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살고 싶다는 농담

[도서]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산다는 것에 대해서’ 
_
누군가의 인생이 평온해보일지언정, 막상 누군가의 삶 자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면 환희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순간이 많을겁니다. 오늘도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비극을 보면, 사람들은 그 젋은 나이에, 행복할 시간이 많음에도 왜 안타까운 선택을 했는지를 얘기하겠지만, 제가 느끼는 것은 ‘남의 일은 함부로 재단과 평가를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당사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저와 저의 주변에, 그렇지 않고서라도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고통을 겪고 계신분이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사세요 어떻게든’이라는 얘기밖에는 할말이 없습니다. 혈액암을 겪은 방송인이자, 과거의 평론가인 허지웅도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얘기합니다. ‘살아라’ 

저자는 수년전부터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완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죽음의 골짜기에서 삶의 평야로 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누군가의 고통을 뻐져리게 알고 있다는 말은 함부로 못하지만, 큰 사고를 당해서 가장 빛나던 나이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했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삶이 어떻게 한번에 무너지는지, 그리고 건강이 무너질 때 정신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느낀 감정에 대해 완전히 공감은 못할지언정,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스러운 하루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그냥 무언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농답>에서도 저자인 허지웅씨가 저와 똑 같은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유서를 다 써놓고도 시작한 것들은, 진정으로 살고 싶으니 살려주세요라는 얘기가 자존심에 받쳐 나오진 않더라도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는 그대로 전달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살고 싶다는 농담>을 보면 초반과 중반까지 저자는 자신의 삶과 고통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인생을 굉장히 관조적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중반이 지날수록 자신의 우울감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한켠 접어두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인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저는 여기서부터가 진정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힘들지만 살아야 합니다라는 어설픈 위로를 전달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는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생의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그 오랜시절에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있던 제가 한 것은 그냥 좋아하던 것을 꾸역꾸역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또 돈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갖고 있던 돈들을 병원비로 썼으니까요. 그리고 공짜로 영화를 상영해주는 곳을 찾아다녔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부족한 돈으로 카페에 가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었습니다. (오랫동안 있어도 눈치 안주던 스타벅스가 당시 돈없는 청년인 제게는 참 감사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지금은 잘 살아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된거죠.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살고 싶다는 농담을 수백번 외쳤겠지만. 인생이 다 그런겁니다. 그러니 살아야죠. 

‘할 수 있는 걸 한다는 것에 대해’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