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열두 발자국/12가지 인생의 법칙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도서]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

이유미 글/최소영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이유미, 10대와 통하는 동물 인권 이야기,철수와 영희, 2017.를 읽고 쓴 서평

      

우리는 동물들의 슬픈 현실과 나란히 길을 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동물의 권리가 존중되기는커녕 생명이 상품이 된다. 품종묘, 품종견들이 비싸게 팔리고 고양이, 강아지, , 라쿤 심지어는 미어캣까지 이색카페라며 인기가 많다.“○○ 강아지 카페는 별로야. 거기 강아지들이 사람들이 만지는 걸 싫어해서 막 도망가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근데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도 매일 자기를 쓰다듬는 손님들의 손길이 어쩌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내주변에 동물 권리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주변에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데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동물의 권리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서 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건지. 이미 오랫동안 그 문제에 익숙해져 그것이 문제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내가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며 경비 아저씨한테 욕 먹을 때, 가축과 애완동물을 차별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동물원은 그저 좋은 곳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더 공부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책 표지를 보고 강아지가 막다른 길에서 주눅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뜬장에 강아지가 갇혀있는 것 이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그런 곳에 갇혀 있을 동물들을 생각 하니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동물원의 동물들

 

도시인들은 동물을 보기 위해 동물원에 간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동물원의 동물이 불쌍해졌다. 동물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동물의 묘기에 돈을 내고 환호하고 웃으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묘기를 보이기 위해 훈련받는 동물은 어떨까? 이 책에서는 서울대공원에서 공연하던 제돌이를 소개하고 있다. 제돌이는 2007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가 발견한 돌고래다. 하지만 제돌이는 2009년 바다에서 사라졌고, 한참 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부 그물에 잡힌 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퍼시픽랜드의 수족관을 거쳐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우연히 그물에 잡히거나 표류한 고래는 신고해야 하며 판매될 수 없다. 하지만 제돌이는 수족관에 팔려갔고, 다시 수도권으로 이송됐다. 낮이면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고, 밤이면 공연장 뒤에 마련된 길이 12m, 6m 깊이 3m의 실내 수조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2012, 변화가 찾아왔다. 돌고래를 좁은 수조에 가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결국 방류가 결정됐다. 제돌이는 벌써 방류한지 5년째이고 별 탈 없이 잘 지낸다고 한다. 제돌이 사진을 봤는데 그렇게 넓은 바다에서 잘 헤어치는 돌고래를 우리에 가둬 두었다고 생각하니 동물원의 동물들이 정말 미칠 만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전 동물원과 관련된 일로 시끄러웠었다.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도망친 퓨마 초롱이 때문이다. 초롱이의 4시간 반의 짧은 외출은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 8년 동안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던 초롱이는 열린 문을 보고 본능대로 행동 했을 뿐이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관리를 허술하게 한 직원과 사살을 결정한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고 동물 권익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동물원 가지 않기해시태그를 제안하는 등 캠페인을 벌였다. 초롱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제돌이처럼 동물원이 왜 잘못된 것인지 관심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서 동물원들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실컷 볼 수 있는 동물원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밥도 주고 다치면 치료도 해주고 그저 좋은 곳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동물원의 코끼리가 있는 공간은 야생에서의 삶에 비하면 천 분의 1에 지나지 않고, 북극곰의 경우에도 백만 분의 1도 안되는 극도로 제한된 곳에서 사는 것이었다. 안전함이 필요하다면 우리도 무균실이나 감옥에서 살아야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으로 동물들을 가두고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동물들을 보기 위해 우리에 가두고 길들여야만 하는것일까?

 

고기로 태어나는 생명들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건 동물원의 동물들 뿐만이 아니다. 11, 치느님 같은 신조어를 낳을 만큼 닭요리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닭은 2020년이면 돼지고기를 제치고 육류로 소비되는 동물 1위로 등극할 예정이라고 한다. 치킨, , 닭발, 닭똥집.. 닭요리는 나또한 가장 좋아하는 요리이다. 그래서 내가 먹는 고기에 관한 내용은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또 외면한다면 절대로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아리들은 태어난 순간 성별 감식을 받는다. 이때 수평아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서 모두 버려지게 되고 우리가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리던 병아리의 출처이다. 암평아리들은 부리가 잘린채 오로지 알을 낳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철창에서 알을 많이 낳도록 24시간 동안 인공 조명 아래에서 지낸다. 알 낳는 횟수가 줄면 환우라는 과정을 거쳐 닭의 목숨을 걸고 털갈이를 시켜 생산성을 높인다. 엄청난 희생을 거쳐 우리는 슈퍼 푸드라는 달걀을 얻고 치킨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가축과 애완동물을 구별짓는 사람에게 앞으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 주자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자는 노력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숙제이다. 돈이 좀 더 들면 어떤가. 그 대신 다른 생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산다는 것.

 

사람들은 혈통으로 동물을 구분 짓는다. 혈통이 있는 동물과 없는 동물. 그리고 잡종개나 똥개가 아닌 품종이 있는 동물을 다들 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정말 품종이나 혈통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강아지 농장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윤리적으로 생산된 강아지보다는 믿을 만한 곳에서 건강한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은 인식이 조금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업자들은 마치 가정집에서 낳은 강아지인 것처럼 고급 견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높은 가격에 팔아넘긴다. 보호 센터에 있는 개나 고양이들은 짧은 기간동안 보호가 아닌 방치후에 안락사 당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동물들로 강아지 농장과 펫샵에서는 넘쳐나고 비싼 값에 팔린다.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가. 생명을 사고 판다는 건 정말 슬픈 일 이다. 우리는 그런 곳에서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비가 있으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엾은 생명을 돌보는 일

 

