장면 속에서 옥주의 감정을 나처럼 공감할까 궁금해졌다. 이전에 읽었던 [내게는 홍시뿐이야] 속의 국위, 선양언니의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요양원에 계신 (남의) 할아버지. 치매에 걸리셔서 내가 손녀가 아닌줄도, 손녀 대신 온 줄도 모르고 이말 저말 하시는 할아버지. 뜻 모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다가 마지막에 조용히 잠(낮잠)에 드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아마 큰 독수리가 되어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를 다 태우고 훨훨 날아가고 계실 것 같다고.

소설 속 할아버지와 영화 속 눈감고 음악을 감상하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묘하게 겹쳐진다.

 

벌새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이야기. 너무나 일상스러워 영화처럼도 느껴지지 않는 어제, 혹은 몇 해전 우리 이야기같은, 이런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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