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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장총찬이 등장하는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의 작품입니다. 김홍신은 이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작품에 주로 담아 1980년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요즘도 고발성 르포 장르는 꾸준히 나오지만 도덕주의 뒤에 뭔가 선정성을 추구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읽으면서 불편해질 때가 많은데 이시절 작품은 어떤 가식이나 엄숙주의 같은 게 없고 대놓고 대중성을 표방하는 게 차라리 좋습니다.  

 

주인공은 교도소를 나온 후 예전부터 알던 사기꾼 선배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단체를 관리하는 역할입니다. 사이비 간증회를 열면 간통자, 강도 등등의 타락한 인간들이 교주의 지목 앞에서 회개 후 갱생하는 일차원적인 쇼를 벌이는데 작품에서는 보령 등 시골에서 물정 모르는 사람들을 속여 헌금을 사취한다는 설정입니다. 간통녀나 강도는 때로 교주한테 구타를 당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연기뿐 아니라 이처럼 몸으로 주먹, 발길질을 받아내기도 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유랑극단처럼 이런 연기자(?)들이 팀을 이뤄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주인공 같은 현장감독, 인솔자가 필요합니다. 

 

적은 보수를 받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들이 좋을 리가 없고 특히 한 노년 여인은 가뜩이나 병이 들어 있던 통에 간증회에 끌려 나와 무리한 쇼를 하다가 아예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회복이 어려운 걸 눈치 채고 교주는 주인공더러 승합차에 실어 산중에 슬쩍 버리고 오라고 지시하지만 사람인 이상 차마 이런 몹쓸 짓을 누가 시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는 지시를 어기고 병자를 병원에 싣고 가는데.... 

 

교주는 명령을 어긴 주인공에게 즉시 응징을 해야 옳았겠으나 폭력으로 주인공을 제압할 수는 없고 행여 말썽만 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이 사이비 종교 사업을 해산하고 팀원들에게 소액씩만을 정산해 준 후 연락을 끊으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모아(필요하다면) 다른 종류의 사기 비즈니스를 새로 기획, 실행하면 되니 말입니다. 주인공은 일단 명령 불복종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다른 팀원(애초 사기극 동원 말고는 쓸모가 없는)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다시는 부르지 않을 듯합니다. 

 

주인공이나 팀원들이나 의도적으로 범죄에 가담, 조력한 만큼 교주를 비난할 만한 도덕적 자격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동안 정이 깊이 든 팀원들을 이끌고 교주의 집을 한밤에 방문하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결심을 합니다. 교주가 그들에게 저지른 죄목은 무엇일까요? 주인공은 교주 앞에서 일종의 판결을 내립니다. 

 

"당신은 이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빈껍데기로 만들었어. 그래서 이들은 아무런 자긍심도 자립심도 없는 인간 쓰레기가 되어 버렸지. 이들에게 이런 무력감을 심어 주고 윤리의식을 도려낸 죄는 바로 당신에게 물어야 해."

 

과연 맞는 말입니다. 사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사이비 교주에게 직접 피해를 입은 이들은 시골에서 사이비 간증을 받고 금품을 뜯긴, 물정 모르는 이들일 뿐 저들 팀원이 누구의 죄를 물을 자격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으나, 주인공은 배운 것 없고 똑똑하지도 못한 하층민이지만 날카롭게도 교주의 숨겨진 죄를 밝혀낸 것입니다. 영화 <빠삐용>에서 꿈에 나타나 주인공에게 "인생을 낭비한 죄"를 따진 누구의 경우보다 훨씬 명판결입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쳐들어와 흉기로 위협하고 재산을 털어가는 행위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팀원들에게 귀금속, 현금 등을 마음껏 챙길 것을 지시한 다음 먼저 현장을 뜨라고 하고선, 교주와 타협을 봅니다. 이 강도죄는 내가 다 짊어질 테니 팀원들의 뒤는 쫓지 말라고. 

 

이 소설은 MBC 베스트셀러극장에서 역시 1980년대 중반에 극화한 적 있습니다. 김승호 씨의 아들인 김희라씨가 주인공 역이었는데 이 배우는 당시에 이런 협객 역을 즐겨 맡았었고 이 연기도 아주 잘 어울려서 관객의 공감을 폭발적으로 이끌어 냅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역에 양택조씨인데 제가 검색을 해 보니 이 역이 연기자로서 그가 자리를 잡는 데 어떤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이후 그가 보여 준 어떤 과장된 코믹 매너리즘 같은 게 전혀 안 보이고 딱 그 역에 알맞은 만큼의 유머와 표현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소설 원작도 좋았지만 단막극도 마치 찰리 채플린 작품을 보듯 페이소스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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