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피로에 절어 버려서,
연이은 휴일(28일이 창립기념일)에도 몰려오는 잠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까 하다가 추천을 받아 보게 된 것이 바로
"Omae Umasou da na"(너 맛있겠구나) 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참 별나다, 무슨 요리에 관련된 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저의 예측은 전연 빗나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머나먼 공룡시대의 어느 푸르른 초원과 정글입니다.
큰턱이라 불리우는 '고기를 먹는 공룡'은 넓은 초원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며,
초식 공룡들은 정글? 같은 숲에서 터전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영역을 나누어 살고 있는 공룡들의 삶은 대체로 무난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림체는 언뜻 보기에 다소 유치한 듯하지만, 계속 영화를 보니 풋풋한 향기가 나는 그런 자연스런 그림체가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공룡이라고 생각하면 어렸을 적 보던 둘리처럼 동굴동굴한 공룡이 아닌,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앙상한 뼈만 남은 화석이라든지, 무섭게 이빨을 드러낸 파충류를 먼저 떠올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약간은 아쉽습니다. "너 맛있겠구나"에 나오는 공룡들은 둥글둥글 하게 생겼습니다. "큰턱"이라고 불리는 '고기먹는 공룡'조차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런 생김새가 공룡이라는 캐릭터에 친근감을 불어 넣는 듯, 어느새 그림체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영화 속 공룡들은 사람처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질서와 법칙 아래 살아갑니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고, 육식공룡이라고 해서 무조건 초식 공룡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는 현실의 인간사회보다 훨 나은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는 유난히 덩치가 큰 "바크"라는 공룡이 나옵니다. 흔히 그려지는 거대한 도마뱀 폭군이라는 이름의 '티라노 사우르스'와는 달리, 자신의 힘을 과시 하지 않고, 필요할 때 남을 돕고, 질서의 균형을 잡아 주는 힘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느 날 평화로운 숲, 강가에서 한가롭게 노니던 어미 공룡의 눈에 강물에 떠내려오는 알이 하나 보입니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어미 공룡은 그날부터 알이 다칠까, 정성스럽게 보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알이 부화하고 보니, 여느 초식공룡들과 생김새가 다릅니다. 그 알에서 태어난 "하토"는 초식공룡들을 먹이로 하는 "큰턱"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 초식 공룡 어미에게서 자라난 "하토"는 결국 무리를 떠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턱"으로서 살아가던 중에, "하토"의 어미공룡이 "하토"를 발견했듯이 우연히 어미를 잃은 "알"을 하나 발견합니다.
이야기의 테마는 어찌 '미운 오리 새끼'와 비슷합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흥미진진하고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공룡들에게서 배울점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어린아이들이 보는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교훈에는 어른, 아이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론 '어른도 어린아이처럼 꾸밈없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덕분에 전 잠시나마 만성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명절에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화영화가 없냐고 물었을 때, "월E", "아이언 자이언트" 같은 영화를 추천해 준 적이 있는데, "너 맛있겠구나"도 앞으론 추천 리스트에 넣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