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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도서]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아내로, 엄마로 남부러울 것 없던 저자는 2001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을 받아들일 수 없어, 세상과 하늘만 원망하며 누워있기를 한 달 만에 문득 깨달은 하나는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저자는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환자로서의 인생' 하나를 더해 살기로 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치열하게 산 덕에 오히려 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병을 앓고 난 후의 인생을 살면서 배운 삶과 깨달음에 대해 책에 담았다.

 

이런 책은 지리멸렬한 인생 같은 내 하루에 '레드불'같은 환기를 던져준다. 아울러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즐긴 하루가 보람이 아니란 것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불행은 못난 사람만 골라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바보같은 생각도 들게 한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행복은 무엇일까? 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오래하고 자주해도 과하지 않다. 사람에게 멍때릴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생각을 하려는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큰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60만 권을 판매고를 자랑했던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투병 중에 쓸 만큼 글맛도 좋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감동과 위로가 필요하다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준비할 일이다. 맛뵈기로 나를 흔든 문장들을 함께 담는다.

 

절망한 채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게다가 다행히 병이 최기 단게라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그렇게 15년을 살아왔다. 작년 초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진료와 강의를 하며 모두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충실히 살아왔다. 8

 

병이 내 건강의 많은 부분을 앗아 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해 거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데 5분 넘게 걸린 적도 있고, 몸이 굳어 버려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더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 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딸을 위한 떡볶이도 만들면서 내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9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 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스스로 닦달하듯 살았던 것이다. 9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무섭고 끔찍했으며,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우울은 더 깊어져 갔고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인생을 망치고 있는 거지?’ (중략) 그런데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침대에 누워 오늘을 망쳐야 하는가. 20

 

그리고 내 뇌에도 도파민 분비세포가 80%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20%는 남아 있다. 즉 파킨슨병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나 다시 병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들을 진료하고, 강의를 나가고, 집안일을 하고, 시부모님가 남편과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파민 작용제는 보통 치료 효과가 3년 가는데 나는 그 약으로 12년을 버텼다. 20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막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2001년 2월에 파킨슨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21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가,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가 나와 맞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다. 어쨌든 그와 결혼해서 살아 봐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고, 설령 잘 안 맞아도 배우자를 내 남편 혹은 내 아내로 만들어 가는 건 내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르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26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이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어 일단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 27

 

한 발짝 떼는 것으로도 안 되어 기어 다녀야 할 때, 혹은 기어 다닐 수도 없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할 때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누군가는 그랬다. 모든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는데 너무 아프다고.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너무 아파서 고통을 멈추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죽어 버릴까 생각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에 새벽녘에 아파서 자지도 못한 채 그 고통을 참아야 할 때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30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37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세상으로부터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무기력 하게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살 건지, 일단 밖에 나가 할 일ㅇ르 찾아볼 건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80

 

사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병을 못 견뎠을 것 같다. 친구들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내 상태를 늘 염려한다. 나는 친구들에게만은 솔직히 내 병을 이야기한다. 어떤 날은 “약 바꾸고 며칠 좋아져서 기대했는데 생체 밸런스가 깨져서인지 더 어지럽고 힘드네. 이 지루한 싸움이 언제 끝날까. 아님 익숙해질까?”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또 어떤 날은 “약 지속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 약 기운이 떨어지면 그냥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괴로워. 그래도 내가 너희를 두고 뛰어내릴 수 있나. 잘되겠지 하고 이 악물고 버티고 있단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때론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까지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만사 제쳐 놓고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나는 그 고마움에 다시금 버틸 힘을 내곤 했다. 어쩌면 내가 아픈 와중에도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고 웃는 모습을 좀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그 친구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런던 대학교의 한 연구에서는 원만한 인간관계와 우정을 뽑았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더 넓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회에서 내 속을 털어놓고 마음 놓고 풀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귀는 일은 매우 드물다. 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척박한 세상에 나를 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인생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값진 선물 중 하나다. 248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오는 게 아닌가.

“고대 이집트인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 아냐?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이야.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네.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졌다고 하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대답해 보게.”

나는 인생의 기쁨을 찾았을까? 내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을까?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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