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도서]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정인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1980년 판사로 임관하여 2004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원을 떠나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인진 변호사가 우리 사법부의 문제적 현실을 낱낱이 살펴보고, 우리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는 2019년부터 <경향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게 된 것을 계기로, 계속 공부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법적 이슈에 대한 성찰과 시각을 벼릴 수 있었다, 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잘 벼려진 저자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벼림의 출발은 다음과 같은 자성으로부터 출발하여, 

  나는 실패한 법관이었다. 법정에서 실패하고, 판사실에서 실패하고, 집에서 실패했다. 이 글은 그래서 썼다. 그리하여 이 책은 실패의 기록이고 패배의 서사다. (머리말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인간의 고통과 그 고통을 덜어내는 일은 내 삶의 핵심 주제다. 고통을 바라보고 또 겪는 일은 슬프지만 슬픔은 정직하다는 것,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모르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법이 꼭 정의와 연대의 도구가 되는 데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으로 책을 내는 부끄러움을 덮는다. (머리말에서)

 

  그러니까 이 책,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사법 개혁에 대한 저자의 열망과 입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다음처럼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변호사가 된 판사

  2장 - 법을 채우는 상상력

  3장 - 누구를 위한 법인가?

  4장 - 사법 과잉과 사법 불신

  5장 - 우리 사법의 풍경

 

    **

  1장에는 7개의 글이 있다. 맨 먼저 <판결이라는 글쓰기>에서 저자는 법관의 판결문 쓰기를 천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사만화에서는 종종 법관을 머리에 문양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법대 뒤에 앉아 방망이를 내리치는 사람으로 그린다. 그러나 법관에게는 그런 모자도 없고 방망이도 없다. 법정에 앉아 있기도 하나, 그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뿐이다. 법관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판결을 쓰는 사람이다. 법관은 '판결 써야 하는데' 왜 회의를 이렇게 오래 하느냐고 동료에게 투덜대고, '판결 쓸' 시간도 없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가족들을 나무라고, '판결 쓰다가' 보내버린 세월이 억울하다며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중략) 법관에게 판결은 그의 직업적 모습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5-26쪽)

   <판결이라는 글쓰기>에서는 법관의 주된 업무가 판결 쓰기라고 하며, 판결이 어떤 것인가, 곧 판결의 성격과 영향력을 밝히고 있다.

  이어지는 글은 <나는 왜 판사를 그만뒀나>인데, 여기에서 저자는 자신이 판사 시절 실제로 다른 두 번의 재판을 예로 들고 그 과정에서 원고에게 느낀 미안함을 두 편의 시를 통해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자신에 대한 분노, 좌절감, 무력감 등에 빠진 적이 많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장은 법률 용어가 제법 있어서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은 판사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판사는 3D업종처럼 느껴졌다고 하겠다. 판사의 직업적 어려움은 2장에서도 이어진다.

  판사들의 사정은 어떤가. 그들은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판사야말로 고통스럽다. 책상을 사건 기록으로 가득 차 있고 법정은 사건으로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의 내면은 초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139쪽) 

 

  2장에는 10개의 글이 있다. 그 중 <법대 아래 타자들>, <실체적 진실과 절차적 정의>, <편견과 예단의 위험성>, <이런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다>, <판결은 소통이다> 등의 글에 특히 관심이 갔다.

  <법대 아래 타자들>에서 저자는, 법관이 법대 아래 선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역지사지라는 이름의 위대한 상상력을 잃으면, 그 순간 전문직 종사자는 본래의 책무를 저버리고 사회적 사명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전문직이 적어도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 권력자라는 데 동의한다면, 모든 권력자에 대한 경구는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권력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피지배자의 입장에 서볼 줄 아는 것,(110쪽) 이라며 높은 법대에 앉은 이들이여, 간절히 비노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선언을 진실로, 진실로 가슴에 새겨보라고 충고한다.

  <편견과 예단의 위험성>에서는 법관의 편견과 선입관과 예단이 재판에 작용하리라는 생각이 자신을 우울하게 한다며, 법정은 약자든 강자든 원론적으로는 동등한 지위와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고, 이런 곳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으려면 법관이 공정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인 대등성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편견과 선입관과 예단을 버리고) 어느 쪽 목소리든 우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다>에서는 판사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걸 줄이기 위해 주장과 입증에 좀 더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모습,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 사법권도 여느 권력처럼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탁상의 이론이 아닌 신념으로 새기는 자세, 법원의 편의와 판사의 권위를 위해 법원과 판사가 복무한다는 자명한 원리의 실천, 이런 것을 보여주는 판사, 정의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판사(130쪽)에게 재판을 받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판결은 소통이다>라는 글에서 판결은 승복할 만한 이유를 담아야 한다. 승복할 수 없는 절차를 거쳐 승복할 수 없는 판결을 받은 당사자에게, 달은 보지 않고 왜 손가락만 보느냐고 나무랄 수는 없다. (중략) 결론이 어떻게 나는가와 상관없이 판결이 반드시 소통의 결과여야 하고 그 자체로 다시 소통을 의도해햐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절실하다(132쪽)며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2장을 마무리짓는다.

