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통영을 묘사하는데 큰 곳에서 점진적으로 작아지는데 큰 지도에서 확대하거나 카메라가 훑는 모양새가 떠오르는 묘사다. 파고파고 들다가 어느 마을의 형제를 소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물이 많고 각자 입체적이며 성격이 뚜렷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영상화가 많이 된 걸 이해할 수 있다.
사투리를 쓰는데 처음엔 어색하다가 익숙해진다 .독서모임을 같이하는 분의 고향이 통영이라 그분은 익숙한 동네를 묘사해서 아주 재밌었다고 했다. 용빈, 태윤, 정윤이 나올 때 지식인들의 토론 겸 다툼이 나오는데 무신론, 부르주아 논쟁 등 이 시대의 말투가 정말 흥미롭다.
오래된 소설 같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옛날은 아닌 것 같은데 1962년 작품이라니 놀랍다. 옛날에 나왔다는 걸 알게 하는 부분은 당연한 희생정신(사실 이건 요즘도 종종 있다)과 겸상이 안 되는 부부, 당연하게 언급되는 첩이었다.
용빈이가 강극에게 요약하는 집안사, 정말 깔끔한 책 요약이다. 자살한 숙정부터-사실 부가 살인한 게 먼저지-시작된 비극적인 김약국네의 운명은 적어도 과부가 된 첫째 빼고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만 웬걸 첫째가 어쩌면 제일 잘 산다. 책을 읽는 중에는 용숙이 얄미웠는데 용옥의 죽음까지 보고 나니 사실 이건 착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싶었다. 김약국이라서 약국을 운영하니 넉넉한 살림이고 크게 불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엔 그랬지만 가세가 기운다. 그래서 왜 이들은 비극적인 운명이어야 했을까 생각했는데 사실 모아놓고 봐서 그렇지 이들만 비극적인 게 아닐지 모른다. 많은 인물들의 등장은 개인의 비극이 사회적 문제라는 걸 보여준다. 그것만 생각하느라-어쩔 수 없이 난 21세기에 있으니까-다 비극적으로만 보였는데 희망을 씨앗을 마지막 문장에 심어놓은 걸 뒤늦게 봤다. 힘들어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 봄이 멀지 않았다. 용빈과 용혜가 잘 살길 바란다.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