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엄마의 폭언, 폭행으로 인하여 내면의 상처가 생겼으며 이로 인해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며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스토리입니다. 현재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과정도 이 책에 함께 담겨있습니다.
<이름 없는 꽃 中>
P.65 엄마는 여전히 내 삶을 본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나를 어떻게든 통제하고자 했다.
P.69~P.73 엄마가 나를 때린 것처럼 (나는) 동생을 때렸다. 엄마가 나를 이성을 잃고 때리듯이 나 역시 그렇게 따라 했다. 너무 어렸던 나는 화가 나는 방법을 어떻게 푸는지도 잘 몰랐다. 내가 엄마에게 맞고 있을 때 나를 바라보던 동생이 너무나도 싫었다. .... 나를 때리는 엄마의 모습으로 내가 폭력을 습득했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이불 속으로 도망간 나를 발로 밟아가며 때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떤 훈계의 개념을 넘어서 이성을 잃은 폭력이었고 나는 그 모습을 학습해서 동생에게 똑같이 했다.
엄마는 엄마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받은 나의 상처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의도했더라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평생을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이름 없는 꽃 中>P. 82 사랑은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는 것이었으므로..
인에이블러(Enabler)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이란 뜻의 심리학 용어로, 다른 사람의 책임을 대신 떠맡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을 말한다. 부모라면 아이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대신 해결해주려고 하며 독립적 존재가 아닌 의존적 존재로 키우는 사람을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보호본능이라는 관념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갑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신생아기, 영아기, 유아기인 시기는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부모가 나서서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치지요. 이때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기다려 줄 필요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줍니다. 하지만 의사 표현이 되는 아이가 되었을 때도 아이의 행동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많은 일들을 해내며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희생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필요 이상의 위치인지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도와주고, 칭찬도 하고 때로는 벌도 주기도 하며 부모를 따르게 합니다. 그리고 각종 정보와 전문가의 의견들 중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구난방 아이들에게 주입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사소한 문제에서 적당한 상과 벌을 섞으면 아이가 따라와 주었습니다. 이렇게 순종적으로 부모를 따르게 하는 관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어린아이가 사춘기를 거치고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며 새롭게 생겨난 자아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화 시키며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을 하며 자신에 맞게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더 이상 부모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부모는 불안해하며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야!", "내 뜻대로 하지 않을 때 미래는 성공적이지 못할 거야! 내가 경험자야!", "네가 하는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니?"라며 자식의 줄다리기가 시작이 됩니다. 지금의 자식의 생각과 행동을 부정하고 반항이라고만 생각하며 예전의 순종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게 끔 더욱 강도 높은 설교와 억압을 행사하며 자식의 자유의지를 박탈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압박이 심하면 심해질수록 자식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어가며 인격이 형성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정말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믿어주고 응원해 줘야 합니다. 지금 당장 자녀의 시행착오를 보는 것이 괴롭고 힘들겠지만 평생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분리된 인격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름 없는 꽃 中>
P. 131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의 모든 모습을 인정하며 사랑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의 대상이고 진심인지는 나 자신을 인정한 후로부터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감사의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진심으로 받으며 제가 변했다고 하며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고, 의심하며 "그러다가 지쳐 너무 애쓰지 마.", "네가 진심인지 모르겠어.", "사람은 그렇게 한순간에 변하지 않아. 성향은 타고난 거야.", "네가 그러니까 더 화가 나!"라고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내가 노력하는 거 안 보여? 내가 변하지 않는 것도 다 너희들 때문이야!" 하며 그분들을 탓하며 화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제는 저의 진심에서 나오는 사랑과 감사를 표현에 대한 것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분들에게 화와 짜증,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마음으로 좋은 에너지를 계속해서 주자. 그분들이 준비가 되었다면 더 많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그분들에 대한 마음은 변함없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이니까 당신도 받아들여!"라며 저와 동일시 생각해주길 바라거나 그분들을 판단하지 않고 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름 없는 꽃> 책을 덮으며
P.227 당신이 이 책을 읽는 것조차 나는 필연으로 믿는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그리며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현재!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의 소중함을 거부하며 살아갑니다. 그 거부 속에는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현실에 대한 비관을 하며 스스로를 자멸시키기도 합니다. 저도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며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부정적인 마음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었으며 주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최악의 상황까지 몰고 갔다가 우연한 계기에 마음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부족한 마음 상태이지만 예전보다 한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라는 길에 들어서 것과 같습니다. 삶이 시작되었으면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 이치입니다. 하지만 명이 다해 죽는 이치를 거스르고 자신의 선택으로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저자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겪는 감정의 고통으로부터 죽음을 앞당기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는 것에 공감을 하게 되었던 이유도 저도 그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늦은 나이지만 그때의 그 고통과 감정들이 저의 일생에 좋은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지금은 기억하기 싫었던 순간까지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감사함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를 놓아주었습니다. 또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저에게 가했던 채찍질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불안은 현재 이 순간까지 불안을 몰고 오며 결국 현재에도 집중을 못 하기에 미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현재에 감사한 마음을 키워가던 중 필연적으로 <이름 없는 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가 현재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좋은 독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