골목길을 조금만 걸어도 금방 길고양이들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길고양이들이 불어난 것은 산이나 들에서 야생으로 산 고양이들이 도심으로 들어와서가 아니다. 사람 손에 길러졌다가 하나 둘 버려진 생명들이다. 고양이 관련 다큐를 봤는데 길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다친 애들은 직접 동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는 펫맘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었다. 나도 언니랑 집 주변에 사는 새끼 고양이 6마리와 어미 고양이에게 먹이를 자주 주러 다니던 터라 재미있게 봤었다. 몇 년 동안 그런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와서 정말 멋있고 그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펫맘 활동을 지지하는건 아니다. 내가 먹이를 줄때도 경비 아저씨가 여기서 이런거 하면 안된다고 먹이와 물을 바닥에 버리고 굉장히 싫어 했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해코지당할까 걱정되서 조심 조심 챙길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 혐오자에 의한 범죄는 이슈가 되지는 않지만 항상 있다. 볼때마다 마음이 정말 안 좋고 미안하다. 고양이들 마지막으로 먹는 밥 일 수도 있다는 마음에 챙겨주는 건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펫맘 활동에 대해 지지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냥 지켜봐 주기만 해도 충분하고 불쌍한 생명을 돕는 것을 나쁘게만 바라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패딩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오리털과 거위털로 빵빵하게 채워진 패딩과 모자 주변에 쓸데없이 펄럭이는 털들이 주변에 널려 있을 것이다. 모자 주변에 달아 놓은 라쿤털은 보온을 위한 역할이 아닌 장식용이다. 모피 생산을 위한 야생동물들은 밀렵만으로 충족시키기 어려워 대부분 농장에서 사육된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비좁은 철장만이 그들이 보는 세상 전부이고 오직 죽기 위해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동물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면 빠르다. 생산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적은 인권비로 더 많은 가죽을 생산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동물이 죽어서 사후 경직이 일어나면 가죽의 질이 떨어진다. 앙고라 토끼나 거위 역시 한 번 털을 뜯어도 수개월 후에 다시 털이 자라기 때문에 죽이는 것은 손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가죽을 벗겨야 좋은 품질의 값비싼 가죽을 얻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누군가 내 피부를 벗긴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고 이 지옥을 누군가 멈춰주길 간절이 바라고 있을 것이다. 모피가 왜 자랑스러운 걸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피 제품이 일부 나쁜 업자들이나 그렇게 하겠지. 내가 갖고 있는건 그런게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또 제자리 걸음이다. 작년에 패팅을 살 때 사고 보니 오리털제품이었다. 계속 맘이 안좋아서 아빠한테 말을 했더니 아빠는 아무렇지 않아했고,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담부터는 꼼꼼히 따져야 물건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의 원리로만 생각하면 동물 가죽과 털을 산 채로 벗기고, 뜯어내지 않을 이유가 정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제품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떤 희생을 거쳐 나에게 온 것인지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고통 받아도 되는 생명? 그런건 없다.

 

인간을 편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키우는 동물들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도 있다. 만약 소중한 내 반려견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수술을 해야 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수혈 받을 수 있는 피다. 사람은 헌혈을 하지만, 동물은 스스로 헌혈을 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공혈견'이다. 국내에는 몇몇 대학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공혈견을 기르지만, 국내에서 사용하는 개 혈액의 90% 정도는 민간 독점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취급하고 있다. 그곳에서 공혈견으로 쓰이고 있는 개들은 약 300마리. 음식 쓰레기를 먹으며 뜬장에서 살고있는 공혈견들은 평생 피를 뽑히다 죽는다. 이것을 고발하는 영상을 봤는데 강아지 농장과 별 다를게 없었다. 아픈 반려견을 위해 꼭 필요한 공혈견인데 아무리 법적 규제가 없다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반면 영국에도 공혈견이 있지만 그곳의 개들은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개들의 건강 관리와 채혈에 대한 세부적인 규칙이 있다. 그리고 6~12개월이 지나면 일반 가정으로 분양된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유럽등은 반려견 헌혈 문화가 자리 잡아 헌혈 센터가 보편화 돼있고, 헌혈증까지 제공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기본적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외국을 보면 정말 부럽다. 우리나라는 반려견 헌혈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올해가 되서야한국헌혈견협회가 만들어졌다. 동물학대라고 생각하지 말고 보호자들과 반려견들이 헌혈 문화 동참한다면 공혈견도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0대와 통하는 동물 권리 이야기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 할 수 있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도록 만드는 책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표지에 있는 나비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물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조금 관심을 가진 뒤로 부터는 전혀 당연해지지 않는다. 물론 불편한 현실에 피하고 싶겠지만 피하고, 묻어둔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잘 몰랐던 사실들에 책을 읽으면서 충격받고, 또 다시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을 해왔던 건지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유를 살 때, 거위 털 이불을 고를 때, 고기를 사고 먹을 때,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화장품 회사를 지나칠 때 마다 희생 되고 있는 동물들이 생각났다. 알고 있는데도 그 전과 같은 생활을 하기에는 내 양심이 너무 찔렸고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에게 괜히 미안했다. 앞으로는 동물의 고통이 최소화된 상품을 소비하고 작은 금액이지만 유기동물들을 후원하기로 했다. 현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거창하게만 느껴졌던 동물권리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동물이 자신의 생존욕구를 자유롭게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저 놓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물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잔인한 사육방식으로 식탁에 올라온 고기를 거부하거나 줄이는 것, 살아있는 채로 무차별하게 뜯긴 라쿤이나 토끼의 털을 사용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동물을 이용한 체험을 하지 않는 것, 반려동물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책임감있게 키우는 것. “삶은 말하지 못하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달라이라마가 한 말이다. 동물들은 비록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동물들 또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