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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낭만과 비극

[도서] 강남의 낭만과 비극

박한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서울은 본래 "강남"과는 태생적으로 유리된 지역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학대사이건 정도전이건 "산지남 수지북"의 분명한 도그마를 염두에 두고 새 수도의 입지를 정했는데, "강의 남쪽"이 대체 웬말입니까. 본디 도성은 사대문 안 일대만을 뜻했고, 그 외 지역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나 격지의 농민들과 다를 바 없는 신분, 처지의 이들이 모여 살던 곳에 불과했으며, 현재 강남이라 일컫는 곳은 허허벌판, 과수원, 농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과 사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강남의 낭만"은 현대 한국의 도시형 삶(얼반 라이프)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일정한 의미로 다가오는 어구이겠습니다만(뭔가, 딱 들으면 공통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있죠?) 물론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그러나 다분히 노리고 이렇게 제목을 다셨을 듯). 본디 "강'이라고만 해도 고전 시대 한자문화권에서는 "양쯔" 한 곳만을 가리켰고(이 역시 정확한 명칭은 아니며, 서양인들이 약간의 오해와 함께 널리 퍼뜨린 지명이죠), 이런 까닭에 사실 "강남"은 그저 장강 일대의 광활한 곡창지대와 풍부한 물산이 나는 중국의 특정 지역을 가리킬 뿐, 그리 두루 응용, 확장이 가능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호남, 영남, 호서 등으로 일컫는 지역명도 사실 중국에서 고유하게 일컫던 지명들을, 소중화주의에 입각해 그대로 따 와 무슨 큰 풍치나 되듯 속물적으로 쓴 흔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런 걸로 중국인들이 흠을 잡고 드는 품에, 뭔가 적극적으로 변호를 펴기가 대단히 옹색해지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여튼 이 책은, 강남(이라고 해도 얼마나 넓습니까) 일대의 풍광과 기행 기록만 담은 게 아니라, 예컨대 한국인들이 영원한 로망으로 삼는 <삼국연의> 그 격전의 현장(혹은 여러 고사의 배경)을, 박한제 교수님이 직접 다녀오신 후 운치 있는 문장과 생생한 사진을 함께 담아 펴낸 기획의 일부입니다. 업도는 특히 조맹덕이 각별한 정성을 담아 자신의 수도로 재건한 곳인데, 관도의 전투에서 만인의 예상을 깨고 대승을 거둔 그 기세로 결국은 화북 일대를 아우르며 천하의 사실상 패자로 오른 든든한 기반이 되었죠. 재물이든 시설이든 올바른 임자를 만나야 최적으로 활용되기 마련이고, 이미 원소가 그 지형과 물산의 이로움을 누리던 지역이었으나 조맹덕에게 장악된 후 훨씬 능률과 번영을 바라게 되었다고 봅니다. 저자께서 "관도 전투의 진정한 승자는 조조가 아니었다"고 한 말은, 왠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어느 고전 마지막 대사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칠종칠금 고사에 등장하는 맹획은 종종 베트남 북부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 (방향이 정반대인) 현재의 운남성 일대에 웅거했던 한 군벌일 뿐이며, 심지어 과연 소수민족이기나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학설이 있습니다. 박한제 교수님은 이 지역(역시 광대하죠) 일대를 살뜰히 돌아본 후, 그 남다른 감회와 평가를 멋진 문장으로 지면에 촘촘히 적어 두셨네요.

사실 우리는 명백히 저들 사관에서 동이족에 해당하므로(우리가 동이족의 전부는 아니지만), 특히 침투왕조와 정복왕조에 대해 괜한 유감이나 비분강개함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충. 효 라는 보편적 덕목에 공감하여, 예컨대 악비라든가 한세충 같은 이들에게 얼마든지 경의를 바칠 수 있지만, 이게 모화사상으로 통해서는 매우 곤란하죠(누가 받아나 준답니까?). 오랑캐라 일컬어졌던 숱한 북방의 호걸들 중에서도 충신 명장 효자가 있을 수 있고, 오히려 혈연상 미세한 친연성마저 갖춘 그들에게도 얼마든지 찬사와 공경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저자께서도 "오랑캐도 중화제국의 성군이 될 수 있었다"는 부제로 이런 취지를 표현하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영가의 난 같은 건 저 고대 로마의 동맹시 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여기까지는 1권으로 강북과 저 변경 일부(서남쪽의 운남이라든가 저 북쪽의 초원, 사막지역)를 다루시고, 2권(즉, 본책)부터 강남 이야기입니다(이 책의 전작으로 볼 수 있는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에서 커버합니다). 사천, 소흥, 형주 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여튼 이 책에서는 광의의 강남에 끼어 저자의 유장한 설명과 함께 다뤄집니다. 제가 언제나 궁금했던 게, 왜 그토록 송제양진 네 황조의 군주들은 출신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자긍을 좀먹고 나라까지 망치고 말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 물론 태어난 신분에 따라 분수와 기능이 주어지는 사회이긴 했습니다만, 중국은 벌써 한족 문화의 원형을 확립한 한 제국 창업주부터가 농민 출신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 역시 변방의 오랑캐라며 경멸 받던 집단이었고 말입니다. 자신의 장점과 유리한 자질에 더 관심을 주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성취가 가능했을 텐데, 열등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찌질한 자기 기만에만 빠져 드니, 일신과 가문은 물론 국가 전체를 패망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게죠.

남경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장강(우리가 양쯔강으로 아는)이 젖을 먹여 키운 보석과도 같은,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축복받은 고장입니다. 중국은 북방 유목민족에게 쫓겨 강남 개발을 본의 아니게 이룬 후에야 오히려 재정이 튼실해지고 세계 제국으로서의 정체성마저 더 온전히 갖췄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치 이슬람 전투 부족이, 그 풍요로운 인더스 유역이나 그 아래 아대륙을 멀리하고, 사마르칸드 일대 고원을 수복해야 진정한 정통성이나 찾아지는 듯 여긴 것과 비슷하게, 이 살기 좋고 따뜻한 강남은 정작 지배 세력이 실속을 그로부터 챙긴 물적 기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윤택해서 불결한 무엇이나 보듯 내내 평가절하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물적, 정신적 낭만의 요람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비극의 온상 노릇도 한 곡절이 여기에 있죠.

3권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에선 다시 북으로 올라가 북제, 북주, 수, 그리고 당 제국의 초기를 다룹니다(그래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별권으로 된 전 3권을 모두 독파하는 편을 추천합니다). 중국은 5호 16국 시대를 거쳐 강남과 진하게 조우한 후, 비로소 더 성숙한 모습으로 통일도 완수하고 체제도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께서 다루는 이 시기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풍광은 그래서 중국의 "성장기"를 접하는 느낌입니다. 번듯하게 보여도 처음부터 그리 성숙한 자태는 아니었다는 이치가, 어디 여기에만 해당할까요? 동시에, 저자께서 몸담으셨던 학교의 학풍이 묻어나는 여러 칼날같은 지적에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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