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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도서] 부자의 길, 이성계와 이방원

이덕일 저/권태균 사진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역성 혁명이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천명을 득(得)하여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보살핀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왕조를 전복하고 새 체제를 세웠건만, 정복 세력이 아닌 이상 창업자 역시 종전의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하의 신분이었다는 사실은 불변인 것입니다. 자신도 제 나라님을 내쫓은 주제에, 아랫것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대륙에서 5대 10국이 하나같이 단명하고 스러진 건, 새 왕조의 개창 작업이라는 게 그만큼이나 애로 가득한, 지난(至難)의 정치적 행보임을 후세 사람들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이번엔 조선 창업자들의 행보에 주목하여 역작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기획의 의도는 두 가지입니다.


1) 이 소장 자신이 뚜렷한 행보로 종래 다뤄 왔던 주제는 대체로 조선 후기, 중기라는 배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정변과 의혹, 대립은 제아무리 변이, 편차가 있다 해도, 다 "조선"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 이벤트들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벌어진 역사를 알자면, 대체 조선이 무엇을 뒤엎고 무엇을 내세우며 무엇에 의해 세워진 나라인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 그가 짚어야 할 지점, 프레임의 시초적 기반에, 이번 저작을 통해 드디어 착륙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를 오래 지켜 보았던 독자의 입장에선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 아무래도 요즘 대중의 관심은, 경세적 혁신가였던 정도전에 쏠려 있습니다. TV 드라마조차 이 난해한 심리와 개성을 지닌,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에 대해, 그 드라마타이징이 쉽지 않을 텐데도 애써 거액을 들여 이를 론칭했습니다. 그를 다룬 책은, 웬만큼 이름이 있는 작가라면 한번은 터치하고 지나치는 느낌이 다 듭니다. 일개 유생, 초보 관료에 불과했던 그를 처음 중히 써 준 이가 이성계였고, 한번 깔아 준 멍석에서 놀라운 수완으로 신생국의 물적 제도적 기초를 거진 혼자 힘으로 다 닦은 그를 정치적, 물리적으로 처단해 낸 이는 이성계의 아들 방원이었습니다. 이덕일 씨는 현재의 트렌드에 몸을 싣되, 외곽으로부터의 접근, 혹은 종래 그가 즐겨 써 온 방법론대로 "당대 재위 군주로부터의 시선"을 중심 축에 놓는 길을 택한 것 같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에상과는 달리 정도전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는 점, 저자 자신이 제목이나 서두에 내세운 취지대로 철저히 "두 부자의 종적과 개성, 대립과 업적"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태도에는 찬성합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왕정 국가이며, 비록 "천하는 공물(公物)"이라는 명제가 유교 도그마의 일부라고는 하나, 이에 공화정적 의의까지 부여하는 건 역사를 정치학으로 왜곡하는 처사입니다. 이씨가 세운 나라이니, 그 창업자(방원은 사실상 공동 창업자였습니다)들의 행적에 보다 큰 비중을 둔 건 당연한 처사입니다.


전체 4부의 구성이지만 크게 둘로 갈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고려 멸망사이고, 다른 하나는 본격 조선 건국사입니다. 반도에 오랜 동안 확고한 정통성을 갖고 지탱해 온 왕조를 대체하는 작업이었기에, 예컨대 대륙의 송 제국(조송), 한 제국, 수-당 제국 등과는 경우가 상당히 다릅니다(대륙의 경우 황조 교체 사이에 거의 언제나 분열기의 혼란이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건국은, 어떻게 고려의 간판을 (왕실과 기득권, 그리고 일반 백성의 )반발을 최소화하며 내렸느냐 하는 그 과정, 그리고 영민한 군주의 통치가 전혀 없지 않았던 직전 왕조에서, 어떻게 역성 혁명의 빌미를 주기 시작했냐는 분석적 작업을 반드시 동반해서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덕일 씨는 이러한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종래의 책들과는 달리 대체로 주류 견해에서 크게는 벗어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공민왕의 치적이라든가, 전문가든 일반 대중이든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시해 경위에 대해서도,크게 튀는 신설(新說)은 제기함 없이, 독자의 평탄한 이해를 최우선으로 배려한 듯 재미있는 내러티브로 일관하는 서술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그가 만약 창업 왕조의 시조라는 길을 걷지 않고 신하의 몸으로 일생을 마쳤다면, 우리가 충무공을 기억하는 만큼이나 혁혁한 무공, 그리고 초인적인 무장의 능력으로 온 겨레의 뇌리에 남았을 대단한 민족적 영웅입니다. 이덕일 씨는 독자가 그저 "역성 혁명의 장본인" 정도로 그를 인식하지 않게 하려는 듯, 여러 대목에서 적절한 배려를 공정하게 베풉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주류 사학계의 그것과 거의 조화를 이루는 성격이며, 따라서 그만의 특징적 주장은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집니다.


이방원에 대해서는 냉혹하고 과단성 있었으며 심지어 보수 반동의 색채마저 띤 인물로 평가받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저자는 대체로, 인간적 측면에서 방원의 고뇌와 결단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관점에서, 조선이 초기의 행정적, 민심상의 곤란과 이반을 극복하고 안착할 수 있었느냐의 갈림길이, 방원이 후계자 선택에서 보인 그 현명함에 기인하는 바 있다고 판단한 듯도 보입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어긋난 처지로서, 이제는 자신의 자식 중 한 명과도 결국 관계의 파탄을 겪고 만 것은 인간적으로 대단한 비극입니다. 그 비극이 개인의 차원에 머물고 만 것이, 신생 국가 조선이 대단한 효율로초창기 순항을 이뤄 낸 비결이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난 결론은 이에 가까웠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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