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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리커버] 21세기 자본

[도서] [예스리커버]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저/장경덕 등역/이강국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피케티는 기존에 우리가 알 법한 '주류' 라 할 수 있는 경제학에 일종의 펀치를 날린 경제학자로 기억된다. 


그렇게 전 세계의 주목을 이끌었다.  '21세기 자본'을 통해서. 2014년 그야말로 전 세계가 '피케티 자본론?' 으로 열풍이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주 힘겹게 독파(?) 아닌 독파를 해고, 또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운 양장본을 통해서 다시 그의 이야기와 만났다. 여전히 읽고 또 읽고 생각을 하고 또 해 보아도.... 답은 없다. 그가 전하는 '지식' 과 '철학' 과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나아가 '사회' 속 '우리'를 생각하게 될 뿐. 이렇듯 사색의 화두를 거침없이 던져 주는 책은 '재독'을 요한다.....





자본의 수익률이란 


그 자본을 현재 소유한/할 소위 '최상위 계층'에게 막대한 '부' 와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이 그의 목소리다. ‘1945~1975년 이후 불평등이 심화되며 이는 21세기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그의 말은 아마도 '현재' 도 진행형일 테다. 이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이라는 책이 나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뭐라 기록으로 차마 남기지 못할 수준의  몇십여 개국의 경제지표를 철저히 분석해서 각 국가의 소득분배 불평등을 확인시켜준다. 그야말로 '확인사살' 아닐 수 없다. 






정리하자면 나는 '국부' 내비 국민 총자본'을 특정 시점에 특정 국가 거주자들과 정부가 소유하고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모든 것의 총 시장가치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비금융 자산 (토지, 주택, 상업용 재고, 기타 건물들, 기계류, 사회기반시설, 특허권 그리고 직접 보유한 사업 자산) 과 금융자산 (은행 계좌, 뮤추얼 펀드, 채권, 주식, 각종 금융투자상품, 보험 증권, 연금 기금 등)의 합에서 부채(채무)를 제한 것이다. 우리가 개인들의 자산과 부채만 한정해서 본다면, 민간의 부 내지 민간 자본을 살펴본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기타 정부 기관들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보험 기관 등) 이 소유하는 자산과 부채를 고려한다면,  공공의 부 내지 공공자본을 살펴보는 것이 된다. 그 정의상 '국부'는 이 두 용어의 합이다. 






국부 = 민간부문의 부 + 공공부문의 부   p.64






이를 통해 그는 말한다. 각 국가의 '소득분배 불평등'에 대해서. 


자본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누는 것이 특징적이나, 여기에 대한 여러 반론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소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 이기에. 사정과 상황, 개인적 자생력과 경쟁력은 배제된 '전 국민소득'의 가치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언제나 나로선 이게 의문이다.... 평균은 '개인'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엉뚱한 사람이기에... 






소득이 매우 높은 집단의 구성원들 중 (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들의 경영자들과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을 포함한) 금융 전문가들의 비중이 전체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의 약 두 배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들의 소득 상위 0.1%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면 금융 없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상위 소득집단의 80%는 금융업 종사자가 아니며 소득이 높은 미국인들의 몫의 증가는 금융 부문뿐 아니라 비금융부문에 속한 대기업 최고위 경영자들이 받는 보수의 급상승으로 주로 설명된다.  p.364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의 격차와 불평등은 심화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있는 이들은 더 큰 부를 얻을 것이다. '지옥고' 에 사는 이들이 있는 반면 타운하우스의 대지 점령은 증가한다. 이렇듯 빈곤의 극심화, 빈부의 격차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관론' 이 조금 더 앞선다. 사기도 더해질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인문적 사색과 평화주의적 바른 태도 없이는. 누군가들에게 돈은 사람을 뛰어넘기에..... 한편으로 '희망적'이라든지 '낙관적' 인 생각을 하고 싶어도 사실상..... 그게 잘되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 내가 속한 이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나라 또한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을.... 20대 때 치열하게 돈을 벌고 모으고 불리는 투자 과정을 쌓아가며 경제적 자유와 독립을 꿈꾸며 살았던, 여전히 사는 중인 나로서는... 역설적이나 있는 이들은, 아는 이들은 더 큰 부를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모르고 살면(?) 도태되고 퇴보하기 십상인 자본주의 시대.... 






여담이나 이 경제서가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객관적인 전문적 통계 및 주장에 대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숱한 논문, 참고 문헌적 백 데이터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인문적, 문학적, 인간에 대한 인도애적 감수성도 적절히 섞여있기 때문이었다. 경제서에 이런 문장을 만난다는 건 나로선 큰 복이다... 






현대의 소설가들은 발자크, 오스틴, 헨리 제임스처럼 3000만 유로 가치의 재산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채우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으로 기존 수치의 의미가 모호해진 이후, 문학에서 돈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은 사라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자본 소득자들 자체도 문학에서 사라졌고 그 결과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인 표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대 소설에서 사회집단 간의 불평등은 거의 배타적으로 일, 임금, 기술과 관련된 격차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부의 계층에 따라 구조가 짜였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계층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대체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많은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에 학위와 높은 수준의 기술로 무장한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중략) 




그런 드라마들은 능력, 교육, 엘리트층의 사회적 유용성에 근거한 공정한 불평등에 바치는 찬가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더 최근의 특정 작품들은 막대한 부에 더 명확하게 기초한, 더욱 걱정스러운 불평등에 관해 묘사한다. '대미지'는 노동자들에게서 수억 달러를 가로챈 냉혹한 사업가들과 현금이나 수영장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남편과 이혼하려는 더 이기적인 아내들을 묘사한다.  p.500






가장 마지막 문장만이 마음에 남는 건 왜일까. 


뛰어난 주장을 더 뛰어난 통계적 논리적 수치와 데이터와 여러 문화 사회적 해석이 총망라된 이 경제 학자의 이 문장만이... 자꾸만 '숫자'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나' 혹은 '우리' 혹은 '인간'에 대한 생각을 더 심도 있게 하게 만든다...




모든 사회과학자, 모든 저널리스트와 논평가,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가와 온갖 부류의 정치가, 특히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p.697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돈'과 '섹스'에 일정 부분 이미 미처버린 무리와 개인들이 상당수 종횡무진하는 이 대단한 자본주의 사회 속 상업 브랜딩과 마케팅이 그럴싸하고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 화려한 소비의 시대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이 자본주의의 물결은, 주류들의 행보는, 기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연스럽고도 불편한 질문 앞에 선다. 그 말미에 '아이들' 이 떠오른다. '후세대'를 위해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소득적인 행위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단지 그것만이 떠오른다.... '잘 살다가 잘 죽는 삶'에 대한 생각은 이럴수록 깊어진다. 








#무려 700페이지...이번달 초부터 열일 중 


#돈공부란 이런 게 아닐까. '돈 만' 생각하는 그 얕은 우물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고통스러운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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