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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살아있다

[도서] 헌법은 살아있다

이석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전 법제처장 이석연 변호사님(전북 정읍 태생. 전북대 졸)의 저서입니다. 몇 년 전 어느 정치인이 대한민국 헌법1조를 거론하며 꺼낸 한 마디가 화제에 오른 이후, 대통령 탄핵이라든가 조기선거 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부터는, 그저 당연히 거기 머무는 근엄한 문서겠거니 정도로 여기던 헌법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늦은 느낌이 크지만 국민주권, 참여하는 시민 의식 함양 등을 위해 다행스럽다고 하겠습니다.

헌법은 본디 추상규범, 최상위 규범, 원칙 규범이기 때문에, 숫자나 기간, 정년, 명칭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용어가 여러 의미를 띨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 개인이 법전을 들여다 보며 편할 대로 새기고선 "이게 옳다!"란 주장을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사인(私人)뿐 아니라, 법과대학에서 평생토록 헌법 조문만 파고 든 학자라고 해도, 비록 법조 실무에서 그의 견해가 사실상 주의깊게 경청되는 형편이라 해도, 그 자체로 실정법 같은 권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그가 길러낸 제자들이 사법관료, 법관 등의 자리에 올라 스승의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을 시킬 수는 있다 해도). 이른바 "학리 해석"과 "유권 해석"이 구별되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이죠.

국민들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은,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을 지닌 법원, 헌재 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조선 후기 현종 연간에 벌어진 예송 논쟁에서, 두 차례 모두 쟁론의 승패를 결정한 건 최종적으로는 조정이었고, 사실상 한 당색의 손을 들어 준 결과라고는 하나 공식적으로는 일파의 당론을 따른 게 아니라 "국조오례의" 등 전례를 따랐을 뿐이라고 극구 강조한 고사나 비슷합니다.

여튼 이런 이유 때문에, 아무리 권위 있는 전문가의 견해라고 해도 개인의 해석이 헌법 문언의 뜻과 효과를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 우리 범속한 세인의 생각이 그런 원칙적이고 까다로운 경계에 머물겠습니까? 이번 판결은 어느어느 법관의 개인적인 생각에 좌우되었다느니 하며 경망한 입방아를 찧어 대게 마련이죠. 어쩌면 이런 경솔한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저자분 같은 권위 있는 법조인이 "그 격변의 와중에서 막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개인이 당시 무슨 소신과 신념으로 사태에 임했는지"를 진솔히 회고하는 내용을 들어 보는 건, 건전한 시민 의식의 고양을 위해서나 지적 호기심의 충족. 혹은 유효한 역사의 재구성에 사료로 취합하기 위해서나 여러 모로 유익합니다.

건국절 논란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조목조목 제기하십니다. 일단 (본문은 아니라고 해도) 헌법 전문에 "3. 1운동으로 성립된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이란 언급이 있기 때문에, 임정이든 3. 1운동이든 실정법적 의의를 전적으로 배제하기란 어느 입장에서도 어렵습니다. 저자는 1948년설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이를 헌법 정신에 반한다고까지 단정하시고는 그 대안으로 1919년 3월 1일을 제안합니다. 국가의 3요소 중 주권의 부재 상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실효적 주권이 미치지는 못 해도 "휴전선 이북의 북한 점령 지역"에까지 대한민국의 법적 권위를 인정함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논거입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민족의 기원을 문자 그대로 BC 2333으로 인정하자는 부분인데, 터키 공화국이 서기 552년에 유연을 격파하고 독립한 <자치통감>의 기사를 근거로 하는 예가 있듯, 사대주의의 폐습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이런 주장이 고위 공직자, 유권 해석 공표의 한 주체였던 분의 견해라는 이유에서 특히 눈길을 끕니다. 저자께서도 책 속에서 이를 한 시안(試案)이나 사견으로 제시하기보다, 어떤 입법적 권위가 부여된 국가적 컨센서스로 삼자는 취지에 가깝습니다.

어느 유력 대통령 후보가 최근에 즐겨 주장하듯, "촛불집회는 대표적인 저항권 행사"라는 점을 들며, 개헌 논의가 일기 시작한 지금 아예 "저항권"을 실정헌법 조문으로 명시하자는 말도 있습니다. 저자께서 지적하시듯 헌재 판결례 역시 한 결정문에서 저항권의 개념 정의까지 적시한 적도 있기에, 우리 헌정 질서가 이를 아예 백안시해 왔다고 보기는 무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학계와 실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역시 명문으로 이걸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행사요건은 엄청 까다로우며, 이른바 "혁명권"과 저항권을 엄격히 구분하는 게 또한 현실이죠. 현재는 꽤 왜곡되어 인식되는 형편이긴 해도, 미국 역시 소위 "총기 소지의 권리"를 헌법 제정 당시에는 저항권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권리장전에 편입한 것입니다. 여튼 법제처장직이라는 고위 공무원 출신인 저자께서 저항권을 명문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을 하신 건 신선한 느낌입니다.

현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탄핵 사유의 당부는 사법당국의 확인 정도로 충분하다는 쪽입니다(즉, 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 또한 탄핵 심판은 경우에 따라 상황의 긴급성과 함께 전개되기 일쑤이므로, 훈시 규정의 명문에 구애받을 것 없이(훈시 규정은 법적 효력이 약하지만, 무엇을 강행법규로 보고 무엇을 훈시 규정으로 볼지는 물론 사람마다 해석이 갈립니다) 신속한 심리, 판결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헌법에 대해서는 시국이 엄중하던 때 밀실에서 머리를 맞대어 협의를 마친 졸속성이 적잖게 노출되며, 특히 5년 단임제는 국정 불안, 책임 정치 실현 실패 등 문제가 많은 제도라고 지적합니다. "개헌은 국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인데, 국민발안 국민소환을 제도화하자,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대한 국민 심사제를 도입하자, 국어, 국기, 국가(anthem), 수도에 대해 명정하자, 정당과 국회의원의 특권을 폐지하자 등이 골자로서 이번 개헌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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