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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그녀와 나는 가끔 조조영화를 본다.

영화를 기반으로 한 약속의 좋은 점은 영화 시작 10분전까지 만나면 되고, 영화 상영이 끝난 시점이 공식적으로 만남의 끝으로 연결되기에, 일상으로 편히 돌아갈 수 있다.

사실 우리 사이의 가장 좋은 점은, 둘 다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모든 점에서 아이를 중심에 둬도 서로 섭섭해 하거나,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 미안함에서 조금은 덜 미안해도 된다는 점이 우리가 공유하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녀와 나는 함께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된 사이다. 그래서 쉬이 "친구사이에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이의 유일한 단점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비정기적으로 연락을 한다. 어느 아침에는 이런 메세지가 도착해 있다.

"영화의 전당에서 <화양연화> 특별상영을 하네요."

"아 그 영화 10년전에 노트북으로 봤었는데 좋았어요.."

"리마스터 기념 재개봉이라네요. 전 아직 한번도 못봤답니다. 괜찮으면 내일 오전 어때요?"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조조영화는 봄날의 장범준 콘서트로 이어지고, 가을의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졌다. 우리는 우리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취향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갔다.

 

우리 대화에서 주어를 이루던 "아이가-"라는 문장은 "저는- "으로 바뀌어 나갔다.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낯선 상황 중 하나는 누구도 나란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혼 후 생긴 인간관계중 시어머님의 지분이 가장 클 것 같다. 어머님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정작 그 속에 나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늘 "그래, oo이는 어떻니?"라는 말로 시작된 대화는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늘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자연스레 '내'가 배제되어 있었다. 나는 자주 공허했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여름 날, 그녀가 이런 날에는 맥주가 딱인데, 라고 지나가듯이 던진 말에 오늘 저녁에 한잔 할까요? 라고 답했다. 그녀가 사는 조용한 주택가의 호젓한 영국식 펍느낌의 맥주집은 그렇게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7월이 생일인 내게 생일주를 사주는 그녀는 같은 날 두 달 뒤 생일을 맞았기에 우리는 여름과 가을자락에서  매 해 두 번은 만났다(술자리로). 우리 사이에는 함께 본 영화가 쌓이고, 같이 마신 맥주들이 방울방울 쌓여갔다.

 

최근 '샹치'가 개봉했다.  (카톡) '샹치'봤어요? 보러 갈래요? 라는 메세지에 그럴까요?라고 답하고 찾은 상영관에는 미리 예매해둔 표가 무색하게 관객이 우리 둘 뿐이었다..

 

"오늘 대관한 거나 다름없네요. 이런날도 다 있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큰 관에 아무도 없는 건 또 처음이네요."라며 기념샷이나 한장찍자는 그녀의 제안에 마스크를 야무지게 올려쓰고 렌즈를 응시했다.

 

카메라 화면은 거울처럼 우리를 담아냈다. 화면 속에는 집에서 아이 둘 건사하느라 진땀흘려 눅진한 티셔츠를 입은 어떤 엄마가 아니라, 한껏 취향과 감정을 발산하는 생기 넘치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한 해 두 해가 아닌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 속의 이런 시간들 덕분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라는 본명을 마녀 유바바에게 빼앗기고 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센이 '치히로'였음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강의 신 '하쿠'는 결국 마지막에 치히로를 구하고, 하쿠 자신도 마녀의 주술이 사라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때론 내게 그녀가 '하쿠'처럼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지, 나는 어떤걸 할 때 즐거웠지, 가을이면 영화제에서 영화를 봤었지, 봄이면 버스커버스커를 들었지, 여름이면 우리는 온천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했지 하는 소소한 일상과 감각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내가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강의 신 '하쿠'같다. <두 분은 어떤 사이세요?> 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녀는 내 특별한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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