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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가 경험한 기업사회공헌

[도서] 컨설턴트가 경험한 기업사회공헌

서동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대략 4년 전쯤에 필립 코틀러의 신작을 읽고서 "기업의 사회 공헌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결론을 얻고, 그 내용을 반영한 서평을 쓴 적 있습니다. CSR은 코틀러가 처음 창안한 개념도 아니고, 이의 논의가 학계 주류에서 중심 위상으로 부상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여전히 그 실천적 의의라든가, 담론의 설득력을 현실 속에서 찾기란 무척 어려운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옥시 사태, 정확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그처럼 대규모의 글로벌 기업이 무지, 무책임, 무도덕, 무법의 경영 행태를 보였다는 자체가 믿어지질 않았죠(거의 1년 3개월이 지났네요).

특정 기업의 제품이 아이들 목숨과 건강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부터가 처음에는 보도도 잘 안 되고 쉬쉬하는 분위기더니, 발생 후 근 5년이 지나서야 수면 위로 떠오르고 급기야는 마지못한 듯 경영인이 나와 형식적인 사과를 하는 데까지 간신히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동네 마트 사장님 수준의 하자담보책임까지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가려 들었으니, 더 작은 규모의 영세 기업들의 윤리 수준(moral fiber)야 뭘 새삼 거론하는 게 망설여집니다. 공동체와 더불어 공영 공존 행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지속 가능 발전"의 모토는 그저 딴세상 이야기였고, 아직도 우리는 제조물의 하자로부터 스스로의 안녕과 건강을 직접 챙겨야 하는 원시 야만의 단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습니다. 19세기 영국도 아니고 말입니다.

요즘은 만인 생산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꼭 거창하게 후츠파 식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라도, 워낙에 기업 취직 자체가 힘들고 일단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에서 몇 년 채 배겨내질 못하니, 누구나 생산자(제품이든 서비스든)가 되어야만 일생에 걸친 소비-저축-자녀교육 플랜을 감당할 수 있는 지경입니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구축해서 나만이 사회와 소비 대중에 공급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 장착해야, 생산력이 떨어지는 노년까지 안락하게 대비할 수 있을지 다들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것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익이 있다." 지금 각자의 먹거리, 필살기를 준비하자는 계제에 갑자기 웬 공익 봉사 활동이 화제로 등장하는가. 다른 목적이 아닙니다. 이제 소비 대중은 그저 싼 가격, 널리 알려진 위신, 허세 등을 지표로 삼아 소비하지 않고,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가자는 "사회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는,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경영 행태, 선량한 기업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쌓아나가는 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움직임 뿐 아니라, 내가 싫어하고 사회에서 도태되길 바라는 악덕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비토(veto)하는 네거티브 측면까지 다 포함됩니다.

예전에 정용진씨가 이런 비슷한 움직임을 두고 "그거 이념적 소비 아니냐?" 같은 말을 했다가 매서운 질타를 들었는데, 기업은 룰 세터가 아니라 룰 테이커일 뿐입니다. 아무리 큰 재벌 기업이라 해도 대중에 맞설 수는 없죠(뭐, 맞설 수도 있을 텐데, 한국의 현실에선 매우 힘들겠네요). 이념적 소비가 대세 중 일부라면, 어쩌겠습니까? 그것도 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후 그에 알맞는 전략을 짜야죠.

다시 본지로 돌아가서, 공익이나 봉사라는 게 기업의 본연 활동, 나아가 이익 추구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에서 저자의 논의는 출발합니다. 만약 어떤 기업의 수익 구조가 "약탈적"으로 짜여져 있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더 이상은 못 버텨낸다는 겁니다. 예전에 제가 들은 얘기인데 어느 재벌(당시에는 재벌이래봐야 국가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지금으로 치면 작은 공장 오너 정도의 규모였겠죠)가의 어린 자녀가 자기 집안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과자를 사 달라고 하자, 그 부모 되는 이가, "그건 파는 거라서 안돼!"라고 했다는 게 있습니다. ㅎㅎ 지금 이런 에피소드가 유포된다면 사람들이 치를 떨어할 만한 쇼킹 이슈인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특히 먹을거리를 놓고 벌어지는 말썽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이 대중의 공분이 일어나기 마련이죠. 예전 우지라면 사건, 쓰레기 만두 사건, 그리고 어제 터진 살충제 계란 사건까지 해서 말입니다. (마지막 것은 특정 기업, 2차 산업 섹터가 아닌, 극히 일부 비양심 농가나 1차 생산 부문에서 저지른 실수로 보입니다만,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 농가가 대거 생기고, 소비자들도 불편을 겪게 된 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기업은 그저 물건만 잘 만들고 서비스만 확실히 해 주면 된다는 생각은, 물론 아직도 장인정신 직업윤리의식이 매우 일천한 우리 풍토에서 아직 효능이 다한 아이디어는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완벽에 가까운 기능과 정성 어린 서비스는 그 자체로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가 맞습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전(全) 산업 분야가 레드 오션화(化)하는 풍조에선, 기업이 그저 제 할 일만 얌체같이 끝내고 밥그릇만 싹 챙겨 발을 빼는 태도로는 더 이상 지역 공동체와 소비자 대중에게 환영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저자의 주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당신만이 기여할 수 있는 봉사와 공익이 분명히 있다." 이 기업은 그저 물건만 팔아먹고 끝이 아니라, 마치 옛 농촌에서 다들 이웃처럼 지내며 품앗이로 경제 이익을 공유하듯, 우리 곁에 머물면서 없어서는 안 될 정(情)을 나눌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는 걸, 기업은 그의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허위와 과장에 가득찬 브랜드 이미지 광고, 실질적 효용이 아닌 허상만을 부풀려 사회적 자원과 재화가 비생산적 섹터로 낭비되게 하는 마이너스 잉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건강성을 담보하게 체질 개선도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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