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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도서]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성제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빛나는 예술품, 특히 암흑 중세의 숨막힐 듯한 규율과 압제를 부정하고, 아름다운 나신과 정직한 욕망을 공개리에 표출하기 시작한 인문의 부활,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품들이란, 오늘날 그를 감상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순수 미학"의 경지를 일깨워 줍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아름다운 선과 색채, 모호한 추상과 얼버무림을 거부하고(이 시절의 추상이란 그저 종교적 억압의 도구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과감하고 직설적인 구상의 사실미를 내세우던 예술가들, 그 캔버스와 색채 조합의 산물에는 예술 외에 어떤 속셈과 계산도 개입하지 않은 듯, "아름다움, 그것이 우리 모두를,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의 모토로, 제왕과 교회 권력 모두를 화폭에 감싸 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찬란함과 아름다움, 조화의 성취 뒤에 숨겨진 배경이, 내력이, 상인들의 땀내 나는 구린 탐욕의 장부가 그 동인으로 도사리고 있었다면? 속된 말로 "좀 깨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르네상스의 초기와 전성기, 어떤 이유에서 이탈리아 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 국가 피렌체에서, 유독 그 회화와 조소의 정화가 꽃피었고, 가장 고귀한 유산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는, 생각만큼 그리 명쾌하게 해명이 되는 토픽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왜 피렌체였나?"의 의문에 대한 해명은, 유럽 학자들의 저술에서도 그리 분명히 정리되지 않았고, 포괄적이면서도 근거를 갖춘 저술이 등장하지 않은 형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왜 하필 피렌체였나?"라는, 다소 unconventional한, 그러나 대단히 효용성 높은 의문을, 이처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니었을 줄 압니다. 저자 성제환 박사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다소 뜻밖으로, 노동경제학으로 학위를 취득한 분입니다. 대체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미술사와, 경제학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이런 상식과 선입견에 찌든, 세련되지 못한 우문에 대해, 저자는 대단히 생산적이고, 정곡을 찌르며, "경제학적, 경제사적, 사회과학적 어프로치를 통해 미술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다."는 결론을 박력 있게, 설득력 있게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런 이종 분야 간의 학제적 결합을 통해. 어느 정도로 지식 체계가 그 질적 완성도와 자기 충족을 기할 수 있는지도 증명해 주는 좋은 저술이라 하겠습니다.


흔히 그런 표현을 씁니다. high politics, low politics. 정치학에도 "고위, 상부"의 사정을 다루는 학문이 있고, 하위, 실물(실무)의 영역을 커버하는 게 따로 있다는 건데, 후자는 다름 아닌 경제학입니다. 겉으로 어떤 아름다운 명분과 미사여구를 게시하고 있어도, 결국 정치의 기반을 형성하는 건 "돈"이라는 뜻입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인간은 그 무엇보다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이에 목숨을 거는 동물입니다. 인간이 생존과 공영을 추구하며 자기 나름으로는 형이상학의 사유와 활동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그 이면에서는 금전적 계산에 몰입하고 있다, 이 점은 다들 인정합니다. 그럼 예술 창조의 순간은 어떠할까요? 오늘날까지 전해 오는 그 모든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서, 우리는 고독한, 천재적인 예술혼이 신(神)과 나누는 대화 그 흔적을 접합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돈, 돈을 바탕으로 한 권력 다툼, 가문과 가문 간의 세력 투쟁, 세력 투쟁을 통한 정체(政體) 변혁의 몸짓, 그런 몸짓과 몸짓이 모이고 모여 이룬 혁명과 사회 구조 진화, 이 모든 것이 피렌체의 그 호화롭고 아리따운 유산 안에 남김 업이 녹아 있었으니, 눈 밝은 자는 알아 보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저자 성 박사의 결론입니다.


그림 안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지금껏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정형화된 형태로, 권위와 치장을 한껏 갖춘 채 독자와 청중 앞에 완비된 체제로 벌여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면을 볼 차례입니다. 그림 안에는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은 순수 이데아와 종교, 신앙, 순일한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시 한 꺼풀 벗겨 보겠습니다. 앗, 돈의 구린내가 풍기는군요. 한 꺼풀 더 벗겨 볼까요? 탐욕이라는 대죄가 채 벗다 만 허물을 안고 엉거주춤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원, 이처럼 양파 껍질 속절없이 넘어가듯 이리 풀리고 저리 허물어지고 만대서야, 무슨 고갱이가 우리 손에 남겨진 채 쥐어질까요? 허무합니다. 속은 느낌입니다. 이게 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끝이긴커녕, 이제 시작입니다. 서임권 귀속을 두고 중세 내내 피비린내 나게 벌어졌던 그 모든 투쟁처럼, 예술과 권력, 절대미의 황금 비례와 고리대의 이율표 사이에는 긴장과 야합의 두 극단을 놓고 어지러이 진자가 돕니다. 그러나 그 운동은 다람쥐 쳇바퀴 돌기가 아니었습니다. 변증법의 건강한 보람을 갖춘, 진화와 상승의 나선이었던 것입니다. "미술과 돈, 상인이 무슨 상관이래?" 이 책을 열어 보시면, 답까지는 아니라도, 그 답을 향한 기나긴 여정에의 시초와 단서가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이제 시작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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