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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도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저/김현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무난하게 지나간 줄 알았던 사춘기는 사실 채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어마어마한 혼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잠깐의 숨 고르기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 삶이 마구 뒤흔들리기 아주 바로 직전, 나의 담임은 어느 날 문득 열일곱의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넌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부모님한테 한 번 얘기해 보는 게 어떻겠니?”

몇 십 년의 교편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레 얻게 된 눈이었는지, 혹은 당신의 자녀를 실제로 유학시키면서 얻게 된 인사이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의 담임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나에 대한, 나의 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미국에 가지 못했고, 그리고 결국 둑은 터졌다.

 

처음에는 많이 애썼다, 둑을 보수하기 위해. 그러나 진정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 채 원래의 모습으로만 보수 될 뿐인 둑은 결국 다시,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둑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둑의 재료를 바꿔보기도 했고, 둑을 더 높이 쌓거나 두텁게 쌓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둑이 더 튼튼해진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설계 자체가 잘못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설계의 문제도 아닌지도. 어쩌면 나는 그냥 둑을 쌓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게 되면 멍청하게 다시 둑을 쌓을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기대 받았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학습 되었고, 그렇게 하면 어떤 안정감이 나를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둑 안의 물결은 흐르는 시냇물과 달리 거세지 않다.

 

그 안정감이 한 1년간 다시 내 삶에 주어졌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그러나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는지 최근 몇 개월 전부터 다시 나는 괴로워지고 있다. 어디선가 물새는 소리가 이제는 확실히 들린다. 둑이 터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피곤과 무기력, 우울과 함께 의미를 정확히는 몰라도 분명한 스토리가 있는 꿈들의 연속, 깊은 한숨, 느려진 발걸음 등.

 

[방어적 자아의식이 이 지진파를 멈출 수도 있지만, 지각 변동은 그래도 여전히 생긴다. 자신이 위기를 자각하기 한참 전부터 징후와 증상에 필연적으로 나타난다……정신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증상은 환영할 만하다.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화살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정신이 자율적으로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p35]

 

그리고 작가는 [융은 신경증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영혼의 고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p35]고 한다.

 

그러고 보면, 둑이 터지면 나는 그렇게 내가 누군지를 알아보는 테스트에 빠졌다. 그냥 심심풀이 심리 테스트에서부터 정식적인 검사까지.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놓치고 있었던 걸까. 마흔이라는 숫자가 더 가까운 30대 후반에서도 여전히 나는 어디에서 나의 무엇을, 혹은 어떤 나를 놓쳤는지 다시 찾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힘들었던 시간들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나는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놓친 것일까.

 

[돈과 권력이 표상하는 투사를 깨닫고 여기에서 물러서고 나면, 극단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하도록 부름받았는가?’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해야 하며, 그 답변에도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성화 과정에서는 여러 종류의 에너지를 실현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안정을 찾았다 싶은 바로 그 때, 다시 뿌리째 흔들리며 새로운 방향으로 부름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사회의 짐을 짊어졌든 간에, 경제적 속박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p158]

 

그렇다. 나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 어떤 나와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서,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했던 태도에서, 어쩔 수 없었던 환경에 굴복해왔던 자세에서 벗어나서.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삶의 질문에 대해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해답을 내놓고 만족하려했던 사람, 혹은 잘못된 질문을 해 놓고 해답을 바랐던사람에서 벗어나서.

 

바른 답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바른 답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의미 없이 반복해서 둑을 쌓던 일도 그만 둘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모든 불안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자유로운 느낌을 경험할 수 있겠지(p252).

 

바람은 불어오고, 고통스런 시간은 이제 막 다시 시작됐고, 그러나 예전만큼 과격하게 그 시간을 붙들고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혀 의미 없지는 않았던 고통의 시간 앞에 다시 선다. 제대로 된 질문의 칼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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