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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소비에트 변방 기행

[도서] 유럽과 소비에트 변방 기행

임영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유럽의 변방, 그리고 (구)소비에트의 변방인 세 나라에 대한 임영호 작가님의 기행문과 화보입니다. 

 

소련이란 이름을 가졌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초강대국에 대해 저자는 여러 단상을 머리말에서 풀어 놓습니다. 그 중 하나는 비토리오 데시카 연출, 소피아 로렌 주연 영화 <해바라기>입니다. 헨리 맨시니 작곡의 주제가로도 유명한 이 영화를 젊은 시절 보고, 막연히 공산국가에 대해 지녔던 부정적 이미지가 크게 동요했었음을 저자는 술회합니다. 이 책에 실린 조지아(옛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모두 구 소련 시절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입니다. 

 

1991년말 소련 붕괴 후 15개 구성 공화국들은 독립국가연합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느슨한 연맹체를 구성한 적 있는데 현재는 그마저도 유명무실합니다. 그리고 앞 두 나라, 즉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제 독립은커녕 국가 생존 차원의 위기를 느끼는 중입니다. 벨라루스는 질 나쁜 독재자에 의해 러시아의 속국이 되다시피했으니 역시 "독립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p28에 자세히 나오는 바대로 조지아는 원래 그루지야로 밖에서 불렸으나 러시아색을 탈피하고 유럽을 지향하고자 이름을 그리 바꿨습니다. 역시 책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그루지야나 조지아나 모두 그리스어의 게오르고스에서 유래했으며 이 단어는 "땅(geo), 농부"와 관련되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한국이라 일컫듯 저들은 자신의 땅을 사카르트벨로라 칭한다니 행여 그쪽분들 만나면 실례라도 하지 않게 잘 외워 둬야 하겠습니다. 한국에도 물론 조지아 대사관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트빌리시를 수도로 한 이 작은 나라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라든가 구 소련식의 후진적 시스템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런 근현대사의 여러 질곡도 마치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닮은 점들이 있습니다. 조지아는 유서 깊은 기독교권 국가이기도 한데, 한때 아케메네스朝 페르시아가 국세를 떨칠 때 조로아스터 교를 강요당한 적도 있었다 하니 놀랍습니다. 독재자 스탈린도 이곳 조지아 사람인데 그 가난한 모친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 사제로 만들 생각이었다는 사실도 매우 유명합니다. 스탈린의 으뜸가는 심복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 즉 KGB 수장도 조지아 사람이었지요. 마치 박정희가 일생을 두고 아꼈던 고향 후배 김재규처럼. 

 

책에는 페이지를 넘겨도 넘겨도 아름답고 신기한 모습을 한 수도원과 성당들의 사진이 가득합니다. 한국도 시골에 가면 곳곳에 불교 사원들이 즐비한 사정과 닮았습니다. 조지아가 기독교를 전면 수용한 시점과, 우리 겨레가 불교를 받아들인 무렵이 서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아름답고 신심 깊은 나라에서 어쩜 스탈린처럼 무서운 독재자가 출현해서 자국도 아니고 큰 러시아를 송두리째 접수했을까요. 저자는 현재 조지아인들이 가진 스탈린에 대한 태도는 매우 복합적이고 양가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우크라이나편은 챕터 둘로 나뉘어 집필되었는데 앞부분은 수도 키이우, 뒷부분은 오데사와 르비우를 다룹니다. 이 구분은 물론 전통적으로 동부와 서부가 문화적, 역사적,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크게 차이 나는 사정을 감안했겠으나, 전쟁이 터지고 난 지금 와서 보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서부의 키이우는 대체로 유럽을 지향해 왔고 2차 대전 당시 처음에는 나치의 진군을 환영하기까지 했으나(가슴아프지만 이 역시 사실이죠) 이후 본색을 드러낸 그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물론 직전 시기 스탈린으로부터도 끔찍하고 잔인한 수탈을 당한 역사가 있었죠. 

 

우크라이나는 물론 조지아에 비해 큰 나라이지만 어쩌면 국토 곳곳에 이렇게나 아름답고 토착적인 개성을 잘 표현한 수도원과 대성당들이 많은지, 그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이 호강을 합니다. 이런 멋진 고장이 현재는 러시아 침략군의 무차별 포격에 의해 어쩌면 상당수가 훼손될 위험에 놓였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며, 아름다운 고장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행여 마음과 몸을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책 서두에서 저자는 영화 <해바라기> 중에 나오는 소련 시가지의 발달된 모습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전철만 놓고 보면 사실 한국의 수도 서울보다 북한의 평양에 더 먼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구 공산권에서 선전의 목적이라든가 여러 이유로 신경 써서 건설했던 인프라이기도 하죠. p171을 보면 화려한 양식으로 지어진 키이우의 지하철 시설들에 대한 언급이 또 있는데, 키이우의 전철은 러시아 본토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이름은 레닌그라드)에 이어 세번째로 구 소련 내에서 이른 시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는 여러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겠습니다만.  

 

p238 이하에 특히 자세히 나오지만 우크라이나는 한국처럼 단일한 민족이 거주하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폴란드인, 심지어 러시아인들까지, 그 민족 구성이 참으로 복잡하며 거주 분포도 여러 역사적 단계를 거치며 강제 이주 등을 겪어 여간 사정이 꼬이고 꼬인 게 아닙니다. 얼마전 미국하원 의원 중 한 우크라이나계 공화당 의원이 젤렌스키를 비난하는 등 난감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 연원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곡절 많은 지나간 역사의 굴절에 기인합니다. 

 

벨라루스는 친 러시아 성향인 만큼 곳곳에 소비에트 기념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p291에 나오는 사진처럼 위대한 조국 전쟁 기념관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벌써 대조국전쟁이라는 말부터가 러시아식이며, 벨라루스가 지닌 역사관과 러시아의 그것이 서로 이처럼 닮을 수가 있나, 아니면 그렇게 여기길 강요라도 받나 싶어서 착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곳 역시 앞선 두 나라처럼 풍광이 아름다우며 고유의 역사와 사연을 잘 간직한 멋진 곳처럼 보였는데, 어떤 강압이나 압제에 의해 자기로 남기가 어려워지기라도 한다면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가까운 역사 구간에서 이웃에 의해 큰 아픔을 겪었기에, 이런 일들이 남의 사정이나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겨질 수 없겠으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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