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후 들어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수출 상품에 문제가 생긴 것, 부랴부랴 급한 불을 끄느라 정신 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는 늦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스24 행사장인 악사 코리아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7시가 20분 정도 지나서였습니다. 순간 사회자 분의 말씀이 듣기에도 반가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처럼 시작부터 왜인지 기분좋았던 예스24 문화 버킷리스트 이야기는 버릴 것 없는 축제였습니다.
예스24 문화 버킷리스트는 사회 각 분야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5명의 연사를 초대해 그들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그들 각 분야에 맞는 공연을 함께 감상하고, 또, 그들이 추천하는 책과 그들만의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첫번째 연사인 개그맨 허경환씨는 유쾌한 웃음으로 시원하게 행사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연사로 나와주신 무용가 이원국씨는 무대 위에서 직접 발레 동작을 시연해주시면서 식지 않는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세번째, 뮤지컬 배우 김소현씨는 마치 실제 뮤지컬 무대를 보는 듯한 멋진 노래를 선물해 주셨고, 네번째인 소설가 백가흠씨 께서는 책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다섯번째로는 피아니스트 양방언씨께서 나오셔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이번 예스 24 문화 축제가 좋았던 점은 위와 같이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무대위의 배우나 가수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입장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길기만 할 줄 알았던 3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 같이 소중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 보고 싶습니다.
허경환의 '네가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던 허경환씨는 유머 속에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섞으며 프로 개그맨 다운 기지를 발휘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 중 '네가지' 탄생 배경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특이한 소재 보다는 평소에 지나칠 수도 있는 그런 재미난 소재들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다고 합니다.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우스꽝스러운 말투, 그리고 10년 도 훨씬 지난 학창시절의 선생님의 말투, 이런 것들이 모티브가 되어 그에게 유행어나 개그의 소재가 됩니다. 항상 남을 웃기는게 직업인 개그맨은 남을 웃기는 것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허경환씨도 역시 이러한 딜레마에 빠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는 단점을 뻔뻔하게 내세우는 캐릭터를 소재로한 개그를 생각해 내었다고 합니다. '내 키가 작으면 어때?' '뚱뚱하면 어때' 라는 식의 단점을 뻔뻔함으로 승화하는 개그는 확실히 다른 개그들과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신체적 혹은 지능적 단점을 희화화하거나 과장된 분장과 몸짓을 개그의 모티브로 삼는 것과 달리, 물론 어느 정도는 과장되었지만, '네 가지'의 캐릭터는 바로, 그러한 단점을 장점처럼 내세운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단점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단점을 우습게 여기고 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러한 모습은 어린 아이들의 친구관계나 놀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 같은 개그이지만, 어린이도 많이 보는 개그의 소재로, 얼굴이 못생기거나, 신체적/언어적/정신적 으로 어눌한 면이 있는 캐릭터를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 단점을 당당히 내세우는 캐릭터를 생각해 내었다는 것이 오히려 특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원국의 '체공시간'
등장도 퇴장도 너무나 멋진 발레 동작으로 해주신 이원국 씨는 한국 최고의 남자 무용가 입니다. 그런 그는 20살에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발레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3살부터 일찍이 방황을 시작한 그는 19에 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권유했다고 합니다. 태권도, 피아노, 등등 하지만 모든 것은 작심삼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권유했던 것이 '발레'라고 합니다. 지금도 제게는 소원한 분야인 발레를 그 시기 부산에서 시작한 그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했고, 조금 과장을 보태면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연습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집중해서 연습한 것이 '체공시간'을 늘리는 연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루마니아에 있을 때, 공연이 끝나고 남들이 뒤풀이 하러 갈때면, 혼자 몰래 빠져나와 모래사장에서 연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습이 없을 때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남들보다 더 긴 체공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최고의 무용가가 되었습니다.
체공시간이 길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빨리 정점에 오르고, 남들보다 더 느리게 내려와야 한다 뜻이며, 이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그것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에 있어 긴 '체공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열정을 가지고 항상 최선을 다해라"
양방언의 '뇌와 창작'
먼저 멋진 연주를 선보이며 등장한 양반언씨는 제주도가 고향이면서 국적이 조선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이면서 국적이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난 양방언씨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 처럼 특이한 사람이 태어났다고 하여 좌중을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시작한 일은 '피아니스트'가 아닌 '의사'였다고 합니다. 의과 대학에 다니던 그는 역시 대학시절부터 프로 음악가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가 있던 의과대학으로 아버지가 입원을 하시게 되면서 그는 아버지를 위해서 의사의 길을 선택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길이 음악임을 깨닫고, 과감히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합니다.
그런 양방언씨에게 책을 추천해 주길 묻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양방언씨는 '뇌'에 관련된 책을 추천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덧셈 뺄셈과 같은 연산은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사람의 뇌는 어디로 튈 줄 모른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지금 기술로는 컴퓨터가 이러한 뇌의 기능을 따라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어디로 튈줄 모르는 사고가 바로 인간이 창작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엉뚱하다'라는 말을 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어떤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런 의도하지 않은 '엉뚱함'은 첨단 컴퓨터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엉뚱함은, 이러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뇌가 가진 특징은, 인간이 가진 나약함이 아닌, 인간이 더욱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 같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문화 축제를 보고와서, 안내 게시물을 더욱 자세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이 처음 방문이었는데, 새삼 제6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 오고 진작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고, 처음 게시물을 볼 때 못 느꼈던, 좋은 공연 준비를 위해 예스 24에서 많은 준비를 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