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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독

[도서] 도시탐독

이지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실제로 홍콩에 방문해 보신 적들 있을까요? 저는 작년에도 그곳을 다녀왔고, 반환 직후라고 할 수 있는 1998년에도 잠시 경유한 적이 있습니다. 두 시점 사이의 차이라면, 첵랍콕(赤角:적렵각) 공항이 아시아의 한 허브로서 란터우(爛頭:난두) 섬 북쪽 연안에 자리잡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묘하게도 홍콩이, 거대한 죽(竹)의 장막을 치고 통제와 감시의 심연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던 대륙으로의 흡입을 운명처럼 불길히 응시하던 그 시점에, 세계를 향하여, "아직 죽지 않으려 한다!'를 과시라도 하듯 외치며 자와 타를 동시에 위무하는 거대한 제스처와도 같이, 이 공항은 타방의 객(客)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냈습니다. 그 중에는 젊은 시절 가장 힘든 체험으로부터 도피, 달콤한 가상 현실을 지친 눈 앞에 꾸려 주던 영화의 배경과 소재, "주인공"으로 잔뜩 다가오던 이 탐독의 대상 "홍콩"을, 영화보다 먼저 실물로 접한 이지상 작가도 끼어 있었나 봅니다.


책을 자세히 읽어 보면, 작가는 이 홍콩을 "탐독"하기 이전부터 이미 홍콩을 다녀 오고 있었습니다. 세 번, 네 번의 방문(즉, 그제서야 비로소 "탐독"이 된 방문들)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 건, 사후적으로 영화가 그 계기가 되었구요. 많은 이들이 체험하듯, "영화가 먼저, 관광이 나중"이 아니었다는 말이죠. 저는 언제나, 무슨 탐독의 대상이건 최초의 만남은 아무 선입견 없이 순수한, 나안(裸眼)으로 접한 그 풍경이라야 인연의 수명이 길고, 그 순도가 좋게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홍콩처럼 표준화한 세속의 규격이 지배하고, 이에도 저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모호의 컬러가 지상과 공중, 연해를 감도는 땅이라면, 선지식을 안은 채의 조우는 식상한 코드로 머리 속에 타협적으로 정리되고 마는 게 보통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유교 전통 사회에서는 고아한 표현으로 "천붕"이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아마 그 가장 힘든 시기의 신진대사를 "무너지지 않은 다른 가상 현실의 하늘" 아래에서 수행하며, 그 장마와도 같은 시련의 비를 긋고 싶었나 봅니다.


