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억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억은 무언가 기억될 만한 매개체를 타고 기억 속으로 슬며시 흘러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겨울은 추운 날씨와 차가운 눈과 따뜻한 입김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추억이 될만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은 흑백 사진입니다. 하늘은 회색빛, 거리도 마치 무채색으로 칠해놓은 듯 회색빛으로 가득하고, 구름이라도 뜬다면 세상에는 어두운 명암이 짙게 드리웁니다. 겨울풍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추억에 흠뻑 빠져들기에 충분합니다.
돌아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기억나지만, 그 중에서 더욱 애절하게 기억나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 더 이상 주변에서 볼 수 없는 풍경 같은 것 아닐까요? 어릴적 겨울이 유난히 신났던 이유는 눈이 내리는 계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눈이 내리면, 뒷산이나 동네 언덕으로 달려갔습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달려가도, 주위에서 비료포대나 커다란 종이박스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곧 그것은 좋은 눈썰매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손에 동상이 걸리는 것도 모른채 하루종일 그렇게 눈썰매를 지치다고 집에 들어가 부모님들의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꾸중에도 눈썰매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인기있던 겨울 놀이는 눈싸움과 눈사람 만들기입니다. 당시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도 금새 쌓이기 마련이었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으로는 솜같은 눈이 내린 모습 그대로 쌓여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 곳은 눈사람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 였습니다. 눈을 돌돌 굴려 정말 자기 덩치보다 더 큰 눈덩이를 만들어 나중에는 혼자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크게 굴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럴 때면, 어른들로부터 눈치우기 힘들다고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만 핀잔만 할 뿐 그 눈사람은 골목한 자리 혹은 집앞 대문 앞 한 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여전히 눈은 설레임의 대상인가 봅니다. 며칠전 서울에서 첫눈이 내렸고, 첫눈이 내렸을 때 통화량과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겨울과 눈은 추억을 불러오는 매개체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린 눈이 시간이 흐른 지금은 불평과 불만의 대상이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스팔트 도로, 늘어난 차들에 의해 더 이상 눈을 포용할 수 없게 주변 환경이 변해 버린 것 같습니다. 흙 길위에 눈이 내린 후 녹을 때 쯤 질척해진 길을 자박자박 걷던 그때가 잠시 그리워진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