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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도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저/김춘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 '무라이 슌스케' 선생과 함께 일하는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속한 직원들은 해마다 여름이 되면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가루이자와 여름 별장'에 가서 함께 건축 작업을 한다.

ㅣ. 학교에서 교사라는 존재, 직장에서 선배나 사수라는 존재에게 지금의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약속에 의해 함께 생활하고 필요에 의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정도를 기대하는 듯 하다. 물론 지식이나 기술을 탁월하게 전수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자체로서의 인성이나 인격을 우러러 보며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한 시기를 함께 지내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 속 설계사무소의 직원들은 무라이 선생에게 단순히 일을 배우고 함께 회사를 꾸려나가는 것 이상으로 선생의 인생 자체를 우러러 보고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무라이 선생은 건축과 삶에 관해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건축 작업과 결과물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하며, 직원들은 마음을 열고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선생을 보며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서로 협업하는 모습이 무척 좋아보였다.

**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하자면,

_ 연필 깎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기타아오야마나 여름 별장이나 같았다. 시작해보니 분명히 그것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작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끓이는 향내처럼, 연필을 깎는 냄새에 아직 어딘가 멍한 머리 심지가 천천히 눈을 뜬다.

_ 선생님 건축에 들어서면 아무도 큰 소리를 안 내게 되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촉감이라든가 부드럽게 들어오는 광선이라든가 늘 쓰는 사람이 한참 지나서 겨우 알아챌 수 있는 장치들은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나 같으니까, 사람 목소리도 거기 맞춰 작아지지. 아스카야마의 디테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중얼거림 같은 것인지도 몰라.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중얼거림을 알아차릴까 하는 문제는 있겠지만.

_ "자네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완고하니까." 웃음을 머금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 완고함을 소중히 지키도록.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_ 자기가 한 일은 반드시 자기한테 돌아올 거라는 의식이 자연히 생긴 것 같다. '선생님' 밑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기대지 않고, 기한부로 같이 일하고 그 작업에서 나온 것을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회수하겠다는 동기부여도 되어서 사무소의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졌다.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요소를 자기 자신을 위한 확장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몸에 익혔으면 좋겠다. 나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이기를 바라고 있다.

2. 인물들이 건축 작업에 임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을 위하는 건축은 무엇인지,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또한? 책에서 표현하는 건축과 삶의 과정이 무척 닮아 있어서 삶의 각 과정과 단계마다 마주할 수 있는 고민에 대해 풀어가는 느낌이다.

주인공 '나'는 소설에서 막내 직원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직원이나 그가 작업차 만나는 선생의 지인들이 그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는 '좋은 어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조연이지만 '좋은 어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렇게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를 보면서 앞으로의 인생에서 묻게 될 질문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거나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하자면,

_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_ 유키코가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그 인내 경쟁에서 지지 않는 점이었다. 수동적으로 보여도 마지막에는 자기 계획을 부드럽게 통과시켜낸다. 유키코는 한 번 진득하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신뢰를 쉽게 얻는다. 까다로운 고객과 전화하는 유키코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설득하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유키코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스스로 대답을 찾은 듯했다. 작지만 잘 들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유키코는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쾌하게 소리내어 웃었다.

_ 사카나시 군, 이 사람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은 친절해요. 그러니까 '이거는? 저거는?' 하고 귀찮을 만큼 물어서 힘들게 만드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하면 넘칠 만큼 대답해줘요. 하지만 사카니시 군은 상대방이 먼저 나서줄 때까지 기다리는 타입인가요? / 본인이 삼가서 잠자코 있는 것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한테는 똑같아요. 나는 꽃에도 열심히 말을 걸어요. 아무 말 안 하고 돌볼 때보다 훨씬 더 예쁜 꽃을 피워주니까. 정말이에요.

_ 그러나 움막이라면 아주 잠시라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멍하니 보는 여백 같은 시간이 있었을 거야. 인간에게 마음이 싹튼 것은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반대로 집 안에 계속 있으면 점차 견딜 수가 없어져서 밖에 나가고 싶고, 자연 속을 걷고 싶고, 나무와 꽃을 보고 싶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원하게 되지./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3. 주인공 '나'는 막내 직원으로 등장하기에 한창 '청춘의 나이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맞이하게 되는 사랑의 순간도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사랑이 생겨나 어쩔 줄 몰라하고, 상대와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 후 사랑이 급속하게 피어나고, 그러나 무엇이 이유인지 모르게 사랑을 선택할 수 없게끔 만들어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이 등장하고, 이렇게 첫사랑이 지나고 이와는 다른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게 되는 모습이 결말에 등장한다.

'나'가 서술자 역할을 하면서도 소설의 초반부에는 자신이 아닌, 선생과 선생이 일구어 낸 건축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적으로 건축과 사랑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나'가 사랑을 하고 회사의 직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선생의 작업을 배우고 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이룬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나'의 이야기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아마도 그의 성장과 성숙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 인상 깊은 구절을 소개하자면,

_ 음악도 엔진 울림 소리도 승차감도 볼보와 달랐다. 그것은 모두 마리코에게 속한 무언가가 초래하는 감각이었다. 나는 이대로 계속 운전하는 마리코 옆에 앉아서, 사랑이나 당신의 눈이니 하는 노래를 듣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는 몸 둘 곳이 없어질 것 같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_ 마리코의 별장에 떠돌던 것과 같은 냄새가 설계실에 퍼졌다. 뜨거운 홍차가 든 무거운 티포트를 양손으로 들고, 유키코가 한 사람 한 사람 차를 따라준다. 마리코가 눈앞에 놓고 간 스콘 접시를 보고 나는 갑자기 견디기 힘들어졌다. 자리에 앉은 유키코가 어느 순간부터 이쪽을 보고 있다. 의아한 얼굴이었다. 나는 귓불이 뜨거워졌다.?

_ 내 방에 남아 있는 카디건이나 숄에서 마리코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면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마음과 울 것 같은 쓸쓸함이 목까지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나 그렇게 마리코가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나 따위가 되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마음 밑바닥에 체념이 쌓여갔다.

4. 김영하 작가는 북클럽인스타방송 마지막즈음에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소설을 하나 읽었다면 마음 속에 그만큼의 세계가, 하나의 집이 생기는 것' 이라고. 여름의 계절을 통과할 때, 청춘과 성장의 과정을 거쳐갈 때, 닮고 싶은 선생과 어른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 지금 마음 속에 생긴 이 자그마한 세계가 빛을 비추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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