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특히 사서에 의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을 돌아봐야 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게 비춰질 것이다. 후대를 위해 역사를 기록한 사가들은 최대한 객관적 위치를 고수하고자 노력했겠지만, 인간의 마음 아래 움직이는 붓이기에 주관이 개입할 여지는 항상 남는다. 어떠한 결과를 맞아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결국 결과에 맞는 흐름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진(秦)이다. 그리고 수많은 제후국들은 그 재물로 바쳐졌다. 진이 통일에 다가서는, 다른 제후국들이 패망에 이르는 과정의 '역사적 기록'을 <춘추전국이야기 8권, 합종연횡>에서 보게 된다.
<춘추전국이야기 8권, 합종연횡>을 읽으면 어떻게 진이 천하를 통일하고 힘이 부족하지 않았던 제후국들이 진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진이 중화통일을 이루는데 있어 지정학적 이점으로 외세의 침입에 대한 대처가 용이했다는 점도 중요하겠지만, 진이 비교적 일관성 있는 정책을 고수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전국시대의 진은 군주의 역량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강군양성에 힘을 쏟고 상벌에 엄격했으며 재능있는(국익에 보탬이 되는) 인재의 등용에 인색하지 않았다. 상앙이나 장의처럼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라 할 지라도 부국강병에 계책이 있는 자는 적극 활용했다.
반면 산동의 제후국들은 어땠는지 살펴 진과 비교해보면 '진의 통일'이란 결말에 수긍하게 된다. 진에 비견될 강국은 3진(조, 위, 한), 제, 초가 있었다. 각 나라가 강성할 때는 패자의 위치에서 천하 제후국들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현명한 군주는 대를 이어 나오기 힘들고 제위를 이어받은 군주가 어리석으면 선대의 위업은 금새 무너지고 국가는 위기에 몰리곤 했다.
<춘추전국이야기 8권>에 등장하는 초(楚) 회왕과 제(齊) 민왕이 어리석은 군주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초와 제는 결코 약한 국가가 아니였음에도 군주가 부화뇌동하고 작은 이익을 좆아 전쟁을 일삼고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으니 그 끝이 좋을 리 없음은 자명했다. 초 회왕의 곁에는 진진이 있어 충언을 올렸으나 새겨듣지 않았고 회왕은 눈 앞의 이익만을 좇아 군사를 일으키고 동맹국에 대한 신의를 져버리니 결국 회왕은 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제 민왕에게는 맹상군이 있어 제를 부강하게 하고 제후국의 우두머리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걷어차고, 맹상군을 시기하고 경계하여 내쫓았으니 민왕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는 비단 초와 제에 국한되지 않고 대세를 읽지 못한 군주를 섬기는 다른 제후국들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전국시대의 진은 강병을 앞세워 호시탐탐 중원을 노렸다. 진의 성장은 산동의 제후국 모두에게 위협이었기에 소진과 맹상군은 합종(合從)을 통해 진을 막고자 했다. 합종이랑 연, 제, 조, 위, 한, 초가 세로로 연합해 서부의 진을 견제하는 계책으로 강국인 진으로서도 혼자 힘으로 이들 연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진은 연횡(連衡)책을 구사한다. '횡'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동서로 연합해 상황에 따라 주변국을 침략해 나가는 방법이었다. 진은 초를 이용하기도 하고 제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3진의 일부를 꾀어 일시적 동맹으로 삼아 중원진출을 도모했다. 진의 연횡책은 장의가 이끌었으며 난세에 갈팡질팡하는 제후국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소진의 1차 합종책이나 맹상군의 2차 합종책은 유지되어 진을 압박하고 산동의 제후국들은 불필요한 전쟁을 줄여 내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산동 제후국들 간에는 신뢰가 없고 협잡이 성행했으며, 어느 한 나라의 영민한 군주가 판세를 읽고 합종을 강화하려 해도 동맹국이 호응하지 않으니 합종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여기에 진의 간계가 덧붙여지니 합종과 연횡은 자국의 이득을 위한 일시적 동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눈에 보이는 이득만을 좇는 난세는 어제의 적국이 오늘의 동맹이 되고 어제의 맹우가 오늘의 주적으로 탈바꿈했다.
<춘추전국이야기 8권, 합종연횡>은 진의 꾸준한 성장과 산동 제후국들의 자멸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제 전국시대 말기로 접어드는데 진의 비약과 처절한 전쟁의 역사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권을 읽으며 '현명한 군주는 모든 것을 잘하는 자가 아니라 잘 하는 신하를 가려 쓸 줄 아는 자'라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