 

  3장 '누구를 위한 법인가?'에는 법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11편의 글이 실려 있다. 여기에서 다룬 11가지 주제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양형의 이유(성폭력범죄), 위안부 손해배상 판경를 보는 시각(주권 면제), 낙태는 전면적 비범죄화가 옳다(낙태권),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어야 한다(차별금지법), '숨 쉴 공간'과 메마른 세계관(표현의 자유),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직권남용죄), 고무줄 배임죄(배임 행위), 전쟁과 평화(만국공법), 연예인은 공인일까?(명예훼손죄), 공직자의 '온당치 못한 외관'(공직 윤리), 최소한의 법적 안정성(조세법)

  3장은 구체적인 법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글이어서 다른 장보다 흥미로웠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실제로 내려진 판결의 예를 거론하며 그 판결의 문제와 의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외국, 주로 미국의 연방법과 연방대법관의 판결 등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판결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3장에는 인상적인 내용이 참 많았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도 없고, 2부분만 옮겨본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임명한) 블랙먼(대법관)은 왜 보수주의자들의 기대와 다른 판결을 내렸을까? 이 온화하고 겸손한 노신사는 로 판결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 우리의 과제는 이 문제를 감정이나 편햠됨 없이 헌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대법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기본적 인권을 보장한 헌법의 정신과 원칙이었다. (154쪽)

  저자는 말한다. 임명권자의 입장에서는 '배신 때리기'였겠지만 사법의 역사를 읽을 때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기 짝이 없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른 법조인이 떠올랐다. 누가 옳고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사법부가 수호해야 할 것은 권력자의 정치 철학이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헌법의 정신과 원칙이어야 한다는 데는 절대적으로 공감이 됐다. 

  부동산 세제의 무상함 뒤에는 변화무쌍한 부동산 대책이 있다. 2020년의 6.17 부동산 대책으로 이제는 양도소득세 문제를 넘어 삼성,청담,대치,잠실 등 4개 동의 경우 아예 토지 거래허가를 받아야 주택 취득이 가능한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정책 목표가 정당하더라도 그 목표가 정책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현 정부가 그간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주무장관의 말로도 네 번째고, 이것에 따라 늘 세법이 바뀐다. 하지만 세금은 가볍게 다룰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법적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200쪽)

 

  4장의 제목은 '사법 과잉과 사법 불신'이다. 여기에는 8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너! 고고'와 '너! 기소'>에서 고소 과잉의 현실을 언급하며 2018년 기준 우리 사회의 고소 건수가 55만건으로 일본의 무려 50배가 넘는다며 우려한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는 가히 <소송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소송 사회의 문제점은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구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다르게 이해하면, 흑백논리요 편가르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등 편가르기는 우리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는 것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 대한 우려는 저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법 불신의 원인>을 통해서는 사법부에도 '사법 자제론'과 '사법 적극주의' 사이에서의 고충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사법 개혁을 위하여>에서는, 과거의 우리 사법사를 돌아보며 '사법 개혁의 내용은 대개 사법부 주도 세력의 인적 물갈이가 되고 말았으며, 물갈이 후 집권 세력은 판사들이 국정 운영이나 정권 유지에 발목이나 잡지 않기를 바라는 한편, 사법부는 자체적으로 개혁을 한다면서 늘 이야기되던 주제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뜨뜻미지근하거나 흐지부지한 결말을 보'(225쪽)였음을 지적하고 나서, 사법 개혁의 수혜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국민이고 또 국민이어야 한다(226쪽)는 구절 앞에서 고개를 몇번이고 끄덕거렸다.

  4장에서 저자의 주장에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던 글은 <전관예우, 어찌 볼 것인가>라는 글이었다. 저자는 전관예우가 없다는 입장(있다고 해도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보이는데, 그렇게 판단하는 기저에는 저자 자신이 변호사 개업을 한 후에 맡은 사건에서 예우를 받지 못한 경험이 깔려 있릏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판단과 달리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분명 전관 에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실제로 판사들도 과반수 이상이 전관 예우가 존재한다고 설문조사 결과 나타났다고 글에 나와 있다).

 

  5장의 제목은 '우리 사법의 풍경'이다. 여기에는 1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검찰 개혁이 어려운 이유, 사법 개력의 상황과 현주소에 대한 글, <대법원장의 거짓말>, <헌법재판관의 자질> 같은 법조인의 자질을 다룬 글, 그리고 <내가 아는 노무현>, <정귀호 선생을 그리며>처럼 인물을 추억하는 글도 실려 있다.

 

  ***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는 우리 시대의 과제인 사법 개혁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법부의 문제점과 여전히 암울한 전망을 보며 화가 났다. 왜 사법 개혁이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잘 몰랐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던 법지식도 조금은 더 잘(혹은 많이)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후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법과 법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되내며, 리뷰를 마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reviewers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