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그려진 표지이건만 웬지 모르게 그 동네엔 따뜻한 이야기가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 같고 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무지개처럼 보석같은 추억들이 샘솟을 것만 같다.
다정하게 마음을 다독여주는 그림 덕분에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토록 저명한 작가님도 창피한 순간, 숨기고 싶거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고 또 아이처럼 귀여운 모습들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살짝 놀라다가 이내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럴싸해 보이게 끔 포장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에, '나'에게부터 솔직한 자세가 필요한 작가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이런 것인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바란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 책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책 내용 중에서)
-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철저하지 않고 감미롭다.
: 독서와 글쓰기가 내게 주는 기쁨도 이러하다. 작가가 마음으로 내준 길에 동행에서 작가와도 대화하고 책을 읽은 여러 독자와 말로, 글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마법같은 매력에 외롭지 않다.
- 다시 속기 싫어서 다시 속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만나는 모든 것을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방법은 매우 약은 삶의 방법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 불쌍한 이웃을 보면 이런 똑똑하고, 지당한 이론 대신 반사작용처럼 우선 자비심 먼저 발동하고 보는 덜 똑똑한 사람의 소박한 인간성이 겨울철의 뜨뜻핫 구들목이 그립듯이 그립다.
- 그럼 진짜 보통 사람은 어디 있는 것일까?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란 평균 점수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싶어하는 가공의 숫자일 뿐,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수녀님들의 미소는 내가 있는 걸 다들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어서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 새가 없었다.
: 사람을 위로하려면 이렇게 위로받는 사람이 위로받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너그러운 마음을 내어줌이 아닐까. 나 또한 누군가를 위로할 때 혹시나 나의 배려가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스럽다.
-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
- 그때 내가 남영역에서 잃은 건 지갑도, 길도 아니라, 명함만 한 주민증이나 카드에 불과한 나 자신이었다.
: 스마트폰을 잠시만 두고 나와도 불안하고 회사에 가져가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질 정도로 내가 스마트폰인지, 스마트폰이 나인지,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나날이 높아지는 요즘이 떠올랐다.
- 친구는 딱하다는 듯이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게,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 하늘이 낸 것 같은 천재도 성공의 절정에서 세상의 인정이나 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해도 그 성취감은 순간이고 그 과정을 길고 고됩니다. (중략) 이왕이면 과정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은 결국 과정의 연속일 뿐 결말이 있는 게 아닙니다.
-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간혹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면 그것을 대문간에 들어서자마자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역사책의 일부를 살아오신 작가님의 일상 속에서, 공중전화기로 통화하던 나의 어릴 적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고 교과서 속의 서당 사진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또 지금까지도 내 아이에게 해주고 있는 만병통치약인 '호오, 호오'를 만났을 때 너무도 반갑고 엄마의 '호오'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