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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도서]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어딘가에 빠져든 당신이 꼭! 읽어야 할 책 

 

 

한 여교수가 있다. 예일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의과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엘리트 중 엘리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빠져나오고 싶은 치명적인 중독 증세를 갖고 있었다. 바로 ‘에로틱 장르 소설 중독’이었다. 우연히 집어든 하이틴 로맨스 소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매료된 그녀는 4번이나 완독하는 과몰입에 빠져든다. 그 후 세상에 있는 로맨스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마흔 살쯤 되었을 때 로맨스 소설에 병적인 애착을 갖게 되었다. 10대 뱀파이어들을 소재로 한 로맨스 소설 <트와일라잇>은 내 중독 생활의 입문서였다. 사실 내가 로맨스 소설에 빠진 것은 그 자체로는 이상할 게 없었다. 살면서 늘 독서를 즐겼기 때문이다. 차이는 그 다음에 이어진 상황, 즉 과거의 성향이나 생활환경에 기반해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무언가에 있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모두 읽은 후, 나는 뱀파이어 로맨스 소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댔다. 그다음에는 시선을 옮겨서 늑대인가, 요정, 마녀, 주술사, 시간 여행자, 예언자, 독심술사, 불을 휘두르는 자, 점쟁이, 보석 세공사...다들 알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미지근한 사랑 이야기는 더는 성에 차지 않았고, 그래서 젊은 남녀 간의 전형적인 로맨스 판타지를 생생하고 에로틱하게 표현한 작품에 점점 빠져들었다.

인근 도서관의 일반 소설 서가에서 생생한 섹스 장면을 바로 찾아내기가 너무 쉽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놀란 기억이 있다. 내 아이들이 이런 책들을 접할까 봐 염려스러웠다.

(중략)

신기술에 빠삭한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전자책 단말기를 사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더 이상 다른 도서관 분관에서 책들이 들어오길 기다리거나, 선정적인 책 표지를 의학 학술지 뒤편에 감출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몇 번의 검색만으로도 당장 원하는 책을 언제 어디서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열차 안에서든, 비행기 안에서든, 머리를 하면서든, 그렇게 나는 에로틱 장르 소설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처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중략)

이야기에서 성적인 긴장감은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면서 결국 해결되었는데, 나는 그렇게 성적인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에 빠지고 싶었다. 문장론, 스타일, 장면, 캐릭터 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일정학 공식에 따라 쓰인 이런 책들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중략)

그렇게 로맨스 소설에 1년쯤 빠져 있던 어느 날, 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평일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읽고 있었다. 이 소설을 현대판 <오만과 편견>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읽다가 ‘버트 플러그(항문에 삽입해 사용하는 성인용품)’가 나온 부분에서 순식간에 깨달았다. 가학피학성 성욕의 성인용품에 관한 이야기를 꼭두새벽에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내가 원하던 현실이 아니었다.

(도파민네이션, 25~27)

 

 흔히 우리는 ‘뿅 간다’는 말을 한다. 즐거움이 최고조의 달해 이른바 ‘뿅점’에 이르렀을 때 하는 말이다. 십인십색이라고 저마다 뿅 가는 수단과 순간이 다르듯 무엇을 할 때 뿅 가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뿅점을 만나는 순간 만을 행복으로 여기고 시도 때도 없이 뿅 가려 노력하는데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인다는(심지어 건강과 재산을 해치면서까지) 것이다.

 

그러나 뿅점은 행복과 빼닮았다. ‘행복이 반복되는 정작 행복하지 않다’는 역설처럼 행복감은 지루하고 고단한 인생의 여정에서 간혹 만날 수 있는 순간의 기쁨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든, 아니면 모른 척 하든 많은 사람들이 약물이든 쇼핑이든, 관음증이든, 흡연이든, 소셜 미디어든, 하지 않았으면 하거나 후회하는 행동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순간의 기쁨을 제공하는 뿅점을 찾아 헤매느라 오늘도 중독자의 길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인 애나 램키 교수가 한 때 ‘에로틱 장르 소설 중독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현대인이 추구하고 있는 쾌락을 다루고 있다. 동시에 그로 인한 고통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와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은 주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왜 SNS, 약물, 술, 도박 등에 중독되는가?

그리고 쾌락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고통과 쾌락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단어가 있다. 바로 ‘중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넓게 봤을 때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 등)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저자가 에로틱한 소설에 탐닉한 것을 중독으로 본 건 심한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의 생활에 비하면 정말 ‘애들 껌값’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소설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따져 봐도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소설만을 읽는 장르주의를 택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고 그가 권하는 책만 읽는 작가주의를 택하기도 한다. 저자는 소위 하이틴 소설을 읽다가 길을 잘못 들어 러브씬 가득한 소설만을 읽다가 나중에는 러브씬이 나올 법한 소설을 찾는 중독증세를 일으켰다. 하지만, 늘 끝은 있는 법. <트와일라잇>에서 시작한 저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이르러 성인용품 삽입 장면을 본 후에야 ‘아~ 이 산 아닌갑다’ 라며 자신의 중독에 대해 제대로 눈을 뜬다.

 

 

“나는 대략 2년간 로맨스 소설을 강박적으로 소비하다가 결국 더 이상 즐길 책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내 소설 읽기의 쾌락 주우를 불태워버려서 아무 책도 이를 되살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쾌락 자체를 좇는 쾌락주의가 그 어떤 쾌락도 느끼지 못하는 쾌락 불감증에 걸린 셈이다.

