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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말하기

 

【흔히 말은 책을 읽으면 잘 쓸 것이라고 오해한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 역시 다르다. 책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절달받는다는 점에서만 같을 뿐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천부적인 능력이다. 말하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언어학자나 뇌신경전문가들의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다만 이 능력은 ‘잘 쓰는 것’의 정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시인이 좋은 시를 썼다면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일 것이다. 시인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고 분석하는 깊이가 다르다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바삐바삐 은빛 달은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_ 강은교,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주)문학사상

 

  강은교 시인의 ‘물길의 소리’다. 이 시를 읽으면 라이프니츠가 떠오른다. 그는 미세지각이론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로 들리는 소리는 미세한 소리들의 총합이라고 설명하면서 폭포를 예로 든다. ‘폭포소리’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거대한 물줄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내느 굉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사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서로 부딪치며 몸을 비비는 소리, 물방울이 물과 만나는 소리, 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폭포 아래 웅덩이에 떨어진 물방울들이 방향을 되돌리며 거칠게 마찰하는 소리들의 총합이다. 즉 우리가 쉽게 인지하는 어떤 소리는 미세한 소리들의 합인 것이다.

  이 시를 쓸 때 강은교 시인의 시선은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시인의 눈은 우리가 ‘물소리’라고 말하는 그 소리를 하나하나 해체한다. 심지어 달밤의 정적과 햇살 반짝이는 오후에 느껴지는 소리의 감각적 차이까지 바라본다. 고요한 달빛 아래 흐르는 물소리와 햇볕쨍한 대낮에 흐르는 물소리가 다른 것은 그것을 듣는 우리의 느낌이 다른 탓일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두고 ‘물이 바삐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라거나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시선과 언어, 배울 수 있다.

 

 

  시인의 관점, 시인의 시선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뿐만 아니다. 언어구사능력 또한 탄복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재능은 모두 선척적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다분히 선천적인 재능의 산물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보통 음악이나 미술 분야의 대가들은 천재적 재능이 있다고 믿지만, 글을 쓰는 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은 우리도 일상적으로 쓰지만 그림이나 음악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차르트가 네 살 때 피아노 건반 위를 날아다닌 것은 분명히 신의 축복이지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우리 같은 범인이 노력으로 이를 수 없는 경지임이 분명하다. 음악이건 그림이건 간에 예술적 재능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 글을 쓰는 능력도 그렇다. 대상을 이미지로 표현하거나 소리로 감성을 드러내거나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모두 도구를 사용하는 재능이 분명하다.

  그러나 음악적 재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타고난 음치라도 어느 정도는 노래를 잘하게 되고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면 웬만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듯이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도 음악이나 미술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 음악이나 미술은 우리의 일상이 아니지만 언어와 문자는 일상적으로 접하고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훈련이 되어 있다. 주변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부지기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미술적 재능이 천부적인 재능의 영향을 더 받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미술보다는 음악을 더 자주 접하고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방은 물론 온갖 오디션프로그램에서 가수 뺨치게 노래 잘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브리튼스갓탤런트)에서처럼 평범한 휴대전화 외판원의 인생역전도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노력으로 강은교의 시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근접한 수준으로 잘 쓸 수 있는 기능을 연마할 수는 있다. 이것이 글쓰기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물론 대상을 분석하는 능력은 강은교를 넘어설 수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통찰이 깊어진다. 어린시절에는 제아무리 아름다운 명산에 가도 아름답다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그저 과정이 즐거울 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바람소리에도 눈물이 난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방법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응시하여 나만의 색깔로 대상을 분해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시인과 작가의 빛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글이 더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 철학자의 시선은 대상을 분해할 뿐 아니라 그 너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먼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한 숙고를 거쳐야한다.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단 ‘나는……’ 이라고 무조건 시작해 놓고 보는 습관이다. 무언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떠밀려 글의 주제와 줄거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기승전결의 얼개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시선’을 먼저 가다듬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형식으로 쓸 것 인지를 생각해 결정한다. 나의 시선이 분해한 프리즘의 색깔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기교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 즉 기교를 어떻게 익힐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모든 예술행위가 그렇듯 보방에서 출발할 수 있다. 미래의 대가는 현재의 대가의 작품을 모사함으로써 공부를 시작한다. 화가는 아그리파를 데생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고, 음악가는 베토벤을 들으면서 꿈을 키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좋을 글을 모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가 다르듯,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해석과 창작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쓰는 연습으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좋은 글이 아닌 잘 씌어진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글이 내공을 담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 연습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을 다루는 능력이지 작가의 영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학적 글쓰기(현란한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즉 소설가, 카피라이터, 에세이스트 등을 꿈꾼다면 문학가의 글이 좋다. 이를테면 오정희 선생의 단편 같은 것 말이다. 오정희의 단편은 실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능력이 극점에 달해 있다. 적절한 템포, 절제, 무형의 것을 묘사하는 구성과 묘사력은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황석영의 글은 이야기 능력이지 필사의 능력은 아니다.

