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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도서]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저/황문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책의 도입부 처음에서 밝히고 있듯이...

 

" 사랑에 관한 이론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인간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즉 인간 존재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에일리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탐구서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사랑'에서 찾고 있으며, 이 '사랑'에 대한 해석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분리감, 즉 고독이라고 불리는 경험으로부터 구제되기를 갈망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이는 인간 상호간의 융합에 대한 욕구로 나타나며,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기도 하다.

 

개인이 타인으로부터 또는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는 분리감은 피하고 싶어하는 기본 욕구이며, 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와 연결되어진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양육을 통해 성장한 인간은 결국은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게 되지만, 이런 분리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게 되나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인 또는 단체들과의 융합과 소속감 등으로 고독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인 특징을 나타낸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주는 것'이라는 거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닌 주는 행위이며, 능동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타인과 그 외부 세계에까지 확장되어지며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외부 세계까지 뻗어가는 동일한 행위라는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이 세계를,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한 나는 "난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 이 세계를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에일리 프롬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함을 강조하는 말도 하고 있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인데, 이 책에서 이렇게 만나니 새롭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에릴리 프롬이 말하는 이런 이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직장에서 급여를 받고 있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 시장 경제 체제의 구성요소로서의 노동 시장의 한 부분인데 말이다. 이에 대한 대답도 책에서 제시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에일리 프롬은 시장 경제에서의 고민들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에일리 프롬은 '사랑'에 대해 마지막까지 '신념'있게 일관성을 보여준다.

 

"만일 인간이 사랑할 수 있게 되려면 그는 최고의 위치에 놓여야 한다. 인간이 기계에 봉사한다기보다는 기계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한다. 인간은 기껏해야 이익을 나누는 것보다는 경험을 나누고 일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랑하는 본성이 그의 사회적 존재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내가 밝히려고 애썼던 것처럼 사랑이 인간 존재 문제에 관한 오직 하나의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해답이라는 사실이라면, 상대적이지만 사랑의 발전을 배제하는 사회는 모두 인간 본성의 기본적 필연성과 모순을 일으켜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랑을 배제하면 인간 존재의 문제에 관해서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수십년전에 쓰여졌지만,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의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를 생각했을 때,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더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다음은...

 

책 속에서,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을 모아보았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일치는 분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에 의하면 개인의 자아는 대부분 사라지고 또한 그 목적은 소속된 군중에로의 일치가 된다. ~ 즉, 고독이라는 무시무시한 경험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융합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며, 인류와 집단, 가족,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발광이나 파괴를 의미한다.

 

보살핌과 관심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 '책임'을 함축하고 있다. 오늘날 책임은 흔히 의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위이다. 책임은 다른 인간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알고자 하는 나의 욕구는 일치를 통해 충족된다. 융합의 행위 속에서 나는 당신을 알고 나 자신을 알며 모든 사람을 안다. 또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사고가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일치의 경험을 통해서만. 나는 인간에 대해 살아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랑은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며, 일치의 행위 속에서 사랑은 내 질문에 대답한다. 사랑하고 내 자신을 내주며 다른 사람에게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찾고, 나를 발견하며, 우리 두 사람을 찾아내고,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경험들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경험으로 요약되고 한데 모아진다.

 

우리는 형제애라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존재인 이상 성애는 모든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매우 특별하고 매우 개인적인 요소를 필요로 한다.

 

타인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리의 감정과 태도의 '대상'이다. 타인에 대한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는 결코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문제와 관련시켜 보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양자 택일적이라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와 반대로 자신에 대한 사랑의 태도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고에 대한 강조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사고를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관념은 교의뿐만 아니라 과학으로도 이끌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교의와 과학, 즉 카톨릭 교회와 원자 에너지의 발견을 초래했던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사랑은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머니나 씨족, 민족에 대한 근친애적인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혹은 벌을 주고 칭찬을 해 주는 아버지나 혹은 다른 권위에 대하여 유아기적 의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는 좀더 성숙한 신에 대한 사랑을 발달시킬 수 없을 것이다.

 

사랑과 결혼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독감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 데 있다. 사랑을 통해서 인간은 드디어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게 된다. 세상에 대항하는 두 사람만의 동맹을 결성하고 이러한 두 사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인된다.

 

프로이트는 근본적인 현실이 인간 존재의 전체성에,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인간 상황과, 둘째로 특정 사회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삶에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이러한 측면, 즉 파괴적이고 삼켜 버리는 측면은 어머니 상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어머니는 삶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거두어갈 수도 있다. 어머니는 소생시키며 또한 파괴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사랑의 기적을 행할 수도 있고, 어느 누구보다 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동료로부터,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의 주요 목표는 자신의 '인격 상품'을,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공정하게, 이윤이 남는 교환을 원하는 다른 사람과 역시 이익을 남기고 교환하는 것이다.

 

조바심이 난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혹은 백일몽을 꾸는 등의 도피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인식하고 결코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왜 화가 나고 우울하며 조바심을 내는지 말해 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객관성과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은 사랑의 기술을 얻기 위해 가는 길의 절반은 온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접촉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획득되어야 한다. 만일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객관성을 아껴두고, 나머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객관성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어느 경우에나 실패할 거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사고와 판단은 합리적인 신념이 나타나는 유일한 경험의 영역은 아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신념은 의미 있는 우정이라든가 사랑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태도와 인격의 중심과 사랑에 대한 신뢰성과 불변성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본적인 동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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