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부터 인가, 미래 예측에 관한 도서는 하나의 트랜드가 되었다. 매년, 미래의 기술, 미래의 경제, 미래의 사회와 정치 등 각 분야에 대한 미래 예측 도서가 물넘치듯 하고 있다. 생각하는 사물 역시 일종의 미래 예측 도서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는 어떤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인해 어떤 발명품이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서 적고 있다.
생각하는 사물은 닐 거센필드가 MIT 대학의 미디어 랩에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한 내용과 그러한 연구 속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요란한 제목과 화려한 표지를 배제한 이 책은 오직 책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에게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컨텐츠 보다 그 컨텐츠를 담는 컨테이너가 더 중요해진 지금,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없는 것 같다. 책은 현재 품절되어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닐 거센필드의 생각하는 사물은 1999년 쓰여진 책이다. 시기적으로 13년이 더 된 책의 내용이라고 한다면, 게다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주요한 책이라고 한다면, 이미 13년이 더 지나간 예측으로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단지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기대로 바뀌었다. 닐 거센필드의 책은 책이 쓰여질 당시인 1999년을 훨씬 지난 2012년까지에 이르는 수많은 책들에서 볼 수 없었던 그만의 생각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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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많은 중앙 집중적인 계획 없이 수정과 보완이 가능한 매우 상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중략 - 혁명은 사물을 파괴한다. 때로는 이러한 파괴가 필연적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적합한 생존 방식이 아니다.
급진적 발전의 시대가 된 것이 언제 부터인가? 세대간의 갈등, 기술의 진보와 사회 문화 진보의 차이, 문화 간의 차이, 환경 문제 등등, 변화에 따른 갈등과 부작용에 대한 이슈가 기술과 사회의 발전 그 자체 보다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언제 부터 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생각이 바로, 이 책의 근저에 있다고 생각한다. 발전이란 말에 항상 그림자 처럼 따라 붙는 용어는 혁신 그리고 혁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발전 후에 더욱 커다란 문제와 갈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가 아닐까?
지금의 시대는 빠른 변화의 시대이자 정보 홍수의 시대이다. 새롭게 쏟아지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여 과거를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린 듯하다. 미래를 우려하면서도 안타깝게도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오늘은 반성을 할지 몰라도 얼마지나지 않아, 이러한 반성은 추억의 서랍 한 켠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 듯하다. 이 책은 이러한 식의 발전에 물음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가 MIT 미디어 랩에서 실제로 행한 기술적 실험과 발견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10년 이 지난 지금, 책에서 말하는 미래가 어느 정도 현실화 되어 가고 있기는 하다. 우리들은 책이 쓰여질 당시 저자가 상상하던 미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그러한 발전에 의한 부작용들도 발생함에 따라, 그에 반대해, 과거로 회귀를 바라는 운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과거의 좋은 점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간단명료하고 진부한 이야기 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는 점차 다차원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계에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거나, 또는 기계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계였다. 지금은 인간의 반응에 따라 기계가 반응하는 쌍방향의 관계가 정립되어 가고 있다. 이에 더하여, 닐 거센필드는 기계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기계 자체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인간이 찾기도 전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닐 거센필드가 원하는 기술 발전의 궁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