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편 머리를 잘라주었다. 십여년 전 어느날 갑자기 미용실 가기 싫다며 나보고 머리를 잘라보라던 남편. 쥐 파먹은 것 처럼 되면 어떡하냐고 싫다고 했더니 자기 머리는 자기가 안보니 상관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태심함에 집에서 쓰는 일반 가위로 한번도 해 본적 없는 컷트를 했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내가 남편 머리를 자른다. 미용가위도 사고 자꾸 하다보니 딸내미들 머리도 잘라주고, 시누이 머리까지 잘라준 적도 있다. 배운적 없는 완전 야매의 손길인데 이젠 의례히 '머리 자를 때가 됐네' 하면 가위를 잡는다.
부담스럽기만 했었는데 요즘엔 머리를 자르면서 왠지모를 애틋함이 느껴진다. 머리를 자르며 사랑이 흐르는 것 같은.
이 책의 너무 젊은 의사 폴. 의사로서 우수한 능력과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되는 폴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나이들어가며 늙어가며 가족과 함께 나눌 사랑을 더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 아까운 인재가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서 앞으로 펼칠 성공의 안타까움보다 그가 베풀고 책임질 환자들과 사랑하며 사랑받을 그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속상하다.
내 삶이 허락되는 시간까지 민수를 온몸으로 응원하고, 민아를 사랑으로 케어하고, 남편의 머리를 계속 잘라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