독서는 언제나 나에게 쾌락과 일탈을 선물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독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충격과 슬픔이 찾아왔다. 그때도 로맨스 소설은 포기하기 힘들었다.

(중략)

(중독치고는 다소 사소한) 내 경험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우리의 삶이 윤택할 때도 점점 커지는 강박적 과용의 문제를 가리킨다. 내게는 사랑하는 남편, 멋진 아이들, 의미 있는 직업, 자유, 자율성, 비교적 충분한 재산이 있다. 정신적 외상, 사회적 혼란, 가난, 실직 또는 중독에 대한 위험 요소는 없다. 하지만 나는 강박적으로 판타지 세계로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도파민네이션, 76)

 

이후 저자는 학자답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을 연구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중독증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중독에 이르게 하는 물질 ‘도파민’에 주목했다.

 

 

“과학자들은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보편적인 척도로서 도파민을 활용한다. 뇌의 보상 경로에 도파민이 많을수록 경험의 중독성은 더 커진다.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지난 한 세기 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는,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쾌락과 고통은 저울 양 끝에 놓인 추와 같다.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다음 조각이 또 먹고 싶어지고, 괜찮은 책, 영화 또는 비디오 게임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우리 뇌의 균형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쾌락이 아니라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다.”

(도파민네이션, 6)

 

저자는 우리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했다. 그리고 쾌락과 고통이 저울의 양쪽에 있다고 보고 중독이 심해질수록 그로 인한 고통도 심해져서 점점 더 개미지옥처럼 중독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고,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중독은 내성을 부르고 내성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약물이 더 독한 약물을 부르고, 도박판에서 판돈이 커지고, 섹스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더 빈번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더 자극적인 중독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해 질 때는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지금껏 글을 길게 늘어놨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나이와 학력수준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그래서 “So What?” 즉, “그래서 어쩌라고?”고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워~ 워~ 진정하자. 이제 하이라이트로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저자는 에로틱 장르 소설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저자는 아예 독서를 그만 두기로 했다. 이 대목을 본문에서 살펴보자.

 

이어서 그가 물었다. “그 행동을 멈춘다면 무엇을 포기하게 되나요?“

“독서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될 거에요. 제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거든요.”나는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저의 가족과 일만큼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금 나는 소리내어 말하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즐거움보다 내 가족과 내 일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고, 내 가치관에 따라 살기 위해선 강박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독서를 멈출 필요가 있었다.

“그 행동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요?”

“전자책 단말기를 없앨 수 있어요. 책을 싼 가격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보니 밤늦게까지 책을 읽기 쉽거든요.”

“좋은 생각 같네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내 환자 역할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어제의 대화를 게속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로맨스 소설 읽기를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전자책 단말기를 없앴다. 그러고는 2주 동안 불안과 불면을 비롯한 금단 증상을 겪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는 시간인 취침 전 밤 시간에 특히 그랬다. 알아서 잠드는 방법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달 말이 되니 기분이 괜찮아졌고, 상대적으로 적당량의 독서를 계획하면서 적절한 로맨스 소설을 읽어 보았다. 그러자 예전의 나쁜 습관이 힘을 발휘해 이틀 연속으로 밤늦도록 성애물에 탐닉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 강박적인고 자기 파괴적인 패턴으로 - 바라볼 수 있었다. 그 행동을 완전히 멈춰야겠다는 결의가 점차 커졌고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나의 백일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중독을 멈추는 방법은 자신이 중독에 빠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객관화’ 시켜야 한다. 그럼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건 뭘까? 그건 바로 ‘나는 중독 없이도 잘 살았었다’는 것이다.

 

나는 뭔가에 빠지기 전까지는, 즉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도박을 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잘 살았다. 그런 것을 하지 않았는데도 식후에도 소화가 잘 됐고, 아무리 열 받는 일이 있어도 졸리면 잘 잤다. 도박을 하지 않았어도 100점 짜리 시험지가 주는 승리의 쾌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중독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잘 살았던 사람이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중독에 쉽게 빠져드는 오늘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우리가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도파민네이션, 131)

 

보다 나은 인간의 생활을 위해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중독도 쉽게 만들고 있다. “이걸 구입하세요, 그리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세요. 그래야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답니다.”라고 기업은 광고를 하고 있지만, 실은 사고, 바르고, 먹고, 취하며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더욱 ‘갈증’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나는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환자를 돌보는 데 다시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랫동안 환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세상에 질서를 가져오는 방법으로서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로맨스 소설에서 빠져나와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일에서도 더 좋은 성과를 올렸는데, 이러한 성공은 기대하지 않은 부산물이었지 내가 갈망하는 바는 아니었다.

여러분도 주어진 삶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피하려고 하는 대상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방향을 바꿔 그것을 마주하길 바란다. 거기에 다가가길 권한다. 이렇게 하면 세상은 굳이 도망갈 필요 없는 아주 멋지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로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세상은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균형을 찾아 유지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은 즉각적이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보상을 얻으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영양가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행동들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미래의 언젠가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도파민네이션, 278)

 

이 책은 이렇게 말하며 끝을 맺는다.

 

자신을 중독의 세계에서 꺼내고 싶다면 벗어나려고 애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스스로를 객관화 시켜 중독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해결책은 시작된다. 앞서 말한 대로 “난 이런 것 없이도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다.”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제점은 중독에서 빠져나올 때 까지 ‘고통과 금단현상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일 것이다. 그 답은 여러분이 찾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중독에 빠져든 방법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직접 읽는다면 수많은 중독자들의 상담 사례와 내용들을 찾아 자신만의 탈출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독자라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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