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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소셜리즘

[도서] 테크노소셜리즘

브렛 킹,리처드 페티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좋은 위기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p51)." 이 말은 2차 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위기"와 "기회"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전제를 깔며,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한 개인, 집단은 이후 새로운 번영과 평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함의도 갖습니다.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첫째 도피(flight), 둘째 투쟁(fight)이 있다고들 합니다. 책에서는 이런 예를 드는데,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려 들면 이는 분명 근로자의 위치를 위협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위협이 없다고 판명이 될 때까지 인공지능의 이용을 일절 금지한다, 이러기라도 하면, 인공지능 같은 좋은 기술이 사회에 쓰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이래도 위험, 저래도 위험이라는 딜레마에 빠지는 건데, 저자는 특히 현대에는 주류 미디어 외에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서, 특정한 위험이 과장되거나 방향성이 왜곡될 수 있다고 합니다. 

 

코비드 19 역시 미국 일각에서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이 일어나서 문제가 된 적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콜레라, 홍역, 소아마비의 경우에도 이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과거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게 없었고 기껏해야 일부 이해가 부족한 층의 입소문 정도가 있었을 뿐이라, 백신 접종 거부 움직임을 통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어떤 첨단 기술에 대해서라도, 초창기 이의 도입에 대한 거부 움직임은 항상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스트리밍 기술이 그것인데 냅스터, 비트토렌트(p74) 등도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엄청 큰 저항을 받았더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웹상에서 컨텐츠를 즐기는 가장 유력한 통로가 바로 스트리밍입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란 거부하고 싶어서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질병에 대한 새로운 백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여태 인류가 누려 보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편의와 즐거움을 창출할 것입니다. 또 이를 처음 개발한 소수의 개인이나 회사들도, 아마 20세기 제조업을 영위하던 어떤 대기업도 장악하지 못한 거대한 권력과 부를 손에 넣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불평등 지수의 심화로 이미 우리가 일부나마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수 기업이나 개인들이, 손에 넣은 그 부와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 없게끔 잘 다룰 성숙함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습니다. 

 

현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가장 으뜸가는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혹은 우리 나라도 급격히 상승한 물가를 잡으러 동분서주하고, 당장 경제주체들에게는 큰 희생이 따르는 금리 인상을 큰 폭으로 단행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MT라는 학파가 있어서, 적어도 기축 통화국의 경우 아무리 화폐를 많이 발행해도 경제 시스템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편익이 이를 흡수할 수 있기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각국이 눈앞에 다가온 물가상승에 고전하는 걸 보며 이런 입장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나아가 스태그플래이션은 여전히, 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상기시키는데 이에는 당시 석유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와 지금, 혹은 2008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블록체인이 있고 없고를 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산형 시스템의 출현으로 인해 금융은 큰 변모를 겪게 되고, 무엇보다 "기존의 시스템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 게 큰 성과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영향, "분권화와 같은 테크노소셜리즘(p159)"의 바람이 부는 날, 기존의 패러다임은 폐기된다고 저자는 내다봅니다.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합니다. 불확실성은 곧 두려움을 낳습니다. 이 두려움이 과연 우리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로 몰고갈까요. 아니면 "더 나은 미래라는 공통의 대의로 뭉치게(p190)" 할까요? 사실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도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벌써 저자가 이런 불확실성의 효과가 거꾸로 인류를 공통의 대의로 단합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 그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하리라고 어떤 확신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지난 트럼프 정부 하에서 미국은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 문제로 크게 대립했습니다. 저자는 이민과 이민자 자체가 경제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는 커다란 동력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미국 유수의 기업 CEO 자리에까지 오른 여러 엘리트들 중 얼마나 이민자 출신이 많은지도 열거합니다. 이들은 탁월한 재능과 그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키는 교육에 의해 그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으며 저자는 이와 관련 미래를 바꾸는 동력은 혁신된 교육 제도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로스터 시스템, 커뮤니티 멘토링 등이 이를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자본주의에는 많은 결함이 있고 저자는 대체로 자본주의 자체 논리로는 이런 잘못을 수정하기 힘들다고 보는 듯합니다. 중국의 미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파악하며 책 앞부분에는 "인류 역사 대부분은 중국 중심으로 작동했으며 앞으로 다시 그 흐름으로 복귀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어째 혁신이나 패러다임 교체의 기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주장 같이도 보이지만, 홍콩의 2019년 민주화 바람에 대해서는 또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기본소득 이슈 역시 저자는 매우 호의적으로 파악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시범 실시된 UBI에 대해서도 기분 좋게 소개합니다. 삶의 선택권 제공, 시민들의 자율적 참여 확대라는 바람직한 결과가 이 사업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일수록 투명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투명성이 오늘날만큼 가능해진 시대도 없었다." 플라톤은 이른바 철인정치를 주창했는데 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전제로부터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예시하며, 그러나 이런 "자비로운 전제국가"에 사는 시민들이 과연 행복하겠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중국인들이 현재 크게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부가 중산층의 삶과 경제적 부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랍니다. 20년 전만 해도 1억에 가까웠던 중국 극빈층이 2020년 기준 0에 가까워졌다는 통계도 이 책에서 제시되는데 평가는 글쎄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일대일로라고 해서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인프라 건설을 시도하며, AiiB라는 것도 이 명칭 안에 인프라라는 말이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웬만해선 해당 국가들에 대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신경제 식민주의"가 아니라, 세계 무역에의 지배이기 때문이라서입니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조금 이해가 힘들긴 합니다. 또 불과 며칠 전 스리랑카 국가 부도 사태, 정부 붕괴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역시 중국 측의 채권 회수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인공지능은, 이 테크노소셜리즘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 기반이 될 것이며, 이의 발전과 채용에 인류는 무조적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해서 인류의 비전은 종래의 GDP 지상주의 같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고 정성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인공지능은 장차 현대인의 삶을 떠받칠 스마트 시티 운용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며, 자동화된 정부는 큰 정부(의 큰 간섭)을 방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선택의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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