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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rder Book

[직수입양서] The Murder Book

Jonathan Kellerman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지난번에 리뷰한, 열다섯번째 권에서 알렉스 델라웨어는 오랜 연인 로빈 카스타냐와의 관계에 큰 위험을 겪었다는 말을, 독후감 중에 남겼더랬습니다. 사건의 해결도 해결이지만,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겪곤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 또 그의 해결 속에서 우리는 남다른 공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일류 문학이나 픽션은, 이처럼 본체적 소재는 그것대로 쫄깃하게 다루면서도, 그 주변에 곁가지처럼 번지는 다른 소소한 에피소드 등을 통해, 인간사 보편의 문제에 대한 어떤 해법을 언뜻 제시하기도 하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스테리 본체가 재미있고 참신해도, "여담과 에피소드"가 빈약한 작품은 왠지 삼류 같습니다. 미드 NCIS가 까닭 모를 고품격 아우라를 푸이는 것도, 캐릭터들이 다 제마다의 사연과 개성을 간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우습거나 비극적이거나 난감한 사연들이 잔잔한 포맷으로 끊임 없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로빈 카스타냐는 평소 해 보고 싶던 멋진 체험을 드디어 행동으로 옮길 마음을 먹습니다. 친구 뮤지션들과 함께 투어 콘서트(뭐 사람들이 알아보건 말건, 얼마나 많은 관중들이 호응을 하건 말건 말이죠. 그녀답습니다)를 벌이기로 한 겁니다. 비록 직전 사건이 잘 해결되긴 했으나, 어차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안도감" 말고는 로빈이 특별히 감흥을 느낄 이유는 없고, 남친에 대한 불만과 짜증 때문에 그 반대의 감정이 일어났으면 났을 뿐입니다. 아직 그녀는 화가 많이 나 있고, 델라웨어 박사의 그 능숙한 말솜씨(뿐이겠습니까? 그는 직업이 심리학자인데요!)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녀 역시 알렉스(이제는 중년의 초입을 훌쩍 넘긴 지긋한 나이죠)의 심리라면 겪을 대로 겪어 봐서, 웬만큼 결연한 의지가 안 보이면 예전처럼 눈감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마음이 굳을 대로 굳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은 "그녀가 여태 많이 참았다"고 평가할 겁니다.

직전 권 <Blood ...>에서 알렉스 델라웨어 박사와 갈등을 겪은 이가 하나 더 있죠. 로빈 다음으로 가까운 게이 형사 마일로 스터지스입니다.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만류했건만 자기 일을 빼앗아 가다시피하며 범죄 해결에 집착하는 알렉스를 보면, 본인이야말로 어느 세라피스트한테 가서 진찰을 좀 받아 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태 알렉스 디의 과거에서 뭔가 지저분한 "유령"이 뛰쳐나와 발목을 잡는 건 자주 봐 왔습니다만(셜록 홈즈도 콜드 케이스가 따로 여러 있었듯, 영웅의 성공담만 골라서 보면 평가가 공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닥터 디가 좌절하고 때론 자괴감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습니다만, 마일로 스터지스의 지난 행적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이 작품은 그래서, 직전 권에 앞뒤가 잘 이어지는 후일담 구실도 하고, 여태 팬들이 궁금히 여겨 온 스터지스의 사연이나 배경도 넉넉히 터치하는 내용입니다. 팬들에겐 각별히 멋진 선물이 된 installment라고 부를 만합니다.

마일로 스터지스는 역시 알렉스와 같은 또래이니만치, 벌써 동료들이나 사회에서 중견 대접을 받을 만한 나이지만, 친구 알렉스처럼(괜히 친구가 아니죠) 팔팔하고 쌩쌩하며 때묻지 않은 열정, 정의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사건 다뤄 봐야 자기 커리어나 승진 전망에 전혀 이로울 것 없을 줄 알면서도, 무모하게 실력자들이나 거물들과 충돌을 빚어가며 진상을 파헤칩니다. 이 사람이 이 정도 나이에도 마치 신참처럼 과격한 정열을 뿜어낼 줄 안다는 게 중요하죠.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 (지금도 심지어 이런) 그가 열정은 열정대로 간직했을망정, 아직 사건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허술하고 사람 대하는 방법도 몰랐을 때, 서투르게 건드렸다 매모지를 못 하고 영원히(지금까지는요) 콜드 케이스로 남겨 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여성의 죽음에 관한 사건이었죠. 억울하게, 잔혹하게 죽은 여성의 한을 풀어주지도 못하고, 의기는 의기대로 꺾인, 이십 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의 영혼에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경험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어느 분"의 압력, 당시 신출내기 형사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지금도 아주 거물은 못 되었습니다만)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던 어떤 사악한 고위급 인사의 강압 때문에, 악마와도 같은 범죄자의 민낯을 못 드러내고 묻어야만 했던 그 일이 몹시나 마음에 걸렸죠.

우리는 자신의 가장 멋지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사진들에 담아 한 권의 앨범으로 엮습니다. 소중한 지인 등이 찾아오면 먼저 앨범부터 보여 주곤 하죠. 예쁜 사진이 가득 들었을 것 같은 화려한 앨범이, 지금 로드 투어를 떠난 여친을 그리며 혼자 쓸쓸히 쐬주잔만 기울이는 알렉스에게 우편으로 도착합니다. 마이 갓, 이렇게 예쁜 사진첩이, 도려낸 팔다리, 뽑아낸 내장 기관, 참혹하게 고문 당해 죽어가는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걸 앨범으로 꾸민 범죄자는, 이게 아마 자신 인생의 최고 순간들을 담았기에 이런 "앤솔로지"를 제작했을 텐데, 겉에는 "The Murder Book"이라는 찬란한 장식으로 제목이 붙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알렉스 델라웨어 박사는 이제 현장을 마구 뛰어다닐 만한 나이도 아니고, (여전히 팔팔하기는 한) 여친 카스타냐에게 뭔가 성의도 보일 필요가 있는 만큼, 그저 끔찍하기만 하고 그 숨은 의도가 뭔지도 모를 이 미친 앨범에 대고, 과민반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침 찾아온 경찰 친구한테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범죄의 뚜렷한 징후를 신고만 하면 그만이죠. 근데 이번에는 (특히 지난번 닥터 디의 과도한 의욕과 행동을 만류까지 하던) 스터지스가, 자신의 과거 어느 한 자락을 심하게 자극 받곤, 설욕이라도 하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듭니다. 방대한 앨범 속의 어느 한 사진에는, 문제의 바로 그 사건, 자신이 초보 시절 크나큰 좌절감과 의욕 상실을 불렀던 그 사건 피해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던 거죠.

알렉스 델라웨어 시리즈는 특정 개별 사건의 해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극히 작은 마각을 드러낸 거대한 사회악, 권력 있고 돈깨나 갖고 노는 일부 타락한 이들의 음모와 치부를 밝혀 내어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는 그 결말에까지의 과정이 또 중요합니다. 이 소설은 특히 경찰 수뇌부에 도사린 악의 축 일부를, 이십 년 만에 정체를 밝혀내는 내용이란 점에서 독자의 흥미를 돋웁니다. 통쾌한 건 여전하지만, 왜 마냥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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