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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아침, 간밤에 온 비로 젖어 있는 길을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비 온 뒤의 약간 흐린 날씨는 영국의 날씨를 떠올리게 한다. 기후의 변화로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날씨로 인해 하늘이 흐린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비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고 중절모를 즐겨쓰는 영국신사들의 하늘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밖으로 나서서 10분 남짓 걸어,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지하철 역에 다다른다. 아침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 따라서 지하철도 좀 더 바쁘게 움직인다. 지하철은 3분 마다 한 번씩 정거장에 들려 사람들을 모아서 데려간다.

종종 걸음 치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 유유자적 아침 운동을 나서는 사람 등등 아침의 풍경은 그 나름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간밤에 휴식을 취하고,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의 아침은 사람들이 가장 생기있고, 몸상태가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햇살이 비치는 거리의 풍경은 밤과 달리 낯선 느낌으로 하지만 네온 사인 또는 가로등 불빛 보다 명확하게 거리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하철에 탑승하기 까지, 사람들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간이 세 군데가 있다.
첫번째는 횡단보도, 두번째는 지하철 개찰구, 마지막은 지하철 승강장이다.
먼저 횡단보도는 출근하는 사람이 늦게 일어난 것인지 일찍 일어난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모처럼 기분좋게 일찍 일어나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횡단보도의 신호를 잠시 기다리는 것 쯤은 아무일 아니다. 교차로 횡단보도의 신호가 녹색에서 다시 녹색으로 바뀌는 주기는 대략 1~2분 가량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2분 정도의 기다림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잠시 주위를 살피거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거나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오늘도 정시출근을 위해 혹은 정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위한 시간에 일어난 사람이라면, 빨간색을 내뿜는 신호등의 신호를 주시하기 마련이다. 마치 그렇게 쳐다보면 신호가 더 빨리 바뀔 것 처럼 쳐다본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는 순간 예비 신호로 황색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마치 출발선에 서 있던 경주용 자동차 처럼 혹은 트랙위의 육상선수 처럼 놀라운 반응 속도로 보도블럭 라인을 박차고 앞으로 나간다. 실제 경기라면, 실격일 테지만,


마지막으로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혹은 지난 밤의 과음이나 이웃의 소음 기타 이유로 밤잠을 설친 사람 그래서 늦게 일어난 사람들은 보다 눈에 잘 들어오게 마련이다. 이들이라면, 신호등의 빨간불도 논외가 된다. 신호등을 앞에 둔 30미터 전방에서 부터 주위에 차가 오는지 여부와 신호등의 컬러를 체크한다. 운좋게 신호등이 초록색이면, 황급히 지나간다. 빨간 불이더라도 과감하게 무단횡단도 불사한다.

이상이 첫번째 코스라고 할만한 집에서 횡단보도에 이르는 구간이다.

다음은 지하철 개찰구에서 지하철 승강장에 이르는 구간이다. 대개의 경우 이 구간은 하나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니 함께 다루어 이야기하기로 한다.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대개의 경우 종종 걸음이다. 이는 마치, 육상선수가 결승점에 가까워 지면서 점점 속도를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개찰구에 가까워 질 수록 걸음의 속도는 빨라지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지점에서 최고 순간속도를 기록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는 서두르는 사람의 비율의 증감이 일정하게 반복된다. 일상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타야할 지하철이 도착할 시간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늦게 일어났더라도, 다음 지하철이 들어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이들은 굳이 더 빠르게 가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지하철이 오는 시간을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일단은 무조건 종종걸음을 친다. 승강장에 들어서기 까지 종종걸음이 이어진다. 이들이 최고속도에 달하는 지점은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개찰구를 막 통과했을 때, 지하철이 들어오고,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이 보인다면, 다시 질주가 시작된다. 물론 이 장면은 지하철 비공인 최고속도가 기록되는 순간이다.


사설이 길었다. 대략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몇 개의 횡단도보 구간과 지하철 개찰구, 승강장 구간을 지나칠 지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보아, 전속력의 질주를 하였을 때(신호를 무시하거나, 옆을 가는 사람의 길을 가로 막거나 하면서), 한 구간에서 적게는 30초, 많게는 1분여의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 당신이 이처럼 전력 질주로 약 30초에서 1분여의 시간을 앞 당겼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3분 간격의 지하철을 탈 수 있을 지의 확률은 묘연하다. 3분 가운데 1분을 앞당기므로 단순히 수치상으로 계산하면, 서두르더라도, 당신이 지하철에 성공적으로 탑승할 수 있는 확률은 약 30%이다.


내가 좋아하는 용어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매몰비용(Sunken cost) 이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이 되어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이다. 경제학에서는 미래의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회수 불가능한 비용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매몰비용을 당신이 늦어버린 아침의 10분(혹은 20분 또는 다른 양의 시간)에 비유하고 싶다.
다른 하나는 '현실에 충실하라(Carpe deim)'이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의미는 단순히 열심히 하라는 의미 외에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순간에 만족하며, 미래에는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그것이 카르페 디엠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까?
바꾸어 말하면, 약속 시간 외의 다른 현재 들에 좀 더 시선을 분산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바쁜 출근시간 3분을 앞당길 것인지, 아니면, 3분간 가질 수 없었던 것들, 그리고 그 앞에 남은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꼭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가끔은 늦게 일어나더라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하며, 유유자적 회사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습관적으로 늦는 것에는 반대한다. 시간 약속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을 반기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몰리는 것이 주된 요인이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모든 사람들이 바삐 서두르는 것도 한 가지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첫번째 요인은 구조적 요인으로 개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 십시일반 하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유가 모이면, 비로서, 보다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아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의 여유는 나만 여유롭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나의 여유가 절반이고, 다른 사람의 여유가 절반이며, 그 둘이 합쳐 졌을 때, 진정한 의미의 여유인 남과 내가 다 함께 여유로운 아침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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