  반면 칼럼니스트가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설득하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좋은 칼럼을 콜라 필사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이규태 코너〉를 필사한 적이 있는데, 요즘의 글쓰기 트렌드와는 좀 어긋나는 면이 없지 않다. 필자의 글이 무겁고 현학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필사를 할 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그대로 베껴써야 한다. 키보드를 이용해도 좋고 연필을 쥐어도 좋다. 앞으로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라면 굳이 연필을 잡지 않아도 된다. 특정 글을 이렇게 열 번 이상 반복해서 쓰면 어느 순간 대상의 문체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이때 글을 써보면 그 문제가 내 글에서 배어 나오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어법이나 문장을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순서는 개작(改作)이다. 소위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단계인 셈이다. 필사의 대상으로 삼은 글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고쳐 써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고쳐 쓴 글이 원작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고쳐 쓰는 것이다. 특히 불필요한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하고 글을 축약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대개는 중언부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무로, 그래서, 따라서 등의 남발은 앞선 문맥을 지키려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이런 말들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적절하지 않은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한 다음, 그 자리에 나의 글을 가필(加筆)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반복하다보면 글의 맛을 알게 되고 글과 말의 차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내가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필사하고 다음에는 축약과 삭제와 가필을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 개의 글이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필사한 글, 내가 고쳐쓴 글, 내가 새로 쓴 글, 이 가운데 내가 새로 쓴 글이 가장 훌륭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글을 다루는 훈련은 얼추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마지막 단계는 통합이다. 나의 프리즘에 비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을 선정하고 그 맥락을 머릿속으로 그림으로써 주장을 더욱 선명히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이때 약간의 기교는 필요하다. 글을 쓸 때는 초두효과, 최신효과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초두효과다. 인용문, 사례 등을 글의 앞에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가져라.”

니체의 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모험이다. 사람은 관성에 길들여져 있고 관성은 혁신을 방햏산다. 만약 인류가 익숙함에 안주했더라면 우리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위 글에서 니체의 인용문은 강력한 초두효과를 발휘한다. 읽는 이의 호기심과 시선을 확 잡아끈다. 실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의 첫 페이지 첫 줄이 그 책을 읽는 내내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 강은 유유히 흘렀다. 사방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나는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결국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꺄악,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로 시작하는 경우와 “꺄악, 비명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라고 시작하는 경우, 어느 쪽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길지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칼럼이나 주장을 담은 글은 이렇게 초두효과를 이용하면 상당히 효과적이다. 다만 초두효과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마지막 문장이 첫 문장에 조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제시된 강한 인상에 반해 끝부분이 지리멸렬하며, 글의 주제가 산만하게 흩어지고 오히려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된다. 강하게 시작한 만큼 인상적인 마무리가 필요한 것이다.

예들 들어보자.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가져라.‘ 니체의 말이다.“ 로 시작했다면, 마지막에 ”아직도 창의력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이 땅에서 죽은 것은 신이 아니라 니체인 셈이다.“ 로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모두 시인이 될 필요도 없다. 글을 써서 먹고살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있어 글쓰기는 내 생각과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담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일이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 중에서...

 

 

 

 

글쓰기는 작가나 CEO, 전문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아닙니다.

약간의 공부와 노력이 있다면 '내 생각을 종이 위에 내려놓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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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의 많은 요청이 있어 오전반도 개설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글쓰기 입문 (7, 8기) 수업을 들은 수강생의 수강 후기

영혼의 자유를 느끼게 되다(7기) 

 

6기에 수강을 마치고, 7기에 재 수강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총 여섯 번의 수강 중에 두 번 지났다. 난 좀 성격이 급하다.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문화센터로 달려가서 등록해서 세 번째 강의부터 수강했다. 편입생 같은 기분이다.

가슴에는 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필사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좋은 책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필사란다. 오늘 처음 알았다. 모방이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매일 쓰라고 하신다. 달리기 선수가 매일 뛰듯이 매일 써야 한단다. 그렇다. 좋은 습관은 성공을 만들고, 매일 글쓰기는 좋은 작품을 쓰게 할 것 같다.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기쁘다. 마치 애인을 만난 기분이다. 책 읽기를 통해 지혜를 배우고, 글쓰기를 통해서 영혼의 자유를 누리리라 다짐한다.

