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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도서] 여름방학

양이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책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라고도 하는데 이 시집은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역시 이 시집이 촘촘하게 짜여진 세상이라는 점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왜 "여름방학"일까도 생각해 봤는데 여름방학은 1학기, 2학기 사이에 놓인 독립된 시간이며, 그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흥분되는 시간이 하나의 꿈과도 비슷해서가 아닐까 독자로서 저 마음대로 결론내기도 해 봤네요.

p114에는 "이필녀의 죽음"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예전 분들은 애를 많이 낳았으며, 넉넉하지도 못한 살림에 폭력적인 남편의 등쌀 때문에 아주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 중의 이필녀씨는 말하자면 지난시절 다 비슷비슷한 삶을 산 여성분들을 가리키는 대명사 혹은 총칭 같은 분이겠습니다. 사실 이 작품 중에 "남편의 폭력"은 직접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스무 살 많다는 소개 안에 그런 암시가 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중 상당수)이 왜 엄마를 증오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나쁜 가정 환경이 그들에게 어떤 비논리적이고 잘못된 귀인 방식을 가르치지 않았나 추측이 가능합니다. 바로 앞 작품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와 함께 천재시인 이상(李箱)의 여러 대표작을 다분히 오마주한 것 같습니다.


p28의 "벽장"은 어느 법대생의 짧고 기이한 체험을 담습니다. 애인(이란 말부터가 벌써 아득한 예전 사람 같네요)이 경리라는 사실 때문에 주인공은 그 부모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하니 모르긴해도 화자는 상대여성과는 대조되는 넉넉한 형편에 위세등등한 집안 출신인 듯 보입니다. 그런데 여성의 부모가 부재한 틈을 타 방문한 그녀의 집은 비정상일 만큼 크다고 하는데다, 급작스러운 부모의 귀가로 인해 벽장 안에 몸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니 지금 누구 쪽에서 누굴 반대하는지에 대해 혼란이 생깁니다. 벽장 안에서는 또다시 카프카적인 비일관적이고 모순 가득한 세상 하나가 펼쳐지는데 화자는 속수무책으로 "모든 것이 되돌려져 있기를 (수동적으로) 기대"할 뿐입니다. 사실 되돌려져야 할 정상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판입니다. 나아가 어디가 벽장 안이고 어디가 밖이었는지도.

p57에는 "검은 책"이란 작품이 나옵니다. 요즘처럼 세상이 풍요롭고 재미난 게 많으면, 적당한 수준에서만 경제활동에 참여한 후 즐길 걸 즐겨도 참 행복한(꼭 바람직하다는 건 아닐지라도) 생을 살 수 있습니다. 반면 책을 읽는 시간은? 아마도 현실의 투쟁에서 패배했거나 뭔가 부적응의 시간을 지내야 할 때에나 펼치는 게 솔직히 보통이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 "검은 책"은 어린 소년에게 엉뚱하게도 더 지독한 악몽을 선사합니다. 책의 암울한 비전에 질린 소년은 거꾸로 현실을 향해 탈출하네요.

"왕의 길(p48)." 뭐 일본군국주의가 공연한 망동만 부리지 않았어도, 히틀러가 망상의 사이즈를 조금만 낮춰 잡았어도 조선국은 그대로 일제 식민지로 남았을지 모르며 우리는 제국주의자들 당초 계획대로 내지(!)에 동화되어 "일본어로 (말과 생각을 행하거나) 시를 쓰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일본어로 생각하고 말을 할 뿐 아니라 사고 자체도 철저히 노예화하여 마치 북한 인민들이 수령께 범사 감사하듯 덴노 만세무강을 외치는 중일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나마 개인으로 자각하여 비판이나 객관화의 넋두리라도 뇌까리는 것 자체가 "왕의 길"이요 왕의 특권을 누리는 것 아닐지.

너무 더운 여름엔 잠시 정신이 나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두가 함께 느슨해지거나 미쳐 날뛸 수 있는 계절은 즐겁고 그 자체가 방학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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