남중국해의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사이공이 나옵니다. 비록 식민주의자들의 잔혹한 관리 아래에서이긴 하지만, 이 도시 역시 동과 서의 분기에서 대단한 영화를 맞았습니다. 도시는 본디 정복자들의 전리품이며, 그 쟁취와 피정복의 아픈 과정이 끝나면 시가와 장터는 어제를 잊은 분주함과 탐욕으로 야한 사치를 구가하는 게 정해진 경로입니다. 사이공이 북베트남의 수중에 최종적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전체주의의 규율을 거부하는 이들은 "보트 피플"의 신세가 되어 정든 제 고장을 떠나야했죠. 이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그 중에는 화교가 상당수를 이루었고, 응웬 지압 장군처럼 혁혁한 전쟁의 공을 세운 사람조차도 "중국계"라는 사실이 멍에가 되어 박제된 영웅으로 일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비록 광동인으로의 정체성이 더 우선이기는 하나, 엄연히 중국인임을 의식하고도 살아온 홍콩의 거주민들도, 1997년의 결정적 고비를 겪으면서, 화북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보트 피플"의 운명이 재현되는 것 아닌가 하는 패닉에 빠졌더랬죠. 상당수는 해외 이주를 감행했다가, 7,8 년 후 U턴을 하기도 했고요. 허나 그간 이 반도+섬의 연합체와 대륙 간의 역학 관계는 적지 않은 변천을 겪었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등려군이 부른)를 담은 "테이프"를 사면, 대륙에서 온 출신임이 들통날까봐 사지 못한 이들이 있었던 반면, 최근에는 오히려 이주 대륙 출신들이 야릇한 우월감을 느끼며 홍콩인들을 대하고, 처음의 막연한 불안감이 그저 기우가 아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서서히 체념과 무기력으로 접어드는 현지인들의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하는군요. 이 모든 변화는, 작가 이지상이 이 오랜 영화의 땅을 근 30년에 걸쳐 왕래하고 추이를 찬찬히 살필 수 있었던 덕에 가능했습니다. 그가 오래오래 더 살아서 과연 홍콩과 대륙의 관계가 어디까지 변하는지 지켜 보았으면 좋겠다(p226)고 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홍콩은 제국주의 침탈의 상흔으로 세워진 도시이지만, 처음부터 영국인들이 내 앞마당, 뒤뜰의 정원을 가꾸듯 정성을 들인 터전이라서, 그 모던한 번성의 역사는 아시아에서 으뜸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도시의 오랜 영화는 시민들의 행동과 품, 사고를 세련되게 만들고, 어느 나라의 도시민들이나 그 기품의 정련도를 갖고 우월을 따지려 듭니다. 성장(盛裝)한 여인이 그 도도한 눈빛과는 달리 하염없이 연약한 속살을 지녔을 뿐이듯, 도시인들은 좁은 공간과 높은 밀도 때문에 파르르 떨면서 살아갑니다(저자는 스스로의 이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두 차례에 걸쳐 되풀이하고 있네요. p61, p220). 타인과 조금만 스쳐도 "Excuse me."를 불러 주고 지나쳐야 최소한의 에티켓으로 아는 원주민들과, 그런 따위가 다 뭐냐는 듯 투박하고 무심한 대륙 출신들 사이의 거리감은, 어느 새 문화 충격으로까지 발전해서 이곳저곳에서 뜻하지 않은 마찰을 빚습니다. 대처와 덩샤오핑(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고인이 되었네요) 사이에 어렵사리 체결된 반환 협정이, 아직도 아슬아슬하게 효력을 유지하며 일국 양제라는 기이한 실험을 진행하는 중이지만, 벌써 청룽(성룡. 이 책에서 "이상하게 손만 크다"고 작가가 말한)은 몇 년 전에 "중국인(홍콩인 포함)들은 어차피 통제가 필요한 민족이다."며 대륙 당국에 아부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큰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습니다. 다만 대륙에서도 사안의 미묘함을 잘 이해하고 있고, 작가의 말처럼 선전 지구와의 대통합을 큰 비전으로 삼아, 이 이종교배의 건강한 DNA를 지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무럭무럭 크게 살필 요량인 건 현재로선 분명한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못미더워하는 구석이, 저 위에 적은 바와 같이 작가의 마음을 떠나지 않나 보죠.


환락과 익명성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홍콩에, 종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이미 페르시아와의 교역이 발달한 천 년 전부터, 배화교를 믿는 저 먼 파사의 상인들이 이곳에 와 일부 눌러 앉기도 했으니, 그 흔적은 지금도 Causeway Bay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조선의 최초 가톨릭 성직자 김대건이 장기간 체류한 곳은, 저 건너 포르투갈의 점령지 마카오였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마카오는 신성함, 경건함과는 극히 대조를 이루는 도박의 온상 같은 곳입니다. 알고 보면 잉여의 자체 파괴를 통한 생명력 재충전의 과정이라는 점에서,도박과 종교 의례는 몹시도 닮아 있죠. 저자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언급을 인용해서 이 점을 재미있게 적고 있습니다(p382).


장막 건너 늘씬한 여성의 하체가 보이지만, 그녀가 어느 인종인지, 얼굴 생김이 어떨지에 대한 관심 없이 그 단계에서 멈추는 게 자연스러운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홍콩에서의 삼라만상은 어차피 파편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라서 그렇다는군요(p51). 지도는 정교한 계측 과정을 거쳐 예술품처럼 완성도를 띠며 우리를 만나지만, 어느 새 몇몇 조각들만 세월의 풍화와 오해의 혼란 속에 거리에 나뒹굴게 됩니다(p148). 지도가 아니라 원본이 중요하지만, 어느 새 우리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지도뿐이고, 원본은 부패하여 그 원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입니다(장 보드리야르. 같은 페이지). 저자가 일생을 두고 여러 차례 애정 어린 발걸음을 둔 이 홍콩이라는 도시, 제한된 영역 안에 수천 겹으로 포개진 미스테리와 허영으로 이방인을 유혹하는 열락의 도가니는, 어느 새 현대 도시 일반의 속성에 대해 깊은 성찰과 끝없는 우수의 시간을 마련하는 특급의 세라피로 자리매김하는군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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