글쓰기 숙제를 받았다. 잘하고 싶은 맘에 글을 쓰고, 다듬어서 송고를 했다. 금방 답을 보내 주셨다. 첨삭을 읽으면서 “아 ~” 하고 공감의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글의 흐름을 내 스스로 느끼게 해 주셨다. 또 용기를 주시는 말씀에 신이 났다. 칭찬은 참 좋은 것이다. 다시 쓰고 싶은 용기가 났다.
한번에 두 시간 수업은 너무도 짧고. 총 여섯 번의 강의도 아쉽다. 좀더 시간이 나면 동기들과 하루 여행이나 산책을 하면서 책과 글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다.

읽어야 할 책도 너무 많다. 글도 계속 쓰고 싶고, 또 잘 쓰고 싶다. 나 자신을 선생님과 동기들에게 계속 검증 받고 싶다. 글쓰기 입문 다음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느끼는 행복과 용기를 조금만 더 끌어 주시면 좋겠다.
내내 설레고 행복했다.

 

이런 강좌 또 없습니다

 

가슴이 참 답답하고 먹먹했습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것..
평소 꾸준히 일기를 쓰고
회사 업무를 통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내가 쓰는 이 글이 잘 쓴 것인지 의심은 더해져만 가고.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점점 더해져만 갔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리치보이로 더욱 유명한 김은섭 선생님의 7기 수강생입니다.
선생님께서 매시간 마다 꼼꼼하게 준비하신 내용물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아주셨습니다.

또한 수업 후 주어진 과제를 선생님께 보내면,
미안할 정도로 세세하게 첨삭해 보내주시며,
장문의 코멘트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수업을 들으며 다시 글을 꾸준히 쓰게 되는 습관을
갖게 됐고, 이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매일 매일을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고
자신감을 얻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쓰는 글을 의심하지 않고
글을 쓰는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과 자신감이야말로
좋은 글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희는 그동안 수업을 들었던 기수의 학생들이 모여
까페를 운영중이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글을
첨삭해주고 좋은 책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민해결의 방법은 실천입니다.
눈팅만 하지 마시고, 어디에도 없을 좋은 강좌의 기회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0^~

 

이제는 당당하게 글쓰기!

 

초등학교 시절에 저는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문예부에 들어가고, 백일장에 나가 상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점점 글쓰기는 저의 일상에서 멀어져갔고, 대학에 들어가자 과제나 시험이 대부분 글쓰기로 이루어져서 두려웠습니다. 좋은 상,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위축되기만 했죠..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지금까지 방법을 잘 몰랐고,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지와 게으름을 '글을 못쓴다.'는 말로 편하게 덮어버린겁니다. 또, 기본적으로 읽어야 쓸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많이 읽지 않았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이제는 글쓰기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저도 모르게 글쓰기를 일상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 과정>을 마치며 --- 8기

 

언젠가부터 책을 내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하는가가 정해지지 않았다. 막연한 꿈이 구체적인 실행단계로 들어선 것이 글쓰기 과정이다. 먼저 이 과정을 수료한 선배로부터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 계기가 생겼다. 원하니까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글쓰기 과정에 등록하고 출석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움 속에서 저멀리 보이는 등불을 본 것이다. 하지만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숙제를 써야하는 부담감은 감당할만하다. 하지만 어줍지 않은 글을 커밍아웃 시키는 것이 부담이다. 이 부담감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글쓰기 과정이다.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글을 쓸 수 가 없다.

글쓰기 과정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조금씩 두려움의 껍질을 벗었다. 아직도 벗겨내야 할 부담감의 껍질이 몇 겹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습관의 문제다.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면 즐기게 된다. 글쓰기가 인생 후반전을 즐길 수 있는 멋진 놀이가 될 것이다. 중년의 즐거움 중의 최고가 글쓰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한다. 글은 인생이고 곧 자신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이 글이다.

좋은 안내자, 스승, 멘토를 만나는 것은 인생의 복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김은섭 선생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글쓰기의 멘토를 만났다. 즐거움도 어려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멘토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된다. 수고하신 김은섭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과정을 알려야겠다.

<행복해집니다>

 

수강 첫 날 이 수업을 듣는 이유를 적어 낸 종이에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얻고 싶다고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소기의 목적은 진작에 달성했고,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고 갑니다.

뒤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짜 더이상 두렵지는 않아요.

망설이고 계신 분들, 일단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어차피 기웃기웃하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이미 마음속 동요는 시작되었을 것 같은데요?

"행복"했습니다.그리고 주욱, 행복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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