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
이러한 타이틀에 잘 어울리는 나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러시아' 이다.
실제 거리상으로도 러시아는 가깝기도 하지만 멀기도 하다.
1991년 연방국 형태의 소비에트가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이르쿠츠쿠 처럼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우리나라와 5 시간의 시차가 있다. 같은 러시아 안의 도시 간에도 최대 7시간이상의 시차가 난다.
광대하게 뻗어 있는 대륙도 그렇지만, 러시아는 문화적으로도 복합적인 도시이다. 유럽,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까지 점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살아숨쉬며, 그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유적이 공존하고 있다.
'러시아 통신'은 말그대로 러시아어 통역가인 요네하라 마리가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며, 실제로 듣고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단은 책 속에는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다. 아마도, 동시통역을 전문으로 한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통신'은 마치 요네하라 마리가 보고 들은 것을 우리들에게 동시통역하는 것 처럼 기술되었고, 그 시절 그녀가 보았던 그리고 들었던 러시아가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물론, 그녀가 경험했던 러시아는 10~20년 전의 러시아 이므로, 지금의 러시아의 상황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러시아의 경제 개방이 그 변화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러시아는 그 후로 더욱 빠른 변화를 겪게 되어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상황에 맞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밌게도, 그런 요네하라 마리의 책에서는 향수가 느껴진다. 예전에 보던 러시아의 정치인들 이야기들이 나오는 부분도 그래서 재미있다. 철옹성 처럼 닫혀있던 시절의 러시아의 최고 통치자들인, 고르바초프나 옐친을 직접 수행하면서 통역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또한 확실히, 러시아 같은 나라는 경제적, 사회적 단절이라는 아픔이 있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의 특색이 오히려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러시아만의 특색이 개방경제 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그 모습을 보존시켜 나가는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듯하다.
또한 그녀의 입담의 장점은 무거운 주제를 결코 무겁게 만들지 않는데 있기도 하다. 자칫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일본인의 시각도, 그녀의 글을 통해서 보면, 그렇게 밉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인들은 이렇게 느낄 수 있구나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배우기도 한다. 이런 점은 요네하라 마리가 러시아를 오가면서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점도 있구나' 하며 느낀 점들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책을 통해 이처럼 생생하게 간접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녀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글을 읽으며, 그녀의 세심한 주의력과 탁월한 감수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나, 작은 차이에도 생전 처음 크리스마스 양말에 들어있는 선물을 받아보는 아이처럼 기뻐하고, 또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에 내 마음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듯하다.
최근 들어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경제교류가 더욱 확대 일로에 있다.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고, 그 만큼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든 러시아는 문화적/지리적으로 방문하고 싶은 매력을 가진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번은 러시아에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과 담없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