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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도서] 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펠리시티 애스턴 저/하윤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야마오카 소하치의 <德川家康>을 보면, 서양인들의 모험 정신에 대해 막부 쪽에서 짧은 평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만인이다 홍모인이다 하며 폄하를 하던 끝에)...그러나,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배를 몰고 오는 모습을 보면 그 감투 정신은 실로 대단하니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자신들이야말로 좁은 섬에 갇힌 중에서도 인접국의 선진 문물을 지극히 제한적 범위에서만 수용하던 섬나라 근성으로 가득찬 주제에 자기 중심 시각에서 뭘 평가를 하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지만, 역시 인간의 통성이란 게 있는지라 누구 눈에도 분명한 팩트는 무시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지 어언 반 세기가 가까워 옵니다. 하지만 저간의 천문학, 이론물리학의 발달은 차치하고, 순전히 "탐사"의 관점에서라면 그 긴 세월 동안 큰 진보가 이뤄진 바 별로 없습니다. "화성에서 물의 흔적이 나왔다."는 이십여 년 전의 보고가 고작이죠. 인간 문명의 모든 면이 시간 가로축의 좌표에 따라 직선상의 비례 그래프를 그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눈을 돌려 지구를 향해도, 극지, 아뇌쿠메네로 실물의 개체가  몸소 그 발, 손, 시선을 내딛고 두는 건, 필멸의 육체를 한 인류로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과학 기술의 발달도, 이제는 어느 한 천재의 힘만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작업이 되었고, 그가 속한 문명이나 문화권의 배경상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경제적, 군사적, 산업적 동기가  명예욕을 자극하던 한두 세기 전과는 달리, 지금은 한 개인으로서 오지를 탐험할 인센티브는 딱히 크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적 사업의 필요라면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스쿼드, 태스크 포스"가 해결하면 됩니다. 개인이 순전히 특별한 동기에서 일을 벌인다고 해도, 최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 개인(그것도 여성)이, 원칙적으로 19세기적수단에만 의존한 채 일을 벌인다면, 주위에서 미친 사람 소리나 듣기 딱 좋을 것입니다. 


펠리시티 애스턴은 혼자 남극을 횡단한 역대 세번째의 인물이고, 여성으로서는 처음, 그리고 스키 외에 다른 장비에 의존하지 않은 점으로도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아문센 이래 남극 대륙을 밟은 이들은 많지만, 애스턴은 극히 기초적인 장비만 가지고 혼자 힘으로, 모든 면에서 인간이 버틸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돌파했다는 점이 중요하죠. 또, 이게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성차별적 발상이므로), 펠리시티 애스턴은 여성의 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근육량이라든가 심폐 능력 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남/녀의 준별 기준을 떠나, 너무도 놀랍고 경이로운 체험의 진술에 그저 숙연한 마음만 들 뿐이었습니다.


남극이라고 하면 그저 "극한의 추위"만 떠올리는 게 보톹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상세히 나와 있듯, 남극은 일단 고도부터가 높은 곳입니다. 그렇게 낮은 기온이니, 얼음 덩이인들 두텁게 얼지 않았겠습니까. 과거 티벳 고지에 정착한 이들은 대단히 사나운 전투 종족이었는데, 그런 고지에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군다는 자체가 보통 각오와 체력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이 남극은 평균 고도가 티벳의 그것에 맞먹습니다. 높은 지대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곳이 극한의 추위까지 겸하고 있다면, 그게 한시라도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겠습니까.


혼자 힘이기 때문에 각종 장비와 식량을 챙겨 가도 어차피 운반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루에 켤 수 있는 성냥은 세 개가 고작이었는데, 이마저도 도무지 불이 붙지 않더라는 거죠. 애스턴 씨는 물론 숙련된 전문가였으므로 이 프로젝트 이전에도 다양한 험지(險地)를 겪은 분입니다만, 이런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크게 당황할 만했습니다. "GPS를 크게 믿을 수는 없었으나, 지도 등을 참조하니 대략 그 정도의 고도이지 싶었다..." 읽으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 애처롭기도 했습니다. 대체 뭐하러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그러나 이런 질문은 저처럼 범속한 사람이나 떠올리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진술을 읽을 때에는, 부디 삼가고 조신한 태도를 유지해야겠죠.


책의 추천사를 쓴 조애나 럼리

(출처:http://en.wikipedia.org/wiki/Joanna_Lumley)


추천사에서 조애나 럼리(영국의 배우이자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녀의 업적이 너무도 뛰어나지만, 그의 필체가 너무도 겸손한 탓에 독자는 그 위대성의 평가에 대해 자칫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을 해 내려면, 단지 체력이 엄청나다든가, 지식과 장비 활용력이 대단하다든가 하는 장점 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능력도 필수적으로 요구되겠습니다만, 정작 그녀가 다른 이를 압도하는 부분은 바로 정신력입니다. 그는 책 곳곳에서, "....우리의 생각이란, 그 토대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 ".. 생각이란 그저 화학 작용, 생리 작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든 상념과 그것이 구축한 세계란, 극한의 상황에 부딪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몰트케는 "전투 한 번을 겪고 나면, 배겨나는 작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탁상공론, 개념 속의 작용만으로는 안 되는 게 없지만, 현실, 그것도 극한의 현실을 치르고 나면 속된 말로 "멘붕'이 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극한의 체험을 하고 나면(탐사의 성공이란 아예 논외로 하고),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거나 치명적 타격을 입기 전에,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지경에 빠지기 쉽습니다(대형 사고를 겪고 나서 괜히 광인이 나오는 게 아니죠). 하지만, 애스턴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루고 나서, 이토록 침착하게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 줍니다. 어조가 하도 담담해서, 우리는 마치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듣는 것만 같습니다. 목숨이 백 번도 넘게 저 피안을 다녀 온 사람(그것도 여성)이, 그 풀어 놓는 언어와 품이란 명상수련가의 그것이니 말입니다.


러디야드 키플링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He travels fastest when he travels alone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가장 빨리 여행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어쩌면 "혼자 된다는 것"의 생산성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지에 돌입하기란 우리의 체력, 시간, 정신력이 쉬이 용납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절실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어 보아야, 숱한 아집과 착각, 미신, 비논리를 바라볼 수 있고, 내가 집착하던 그 모든 가치관과 감정상의 선호, 그 헛됨에 눈이 떠지는 지도 모릅니다. 역으로 말하면, 오지나 수양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를 향하고 있으면 근원의 진리가 깨쳐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p109에서 Ganzfeld를 "겐지스필드"라고 옮기고 있지만, 그런 발음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어 원어든 영어식이든 그저 "갠즈(츠)펠드"일 뿐입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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