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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한국경제

[도서] 침몰하는 한국경제

김영욱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독설가의 말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여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도 예언자 나단을 엄혹히 제재하지 않고 그의 말을 오히려 충언으로 삼아 귀기울였으며, 당 태종은 언제나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 하는 위징을 곁에 두고 나태와 방종을 예방하는 안전판으로 선용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 별 근거도 없는 선호와 확신을 갖기 일쑤이므로, 기분 나쁜 악평에 일부러라도 진지한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제 앞가림도 못하는 늙은 얼치기가 떠드는 기분풀이용 헛소리, 어디서 베껴 읊어대는 진정성 없는 사이비 예언에는 전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지만 말입니다.

전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신 김영욱 박사님은 그간 언론 매체나 방송 등을 통해, 시원시원한 탁견으로 우리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셨던 중견 언론인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학문적 바탕이 견실히 깔린 정연한 지론을 그간 전개하셨기에, 우리 독자들이 일회성 화제로만 그저 새기거나 이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의 다른 비평과 분석의 프레임으로 응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가뜩이나 엄중하고 긴장감 팽배한 시기에, 우리의 현실을 대체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난국의 타개책은 무엇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우려 섞인 장탄식을 유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확한 우리의 좌표가 지금 이 즈음이니, 앞으로 이런 위험과 저런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면 되겠구나 같은 분명한 설계, 견적을 낳게 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지기도 합니다. 정확한 진단과 권위 있는 평론은 그래서, 일단 처음에 불편해지든 어떻든 간에 장기적으로는 희망과 활력을 되찾아 줍니다.

"일본화의 길"이란 무엇이냐? 1980년대 일본 산업 전반의 혁신과 창의력과 활기가 극에 달했을 때는, 전세계가 일본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미국은 심지어 일본이 무역 흑자 폭을 축소하지 않고 수입품 개방 폭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암시를 (말도 안 되지만) 매체를 통해 흘려 일본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게 플라자 합의의 부작용으로(꼭 일본에게 불리한 협상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고평가된 엔화의 위력으로 세계의 자산을 다 끌어모아 확보할 수도 있었죠. 이꼴이 된 건 갑자기 거품 낀 돈지갑을 챙겨 들고 실속을 못 챙긴 일본인들의 어리석음 탓이지 누구 원망을 할 게 아닙니다. 또, 그 나라 내부의 계급 간 이해가 대단히 불건전한 방향으로 조정되어버린 영향도 큽니다. 밖에서 돈을 힘들게 벌기보다,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빨대 꽂는 편한 방식을 택한 거죠),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을 바라보는, 끝이 안 보이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든 것입니다. 이게 저자께서 개탄하는 "일본화의 길"입니다. 쉬운 말로, "안락사, 망국에의 길"이죠.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경제 활력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은 책에서 우리가 가장 뼈아프게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다만 일본과는 좀 비교가 안 되는 게, 한국은 눈에 잘 안 띄긴 해도 기발한 시도와 모험을 하며 해외에서 활발한 개척을 벌이는 기업가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많긴 한데, 그들이 애써 활동을 해도 은행 대출금 상환, 고리의 사채, 정부 유관 기관의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그냥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놀고먹는 비경제활동 계층의 만족과 수익에 비해 손에 쥐는 게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문제죠. 이런 게 개선되려면 세제, 지원금 정책, SOC 등 제반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코렌터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시장이든 뚫고 들어가(엔터)고야 만다는 코리언들의 배짱 좋고 생명력 강한, 침투 근성과 확장 본능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저는 이 코렌터의 원조가, 대우 신화 세계 경영을 내세운 김우중 씨의 패기 만만한 과거의 실적이 그 원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 선진국에서 한국 차가 어필하기 힘들면, 옆에 붙은 신흥 시장 동유럽에다 개척자처럼 팔아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에 첫 맛을 들이기 시작한 이들에게 대우와 한국이라는 이미지도 각인시키고, 품질을 높여 향후 서유럽에서도 셰어를 키우고 말이죠. 전자제품은 이미 성공하여 세계 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양분할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김 회장 자신의 문제가 크긴 했으나 자동차 시장도 이때의 기세를 잘 살렸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동차와 가전은 그 파급력이나 기본 덩치의 면에서 차이가 꽤 큽니다.

소득 주도 성장보다 투자 주도가 옳다는 게 김 박사님의 진단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때에도 써 본 정책이지만, 그 유가 보조금 몇 만원씩을 국민들에게 풀었으나 결국 소비 진작 효과도 못 보고 허공으로 다 흩어졌죠. 돈은 푼돈이라도 모이고 모여서 덩치를 이뤄야 제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연금 몇 푼 쥐어 주는 식으로 선심을 쓸 게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미래산업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 기반 시설 마련에 주제도 모른다는 소릴 들어가며 쏟은 돈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YS(이런 인간이 다 있었으니)가 나라를 다 말아먹었을 당시 외채를 갚는 밑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1970년대 당시 살인적인 고물가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죠. 얼마 되지도 않는 돈과 물자가, 당장 입에 풀칠도 못 시켜 주는 거대 공장, 설비 건설에 다 투입되었으니 말입니다. 여튼 그때 어르신들이 참고 견뎌 준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버텨 내는 겁니다. 수출 경쟁력을 다 잃은 한국이 지금 어디서 소득이 들어오는 게 있습니까. 벌어 놓았던 거 까먹으며 견디는 거죠.

현기차에 대해서도 김 박사님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습니다. 특정 기업에 대해 무분별하게 평판 훼손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행태도 문제지만, 독과점 지위를 이용하여 현저히 부당한 시장 분리 대응을 은근히 이어가는 이 기업의 전략과 인식에도 큰 문제가 있음은 부인 못 합니다. 김 박사님은 원전 수주도 반관반민 형태의 법인으로 앞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는데, 이 역시 지금의 한수원 조직의 불투명 경영 행태에 비추어 귀 기울일 만한 충고입니다. 현재 한국 원자력 산업은 그간의 축적된 노하우 덕분에 국제 경쟁력이 꽤 있는 편이므로, 이의 이점이 해외 시장에서 최대한 이익으로 환수될 수 있는 시점까지는 공연한 위축 압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뭐하러 소중한 자산을 앞뜰에서 불태워 없앤단 말입니까? 그거 마음에 든다는 이웃에게 중고 헐값으로라도 넘겨야죠.

좀 장기간에 걸쳐 연재된 칼럼들을 모아 둔 책이므로, 시대 배경을 정확히 이해, 기억하는 독자라야 저자의 취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역사의 증언 기능을 하는 훌륭한 지적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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