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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도서]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김태균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12월 24일 성탄전야, 22살의 청년은 혈액암 판정을 받는다. 나름 운 좋은 녀석이라 여겼던 청년은 코 언저리에 발병한 암덩어리 때문에 코가 녹아없어지고 그 후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했다. 청년은 그 후로도 잘 살려고 노력했지만, 투병과 재발 그리고 항암 등으로 10년여를 보낸다.

 

항암으로 망가진 얼굴에 수차례 성형 수술로 포기한 것은 비단 '잘생김' 뿐 아닐 것이다. 펄펄한 청년이 환자가 되어 겨는 삶과 죽음, 만남 그리고 헤어짐 거기에 사랑과 외로움까지...오늘은 죽도록 아프지만 내일은 좀 덜 아프기를 바라는 지금,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글들이 책으로 엮였다. 그가 느끼는 순간과 한 시간, 하루는 어떨까? 그가 생각하는 삶은 무엇일까? 궁금함에 펼쳤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도 사람에게 상처받고 운명에 배신당할 때 마다 피난처가 되어줄 무언가는 필요합니다. 암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뜨거운 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컵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니까요. 언제 병이 재발할지, 언제 죽을지 문득문득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이 불현듯 찾아오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피난처로서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이젠 형제만큼 친한 아우가 된 신경외과 의사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너에게 죽음은 무엇이냐?" 정지화면 같은 표정으로 잠시 있더니 말했다. "내 환자는 최대한 늦게 만나게 하고 싶은 순간이요." 누군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직업이 의사라고 했다. 격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굳이 직업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될 만큼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환자다. 

 

 

더 분한 것은 이 아픔이 원통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찔끔 흐려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불타거나 어디가 잘려나간 것은 아니니까. 물론 누군가에게 처참히 살해된 것도 아니다. 난 어찌되었든 ‘치료’중이고, 나아지는 중이니까.

아픈 일도 많고 힘들었던 일도 많아서 자세를 고쳐잡고 앉아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싶지만 애써 참는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무의식이 자기방어를 위해 공감을 거절한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아무리 비참한 비극이라도 반복해서 듣게 되면 결국에는 남자의 군대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지루해져 버린다. 징징이를 받아주는 세상은 없다. 그러니 입을 꾹 다물고 참는 수밖에.

 

쓰고 나니 나란 인간이 참 삐뚤어져 보이지만, 그만큼 병원 생활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약에 취해 눈이 감길 때면 ‘아....이 정도로 아프니까 오늘밤에는 결국 죽겠구나. 아무렴, 몸이 이런 고통을 견딜 리가 없지. 안녕 세상아. 안녕 어머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차,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 간호사에게 건넨 <아니요, 이틀째 똥을 못 눴어요> 따위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무래도 부끄러운데. 아 이젠 그런 부끄러움 따위는 상관없으려나’ 같은 생각을 번갈아하며 잠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곤 했다.

이렇게 아플 바에야 빨리 죽어버리고 싶은데 절대 죽어지지는 않는다. 젠장, 아무리 죽을 의욕이 넘쳐도 몸은 아직 팔팔한 20대이다. 암에 걸린 몸이지만 튼튼하다. 미묘하다. 정말이지 주인을 닮아서 엉성하고 짜증나게 하는 애매한 몸이다.

사는 것이 못 견디게 지겨웠다. 지독하게 재미없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기다리느 느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궁리만 했다. 하루는 공기를 주입해서 수백 며을 죽인 미국의 사이코패스 간호사에 관한 글을 읽고서,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마다 ‘설마?혹시?’하는 기대를 품곤 했다. 그렇게 죽고 싶었어도 자살을 할 용기 따위는 없었다. 아픈 것이 싫어서 죽고 싶었는데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파야 한다. 그건 좀 아이러니하다.

자살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견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별것 없다. 단지 자살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사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살아버린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아프다 보니 어느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어쩌면 삶도 병원 생활과 같을 수 있다. 대단한 사건 없이 그저 하루하루 끈적끈적하게 버티어 나가다 보면, 문득 조용히 성장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항암치료가 끝을 알 수 없이 길어지면서 ‘비굴이’는 결국 이모네에서 아버지의 지인분이 운영하시는 공장의 앞마당으로 쫓겨나듯 보내졌다.

“비굴이는 친구 공장에 있는 앞마당으로 보냈다. 얼마 전에 가봤는데 좋은 곳이더라.”

병실의 침대에 누워있을 때, 아버지에게 지나가 듯 들었던 마지막 소식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날 욱신거리게 한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경험이었다. 나는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헤어지는 것에 대체로 의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떠나는 자보다 떠내보내는 사람의 슬픔이 훨씬 괴롭고 지독하고, 아려온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마치 마음에 새겨진 주홍글씨처럼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아버린다.

부디 나와의 이별은 낙인보단 상처처럼 남았으면 하는데....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저점 아물어가고 사라져 가는 그런 기억이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내가 떠난다면, 남아있어야 할 모든 것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한 문장은 이거다. '투병도 인생이더라'. 

 

아프다고 해서 인생을 잘못 살았던 것도 아니고, 투병이 죄는 결코 아니다. 투병도 인생인데 몸이 괴로운데 마음까지 괴로울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다면 환자 스스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고,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인생의 중요한 해답은 스스로 찾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울적함이 찾아올 때, 이 책이 여러분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당부했다. 우울할 땐 나보다 더 우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이런 사람도 있는데, 뭐'하는 걍퍅한 위로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미안해 할 건 없다. 원래 인간은 그리 생겨먹었으니까. 저자도 바랐으니 이 책으로 위로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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