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광이었던 어린 시절이 약간씩 떠오른다. 어릴적에는 굉장한 독서광이었다.(지금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다독을 했었다) 물론 여기서의 독서는 만화를 뜻한다. 이 주장은 만화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인데, 누구나 들으면 '피식'하는 웃음부터 지어보였다. 하지만 난 어린 시절 만화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만화를 많이 보지 않게 되었지만, 나의 독서습관 또한 그때 만화를 보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렇기에 난 어릴적부터 독서광이었으며, 만화 또한 당당히 여타 다른 종류의 책들과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는 긴 이름의 이 작품은 긴 이름만큼이나 사연이 많았던 1980년대의 작품이다. 우.길.새 역시 어쩌면 시대의 아픔 안에서 채 꽃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의 걸음걸이가 허무하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그리고 등장인물 가운데 악당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는 지적 때문에 '두목은 나쁜놈이야'라는 대사를 넣기도 했다.
한편 그 시대는 우리만화의 중흥기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TV에서 방영되는 '떠돌이까치'나 '아기공룡둘리'도 80년대 생이다. 뿐만 아니라 만화잡지는 더욱 다양했다. 보물섬, 아이큐점프, 댕기, 윙크 등등 그 종류도 월간잡지, 주간잡지, 격주잡지, 소녀/소년 잡지 로 나눌 수 있을만큼 다양했다. 아마도 지금의 수많은 만화가들이 그때 그시절의 만화잡지를 보면서 꿈을 키워왔을 것이다. 그 시절, 한국만화는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길.새는 그 시대에서도 유난히 빛이 나는 작품이다.
고아남매인 진섭과 신애는 어느 깡패조직 밑에서 앵벌이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날도 여느날 처럼 폭력과 협박 속에서 껌을 팔던 중 조직의 두목이 경찰에 검거되고 아이들도 함께 인계된다. 그러던 중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부잣집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이내 입양되었던 부잣집도 부도로 인해 더이상 의지할 곳을 잃어버리고, 그들은 세상과 사회에 그렇게 홀로 남겨진 채 외로운 생의 견딤을 계속해 나간다...
가슴아픈 이야기가 더욱 애절한 것은 이야기가 남의 것이 아닌 바로 그 시대 우리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슨 신파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그 시대 우리의 삶의 단면이었다. 진부한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한다면 손에서 놓이지 않는 작품이다. 가진 것 없이 알몸으로 태어나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새가 날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둥지 위에서 곡예를 펼치는 것 같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보듬어줄 어미새조차 없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둥지 마져 없다는 것...
왜... 우리의 앞길은 이다지도 아플까...
앉아있는 자리가 무의미해질 만큼 가슴이 허허해져 오고...
다가올 내일은 저 멀리 어둡게 날 노려보고 있는 듯 하고...
그래도 어딘가 ... 빛이 있으리란 믿음이 남아 있는건,
내가...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사물이...
아직은 서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래 빛을 보자...
서러운 하늘 아래 첫 동에구석구석에 비추는 햇살을 보고...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 보자...
우리는.길잃은.작은 새를 보았다 -중-
사는 것이 팍팍한 시절이었다. 먹는 것이 아쉬워 덜 자고, 덜 놀고, 덜 입던 시절이었다. 우.길.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온갖 시도를 다하지만 사회라는 커다란 콘크리트 벽은 쉽게 그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책을 보면서 순간순간 한숨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단순한 신파극이라면 뻔한 이야기라면 손에 잡았더라도 쉽게 놓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길.새는 손에 잡고 뒷야이기를 궁금해하며 읽게 되었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쉬운 것일수록 잘 하기는 어렵다.' 쉬운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거나 이미 해버리고 난 후이기 때문에 뭔가 다른 맛을 내거나 더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길.새 이후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우.길.새 만큼 그 신파적 멋을 드러내는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신기하게도 배경도, 주인공들도, 이야기도 절절하게 슬프건만, 그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상실감보다는 꿈과 향수의 소중함이다. 아마도 그 작품안에 단순하지만 소중한 사랑, 꿈 그리고 향후에 소년지에 진출하면서 드러나는 황미나 작가만의 특유의 소소한 웃음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덕분이 아닐까?
어느날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잃어버린 눈을 하고 입술은 닫혀진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지?" 그녀는 가슴으로 대답했다.
"말을 잃었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 말을 잊었지?" 그년느 이렇게 생각했다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어두운 공간을 걸어갔다. 나는 그녀와 함께 걸으며 물었다.
"그렇게 어두운 곳을 걷는 거야?"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 필요가 없으니까..."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 다 잃어버린 거야?"
조용히 숨 죽이고 있던 그녀는 한참 후에 이렇게 생각했다.
'아뇨, 나도 꿈이 있어요...'
우리는.길잃은.작은 새를 보았다 -중-
아마도 요즘에는 지루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보다 작은 것에 즐겁고, 작은 것에서도 새로움을 찾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 펼쳐보게 되고, 또 아이들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세상이 참 많이도 달라져 버렸다. 책 속에서 앵벌이하는 아이들의 껌값이 10원이다. 요즘 지하철에서 '10원에 껌사세요'하면 어떨까? 그만큼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고, 세상의 풍경도 참 달라졌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어떨까? 세상도, 우리들도 겉모습은 참 달라졌지만, 우리 사는 속내는 여전한 것 같다. 그렇기에 작은 것에 울고 웃던 그런 소소한 재미를 아이들도 알고 커가면 좋겠다.
이 외에도, 그 시절 그리운 만화책들이 많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이 절판되어 버렸다. 헌책방과 만화방 마저 대부분 사라진 지금 다시 보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만화의 시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관심에 대한 보도를 심심치 않게 보곤하는데, 무엇이든 그 뿌리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법, 우리가 보고 즐기던 우리만화를 좀 더 쉽게 보고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화보다 일단, 외국만화 부터 찾게 된 우리의 이유있는 자세부터 고쳐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