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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도서] 지슬

김금숙 글,그림/오멸 원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리 한민족처럼 동일 공간에 천 년 이상 단일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고 유지하며 살아 온 예는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유럽처럼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적지 않은 역사적 사례를 이뤄 왔고(예: 유대인, 집시), 내부에서의 이동, 교잡도 활발히 이뤄진 공간과는 경우가 많이 다릅니다. 본디 기원과 풍습, 외관이 많이 다른 일족 간에 "생활 공간"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질 만한 조건이었다면, 정복민과 피정복자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생존 경쟁이 펼쳐진다거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사태는, 가령 수백 년 정도의 시간적 간극을 갖고 관망자적 자세로 지켜 본다면 냉연한 인과율의 적용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같은 피붙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를 세기 단위로 헤아려야 하는 단일민족의 경우라면, 그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학살"이란 비극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타이완에서의 2.28사태와 흔히 비교되곤 합니다만, 타이완 원주민(이른바 본성인)은 대륙의 지배층과 크게 정체성, 집단 정서와 역사감정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4.3은 완전히 별개 차원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보편적 휴머니티라는 측면에서 학살이라는 범죄에 경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예컨대 살인에도 존속살인, 혹은 비속 등 피보호자에 대한 위해가 가중 처벌을 받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4.3은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에 벌어진, 미국과 소련의 패권 다툼이 엉뚱하게도 한반도를 배경으로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저 돌발적이 아닌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만 역사적 비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대사건입니다. 가해의 한 축인 미국은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이 미진한 상태이지만, 굳이 타 민족을 탓할 것도 없이, 자국 정부와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어처구니 없는 대랻 학살에 대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 계기라고나 하겠습니다. 같은 겨레를 애매한 죄명을 뒤집어 씌우고 비참한 학살을, 가학적 쾌감으로 태연히 저지르는 이들의 마음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요?


몇 달 전 제가 읽은 <버둑할망 돔박수월>이란 책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만, 이 제주도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은, 그 기후가 빚어낸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올망졸망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지상 낙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의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사람이 보존하고 가꾸는 소중한 생태계로서 그 모성을 누대에 전합니다. 여기에, 외부인의 탐욕과 권력 의지가 개입하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오래 생계의 터전을 함께해 온 겨레를 배신하는 패륜과, 자연과 그의 순리를 어지럽히는 배덕이 결합하는 순간, 단테도 폴포트도 채 알지 못했던 지옥은 마침내 현실이 됩니다. 지옥을 현실로 만드는 초인적(?) 재주를 시전하는 순간, 죄악의 손길은 자신을 낳아 준 토양과 순리를 겁간하며 시간(時間)을 역류합니다. 인간은 애써 일군 문명을 모조리 부정한 채, 짐승보다 못한 타락과 야만으로 구천의 길을 자진 역행합니다. 정의는 생매장당하고, 도덕은 형틀에 높이 매달린 채 가뿐 숨을 몰아쉽니다.


흑백 영화 <지슬>은.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것처럼 단편 영화가 아닙니다. 상영 시간이 거진 두 시간에 육박하는, 누가 봐도 정통 극영화에 가까운 분량이자 완성도, 그리고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하는 작춤이었습니다. 흑백의 톤에서 펼쳐지는 대사와 장면장면들은, 순박한 대사와 캐릭터들의 성격이 잘 빚어내는 다소 코믹한 분위기였으며, 이런 희극적 아우라는, "점령군"의 폭력과 악마성이 도래하여 온 섬(계절상 순백의 배경입니다)을 생지옥, 피바다로 만들고 나서 순식간에 절대 비극의 성격으로 바뀝니다. 단일 민족의 오랜 내력을 한 순간에 부인하는 패륜의 아비규환이 펼쳐진 그 현장을 묘파함에 있어, 오멸 감독은 평온한 구도와 롱테이크 촬영, 그리고 막간을 지배하는 긴 침묵의 미를 최대한으로 살립니다. 영화는 그 주제 의식을 잠시 한켠에 모셔 두고라도, 이런 미적 성취만으로도 격찬을 받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쾌거입니다(로버트 레드포드의 창설 사실로도 유명하죠). 이제 4.3은 영화 <지슬>을 통해, 세계사적 사건, 영화사적 모멘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화 <지슬>을 보면서 저는, 거대 사찰 경내를 빙 둘러치고도 남을 기다란 병풍에 그린 수묵화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김금숙 화백님의 솜씨로 이번에 영화의 그래픽 노블 버전이 독자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그래픽 노블이 먼저고 이의 성공을 바탕으로 영화화가 이뤄집니다만, 이번 경우는 그 정반대라고 하겠습니다. 띠지의 소개는 "한 폭의 수묵화"로 펼쳐지는" 민족사적 비극 4.3의 재현입니다만, 영화의 성취와 아름다움을 손상하지 않고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양, 품격과 절제미 가득한 컷 하나하나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냅니다. 영화에서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은 큰 박스에, 레귤러 시퀀스는 보통 박스로 처리한 센스도 돋보이고, 무엇보다 "한국형 그래픽 노블"의 한 모범 사례를 이룰 것 같은 독창적이고 안정감 있는 그림들이 일품이었습니다. 4,3이 남기고 간 그 쓰라린 상처를 소재로, 위대한 예술혼은 역사 자체보다 위대한 치유력과 포용력을 발휘하여,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이처럼 아름다운 이정표 둘을 빚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게르니카 둘을 소유한 셈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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