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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도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레이첼 클라크 저/박미경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저자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완화의료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디에서나 사정이 비슷하지만) 여건이 매우 열악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책 앞날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 왔습니다. 이 역시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한데,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명제와는 많이 어긋나게도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개탄하며, 그 누구보다도 의료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각별한 보호를 베푸는 호스피스 업무에 종사해 왔습니다. 병원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호스피탈과, 지금 이 맥락에서의 "호스피스"는 서로 발음도 비슷하며 매우 닮은 겉모습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본원이 바로 "환대, 보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이 병원에 혹시라도 가게 되면 기대할 법한 서비스의 본질이 바로 이 지점에 있으니 책은 어찌 보면 우리 독자 모두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 중 하나를 다루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아버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정적 유대를 지녔던 부친이 말년에 대장암으로 큰 고통을 겪었기에 이 호스피스 업무에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부친께서는 어찌해서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독한 (화학) 항암제 처방을 견뎠습니다만 2017년에 안타깝게도 기어이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무척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 유명한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괴테(의 고전들)를 영국인이 읽을 때에는 번역이 필요하지만, 베토벤의 걸작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환자나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치료 역시 같은 영역이 아닐까 암시하는 듯도 합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수험생 시절 그녀는 면접을 볼 때 "자 레이첼, 어떤 동기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까?"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무척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하고는 의학교육기관에의 입학 과정이 많이 달라서 그녀는 전직 방송국 직원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막상 방송국에 입사하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반대였을 겁니다(점수에 맞춰 의대에 들어오고 보니 공부가 너무 힘들어 방송국 일로 진로를 바꾼...."). 

 

의학 교육 분위기도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듯합니다. 임상에서 무엇이 환자에게 최상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레이첼은 (선배 의대생, 전공의, 수련의도 아닌) 무려 교수한테 과감하게도 반대 의견을 수시로 표현합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당돌한 의대생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왔겠습니까? 또 저자는 의대생 시절 자궁경부암이 의심되어 "치욕적인(p98)" 경험도 하게 됩니다(남성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젊은 나이에, 유난히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었는지 그저 갑의 위치인 (미래의) 의사로서의 입장만 굳혀 가는 게 아니라 무력한 환자 입장에도 자주 서 보는 체험을 하게 된 듯합니다. 

 

심폐 소생술을 CPR이라 하죠. 일반인들도 의료 드라마, 혹은 그냥 일반 컨텐츠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CPR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인한 과정(p127)"이라며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심정지에 빠진 이들 중 CPR을 통해 소생하는 이들은 1/5" 정도뿐이라고 하며, 의사들 역시 뻔히 알면서 정면 논의를 회피하는 이슈라고 말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은 거의 과장이거나 환상에 가깝다고 하네요. 

 

천식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레일라라는 19세 소녀를 치료한 경험도 자세히 소개됩니다. "진짜 나는 의사들이 미워요. 멍청한 환자 입장은 돌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잖아요?(p153)" 사실 소녀가 분노하는 건 의사들이라기보다 그들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일 것입니다. 백혈병 재발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든 앨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톰(이란 남성 환자)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당시 저자는 그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하고 그저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을지 당시의 일을 저자는 다소 냉소적으로 회고(p187)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며 우리는 이런 진실을 그저 남의 사례에서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노인 사이먼과 그의 딸을 대할 때 저자는 더 성숙하고 더 공감 잘하는 의사였습니다. 사이먼은 의사들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환자였으며 이런 경우를 능란히 다루는, 그래서 그와 더 깊은 소통에 마침내 성공하는 저자의 변모를 지켜 보는 건 독자로서 또다른 재미입니다. 결국 환자는 의사한테 깊이 의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자에 더 밀도 높게 공감하는 건 결국 의사의 능력이고 성취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송국 일도 그녀는 처음에 오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겠다는 의도에서 지원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은 크게 다달랐던 거죠. 이제 그녀는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그 힘든 공부를 마치고 까탈스러운 환자들을 두루 겪고 자랑스러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픈 아버지를,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만납니다. 이런 운명을 맞기 위해 그녀는 그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요? 인생은 참 얄궂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제3로서 접하는 이런 스토리는 언제나 또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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