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도서]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신민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창문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담배냄새에 환기를 망설이고, 술 취한 이웃의 고성방가 때문에 이어폰을 귀에 꽂는 2년차 자취생, 이것이 내 생활의 요약이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의 저자도 은평구의 한 방에서 살아가는데, 나와 닮은 부분이 있어 공감되었다. 온갖 이웃들이 모여 있어 불편하고 시끄럽고 무서운 방에서,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린다.

 

(21쪽) 그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적지 않은 돈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었기에 그는 다른 많은 여성들과 달리 가족의 공동 거실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됐다. 울프는 자신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배경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공간적 의미 외에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충분한 여가시간, 삶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기본소득을 논하는 저자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울프의 500파운드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돈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자취 중인 나의 처지에 단순히 겹쳐보기만 할 뿐, 내가 그것을 가지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과감하고 대범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가없이 받는 재난지원금은 분명 침체된 일상에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1차 재난지원금에는 맹점이 존재했다. 소득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대단했지만 그것을 ‘가구 단위’로 지급했다는 게 한계였다. 세대주가 아닌 국민은 그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이 틈새를 메울 방안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147쪽) 가족이 아니라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가족이 아닌 개인을 발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누구도 선별하지 않고” 정부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도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을 위한 선별복지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제가 많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난과 장애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치와 모멸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 이같이 절절한 이유들 때문에 저자는 기본소득을 외치고 동료들은 국회에서 ‘재난지원금무새’(148쪽)가 되었다고 한다.

 

(약간은 과한 환원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자의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분명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생각해봄직한 것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점점 변화하고 있는 일자리 구조를 보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자리들이 기계로 대체(예: 키오스크)되어가며 근로소득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단순 ‘노동력’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력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고 이를 비관한다. 하지만 노동력이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돈 버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돌봄’의 맥락에서도 기본소득을 도입해야할 필요를 주장한다.

 

(54쪽) 우리는 자주 돈을 가져오는 일만을 세상의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임금노동 외에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돈을 받는 일’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은 낮아진다면, 비로소 돈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돌봄’이라는 저자의 말에 힘이 실려 있다.

 

(118쪽) 코로나19가 끝나지 않는 세상.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남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의 시작은 위기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자격을 묻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138쪽) 온전히 혼자 독립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독립한 후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도움’에는 당연히 사회의 도움이 포함돼야 한다.

 

‘다같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본질을 이루며 사람이 되기 위해 기본소득을 외치는 저자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진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